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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일괄 사표 수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퇴와 방송장악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일괄 사표 수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퇴와 방송장악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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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엄기영 사장은 살아남았다. 팔다리는 다 잘린 채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던 절반이 날아간 상황이지만 엄 사장 자리만큼은 확실히 보장받게 됐다.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국민앵커 출신 엄기영 사장, 그는 MBC 내부에서부터 비난 받는 선배가 될 공산이 커졌다.

사장이 모든 책임을 질 것처럼 사표를 싹 걷어갔지만 결과는 사장과 일부만 살아남는 꼴이 됐으니 잘린 4명은 엄 사장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선배 믿고 사표 냈는데, 사실상 뒤통수 맞은 격이다. 이 가운데는 무려 1년도 안된 임원이 있다. 그로서는 억울할 게 분명하다.

MBC 안팎의 분석에 따르면, 엄 사장은 당초 '유임'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지난 4일 김우룡 이사장에게 일괄사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이사장과의 교감 등을 고려할 때 일괄사표를 내도 전원 유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MBC가 주관사 역할을 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 이후 열린 뒤풀이에서 이 대통령이 엄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한 것도 '유임' 전망을 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괄사표 직후 MBC 안팎에서는 '2+알파설'이 나돌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엄 사장 스스로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뉴라이트 계열 방문진 이사들이 줄곧 제기해왔던 뉴스와 보도프로그램의 책임자 격인 보도본부장과 제작본부장을 포함해 몇 명을 더 해임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엄 사장은 상황이 급해지자 일부 이사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년 2월까지만 결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2+알파설'에 당혹했다는 후문도

그러나 이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방문진 입장에서는 일괄사표 소식이 알려진 마당에 엄 사장의 뜻대로 내년 2월까지 '사표수리'를 미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물론 10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내년 2월 주주총회까지 결정을 미룬다"는 의견이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결과적으로는 표결에서 부결됐다.

이 자리에서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과 한귀현 감사, 김종국 기획조정실장, 문장환 기술본부장의 사표는 반려하고, 김세영 부사장겸 편성본부장, 이재갑 TV제작본부장, 송재종 보도본부장, 박성희 경영본부장의 사표는 수리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개인의 명예 때문에 정확한 표결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5표 안팎으로 해임여부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엄기영 사장 등 MBC 경영진의 재신임을 묻는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노조원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회의장으로 진입하자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원만한 회의가 되도록 협조해달라"며 이 본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엄기영 사장 등 MBC 경영진의 재신임을 묻는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노조원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회의장으로 진입하자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원만한 회의가 되도록 협조해달라"며 이 본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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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제일 급한 사람은 김우룡 이사장?

일각에서는 엄 사장도 김우룡 이사장에게 '당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전원 유임시켜줄 듯하면서 반토막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보도와 제작을 책임지는 쪽을 모조리 정리하는 형태로.

무엇보다 김 이사장도 지난 11월 24일 김인규 KBS 사장이 다소 소란했지만 무난히 취임식을 마치고 정상 출근하는 모습에서 MBC도 뭔가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맥락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이사회에서 '뉴MBC플랜'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엄 사장에게 종용했고 그 뒤로도 몇 차례 만나거나 전화로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추궁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 이사장이 최근 한 사석에서 "내가 요즘 칼은 빼들고 휘두르지도 못하는 쪼다 소리를 듣고 다닌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는 말도 나돈다. 이 말을 들은 방문진의 한 관계자는 MB 정권 입맛에 따라 YTN과 KBS가 정리됐는데 유독 MBC만 정리되지 않으니 김 이사장 스스로 조급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분석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엄 사장과 김 이사장간 '밀약'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흘러나왔다. 일종의 자리보전 형태로 말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해도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엄 사장 자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엄 사장은 지난 8월 방문진의 1차 자진사퇴 압력에 맞서 부당한 간섭에 휘둘리지 않고 정도를 걷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당한 간섭을 수용하는 형태로 재신임을 받게 됐고, 이에 대한 반발로 MBC 내부로부터는 불신임을 받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 '공영방송 사장 지키기' 입장을 고수해왔던 언론노조 MBC본부도 방문진의 재신임 이후 입장을 180도 바꿨다. "방문진의 하수인으로 돌아온 엄기영 사장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46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엄기영 MBC 사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46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엄기영 MBC 사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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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노조 "엄기영 사장은 배신자"

언론노조 MBC본부는 10일 밤 성명을 내고 "방문진의 재신임은 엄기영 사장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사장으로 전락시켰다"며 "자신의 팔다리를 잘리고도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굴욕을 선택한 엄 사장에겐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한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혔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 팔다리를 다 내어준 엄 사장은 조직의 책임자로서 후배들을 배신한 것"이라며 "공영방송 수장 자리를 조금의 주저함이나 반항 없이 방문진에 스스로 갖다바친 행위"라고 질타했다.

따라서 MBC본부는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협의 이외에 사측과 대화는 일체 중단한다면서 방문진의 꼭두각시로 채워질 새로운 경영진 역시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미 공언한대로 공영방송 위상을 뿌리 채 흔들어놓은 김우룡 이사장에 대한 퇴진투쟁은 계속한다고 덧붙였다. MBC본부는 11일 오전 7시 30분부터 방문진 사무처가 있는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김 이사장의 출근저지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엄기영 사장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MBC 사장 출신인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얻어낸 언론자유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과 같다고 개탄했다.

최 의원은 "방문진 이사회로부터 재신임을 받은 엄 사장이 앞으로 방문진의 압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된 게 아니냐"고 전망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일괄 사표 수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퇴와 방송장악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일괄 사표 수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퇴와 방송장악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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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영웅 되거나, 식물사장 되거나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인 만큼 임기 도중에 사표를 던지지 않고 끝까지 버텼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방문진은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얻어낸 언론자유의 성과 중 하나로 정치권력으로부터 MBC를 지키는 역할을 하라고 만든 건대 역설적으로 방문진이 그 역할을 허물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엄기영 사장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직 내부의 성토와 비난을 받으면서 사장 직을 유지하거나 방문진의 결정에 불복하는 항의의 뜻으로 다시 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엄 사장을 오랜 세월 겪어온 MBC 출신 기자는 "유약한 성격 때문에 쉽사리 또 사표를 던지지 못할 것"이라며 "흔들리면서 계속 사장 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한 방문진의 이사는 "엄 사장은 매우 상식적인 언론인이기 때문에 퍼붓는 비난의 화살을 다 받으면서 뻔뻔하게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것 같지 않다"며 "MBC를 그만두고 나와 정치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어렵다"고 노정했다.

MBC 조직문화에 비춰볼 때 결국 엄 사장이 자리보전에 연연하게 되면 후배들에게 쫓겨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의 한 관계자는 "엄 사장이 연임된들 그의 정치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보면 된다"면서 "MBC 조직문화에서 엄 사장의 처신은 용납받기 어렵고 그는 조직 내부에서부터 버려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B정권과 방문진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미 정해진 수순인데 그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후배들은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는 엄 사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것이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남아서 식물사장이 되거나, 뛰쳐나가 국민영웅이 되거나. 선택은 엄 사장에게 달렸다.


태그:#엄기영, #MBC , #방문진, #김우룡, #식물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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