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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제작한 안보홍보만화 시안의 주인공 이름은 '지용'이다. 주인공 지용은 당연하게도(?) 'G-dragon'이라고 새겨진 목걸이를 목에 건 용을 타고 날아다닌다.
▲ 지용 G-dragon 경찰청이 제작한 안보홍보만화 시안의 주인공 이름은 '지용'이다. 주인공 지용은 당연하게도(?) 'G-dragon'이라고 새겨진 목걸이를 목에 건 용을 타고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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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17일 "MB정부는 '반공교육을 부활시키고자 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며 배포 중단을 요구한, 경찰청 제작 안보홍보만화 <함께하는 세상>의 49쪽짜리 시안을 최근 입수했다.

경찰청이 지난 9월 특수활동비 6200만원을 들여 제작한 안보홍보만화 <함께하는 세상>은 이달 말 전국 초·중·고교에 15만 여부가 배포될 예정이다. 앞서 '반공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는 비교육적 홍보물'이라는 지적을 비롯해 '왜곡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 등은 이미 제기됐으니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자.

시안과 함께 강기정 의원실에서 챙겨 보내준 자료에는 경찰청에서 통일부와 교과부에 시안 검토를 의뢰한 공문과 통일부와 교과부에서 이에 화답해 검토 후 의견을 적어 보낸 공문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청이 제작한 안보홍보만화 시안의 주인공 이름은 '지용'이다. 주인공 지용은 당연하게도(?) 'G-dragon'이라고 새겨진 목걸이를 목에 건 용을 타고 날아다닌다. '지용'이가 타고 다니는 'G-dragon'. 좀 유치해 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초등생과 중학생 눈높이에 맞추고자 한 경찰청의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일종의 당의정인 셈이다.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유명한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을 패러디한 이 만화는 지용이 유령의 모습으로 제삿날에 나타난 할아버지와 함께 지-드래곤을 타고 남북을 오가며 반공·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헉!'하고 탄식을 질렀을 테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만화 속 주인공 '지용'은, 당연히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빅뱅의 바로 그 '지-드래곤(지용)'을 떠올리게 한다. 안보홍보만화를 읽는 초·중학생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어보려는 의도에서 이 같은 주인공 캐릭터를 구상했음은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너무나 어이없는 교과부의 무딘 '감성'

'경찰청이 제작한 안보홍보만화 '함께 하는 세상' 시안
▲ 안보홍보만화 '경찰청이 제작한 안보홍보만화 '함께 하는 세상' 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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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만화 시안을 검토한 교과부가 경찰청에 보낸 의견서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교과부는 이 만화를 두고 "전체적으로 내용이 어렵고 많음 …(중략)… 너무 재미가 없으면 읽히지 않고 사장될 우려가 있음"이라고 총평하고 있다. 초·중학생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단어와 내용들이 많고 재미가 없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너도나도 하는 말로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교과부는 이어 세부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사항들을 지적했는데, 초·중학생을 배려해 주인공 캐릭터를 구상한 경찰청의 고민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것이 있어 눈이 번쩍 뜨인다. 교과부는 지적을 통해 "드래곤보단 황새가 더 부드러운 이미지로 나올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오마이 갓, 드래곤보다 황새라니! 이에 대해 24일 빅뱅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홍보팀에 문의해본 결과 경찰청에서 '지-드래곤(지용)'을 만화 주인공 캐릭터로 사용하겠다는 공문이나 연락을 해온 적은 없다고 한다.

그룹 '빅뱅'.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지드래곤.
 그룹 '빅뱅'.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지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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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지용' 그러니까 '지-드래곤'을, 다시 말해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빅뱅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지-드래곤(지용)'이 초·중학생용 만화 주인공 캐릭터로는 너무 과격해서 부드러운 황새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 것일까. 청소년은 물론 다수의 국민들이 열광하는 노래를 부르는 재주를 지닌 '지-드래곤(지용)'이 과격하다니.

그가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는 시국선언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황새'라니. 웃음은 자꾸만 터져 나오고 눈물도 찔끔 흐른다. 이 의견서를 받아 읽었을 경찰청 담당자의 표정은 또 어땠을까.

'지드래곤'은 쓰지 말고, '지못미'는 써라?

재미는 이어진다. 드래곤을 황새로 바꾸라고 조언한 교과부는 다시 이렇게 지적한다. "13쪽 11줄 : 지켜주지 못한다는 →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청소년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

과격한(?) '지-드래곤(지용)'은 부드러운 '황새'로 바꾸라 해놓고 '지켜주지 못한다'라고 쓴 경찰청의 표기를 '지·못·미'라는 "청소년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로 고치라고 알은체를 하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여 주는 센스.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보려 해도 장맛비에 둑 무너지듯 폭소가 다시 터져 나오고 만다. 어이쿠, '지-드래곤 지못미'다.

이 의견서를 받아 읽었을 경찰청 담당자의 표정은 또 어땠을까. 국보법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 추종자라고 우기는 만화 내용보다 더 심란하지 않았을까.
▲ 경찰청 제작 안보홍보만화 '함께 하는 세상' 이 의견서를 받아 읽었을 경찰청 담당자의 표정은 또 어땠을까. 국보법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 추종자라고 우기는 만화 내용보다 더 심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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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청와대는 삼일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나라사랑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하고 나라사랑을 주제로 한 가칭 '힘내라! 대한민국'이라는 랩송을 만들겠다고 했다.

2009년판 '새마을 노래'. 빅뱅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결국 빅뱅의 팬들과 상당수 시민들의 분노 어린 반발로 무산됐지만.

그런데 1960~70년대식 반공정신으로 중무장한 경찰청과 19세기식 교수-학습 감각의 낡은 외투 깃을 세운 교과부 덕분에 청와대조차 눈독을 들였던 빅뱅의 한 사람인 '지-드래곤(지용)'은 졸지에 황새보다도 못한 과격한 캐릭터가 돼 버렸다.

경찰청과 교과부에겐 초중학생들이 지-드래곤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읽고 시대 감각에 어울리지 않는 이데올로기를 학습하는 것보다 '과격'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가보다.

시민을 진압하는 장비를 확충하는 예산을 크게 늘리고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경찰과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막무가내 징계를 일삼아온 교과부. 그러면서 초·중학생들에겐 부드러워져야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삐딱하고 격렬한 감수성 앞에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과격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은 내 웃음보와 눈물샘이 비정상이어서 그런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 실린 글을 고치고 덧붙인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보만화, #빅뱅, #시국선언, #지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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