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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애썼다!
▲ 사제동행 고맙다. 애썼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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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내려온 승호! 월 매출 1억을 넘긴 인터넷 사업가다. 발전과 번찰을 기원한다.
▲ 승호 인천에서 내려온 승호! 월 매출 1억을 넘긴 인터넷 사업가다. 발전과 번찰을 기원한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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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대전 인근 두마면에 있는 민박집 잡아 놨습니다. 그럼 가을 소풍 때 뵐게요."

보름 전, 승호(자영업·33)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일박이일로 가을 소풍을 가기로 한 것이다. 승호는 인천에서 화장품 관련 인터넷 사업을 한다. 최근에 실적이 좋아 기쁜 마음이란다. 최근 3개월 전에 애인이 생겨 기쁨 두 배다.

대우(중학교 교사·33)는 결혼을 했다. 결혼식 때 필자가 주례를 섰다. 부부교사로서 금실이 뛰어나다. 딸 하나를 두었고,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다.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는데 항상 교육에 관심이 많다. 최근 줄세우기식 경쟁교육에 탄식하며 핏대를 세우기도 했다.

응조(회사원·33)는 천안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골프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마음에 꼽아 둔 여자 친구와 결혼까지 이어가려는 기세다. 효심이 깊고 친절 정신이 몸에 밴 유능한 청년이다.

소주가 없었을 리 없다. 우리는 많이 마셨다.
▲ 모닥불 어묵 소주가 없었을 리 없다. 우리는 많이 마셨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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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살, 소시지, 굴, 버섯이 어우러진 가을 소풍 만찬
▲ 가을 소풍 목살, 소시지, 굴, 버섯이 어우러진 가을 소풍 만찬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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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밤 나는 결국 제자들에게 업히고 말았다. 과음도 축복이다.
▲ 사제동행 이 날 밤 나는 결국 제자들에게 업히고 말았다. 과음도 축복이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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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네 명의 단짝 친구들이 연중 정기적으로 만나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일용이는 임신한 아내가 입덧이 심해 불참했다. 언제나 맑은 모습에 매너 좋기로 유명한 일용이가 오지 않아 빈자리가 컸다. 다음 모임 때는 꼭 볼 수 있겠지.

승호가 24일(토) 오전 9시에 인천에서 대전까지 달려왔다. 일찍 만나서 산행도 하고 가을 분위기를 낚아챌 요량이었다. 오전 10시 경,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인근 산책로를 따라 둘이 걸었다.

까치는 당분간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다.
▲ 감나무 까치는 당분간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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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심금을 따사롭게 한다. 유난히 감나무가 많다. 감이 그야말로 주렁주렁 열렸다. 과일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시인 박성룡은 '사태(事態)'라고 썼다. 급기야 그 사태가 자신을 경악케 한다고 했다.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사태가 나를 경악케 했다.

숟가락으로 꿀을 파 먹었다.
▲ 홍시 숟가락으로 꿀을 파 먹었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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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을 걷다 마을을 만난다. 감나무를 쳐다보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게 주인 아저씨가 한 말씀 주신다.

"저기 감 따는 도구 있으니까, 홍시 있으면 따 드셔~~"

홍시를 딴다. 태어나서 가장 강렬한 낙하를 경험했던 때가 있었다. 어릴 적 감나무에서 떨어져 보지 않고 홍시를 말한다면 그 추억은 설익은 것이리라. 비오고 나서 감나무 가지가 젖어 있을 때 감나무를 타면 아무리 김연아라도 미끄러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낙상을 경험했다. 감나무는 자식들을 지켜내려고 온몸에 미끈한 체액을 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홍시 두 개를 땄다. 하나씩 먹는다. 어릴 적 먹었던 바로 그 맛! 감격에 젖을 때 주인 아저씨가 신문지 위에 더 잘 익은 홍시를 내다주신다.

"이게 모양은 좀 그래도 꿀여, 꿀!"

홍시는 꿀이다! 최소한 우리 둘은 꿀맛을 보았다. 잠시 후 합류할 두 명의 제자를 위해 두 개는 남겼다. 꿀맛 같은 가을이다.

곧 쌀이 될 것이다.
▲ 벼 곧 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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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남김 없이 주고 간다.
▲ 볏단 벼는 남김 없이 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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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흔적이다.
▲ 볏단 장엄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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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단을 따로 묶지 않고 압축해서 뽑아내는 농기계다.
▲ 볏단 볏단을 따로 묶지 않고 압축해서 뽑아내는 농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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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벼가 가을 햇살을 만나 분주하다. 추수를 끝낸 들녘엔 모든 것을 내준 볏단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송두리째 쌀을 내주고 남은 육신마저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네모 모양으로 압축되어 기계에서 나오는 볏단이 이채롭다.

사라져서는 안 될 영원한 우리 맛
▲ 메주 사라져서는 안 될 영원한 우리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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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채 처마에 매달린 국산콩 메주가 항아리 입주를 준비 중이다. 고운 손길로 비법 요술이 더해지면 간장, 고추장으로 탄생하겠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넣고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자근자근 비벼 먹던 시골 밥! 거기에 고추 하나 된장 찍으면 감칠맛이 더해지겠지. 꿀꺽!

나무가 용을 닮고 싶었나 보다.
▲ 나무 드래곤 나무가 용을 닮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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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색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 낙엽 저 색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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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사랑 이야기를 엳듣고 있는 걸까? 넝쿨도 물들어간다.
▲ 넝쿨 단풍 사랑방 사랑 이야기를 엳듣고 있는 걸까? 넝쿨도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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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와 평화 그 자체다.
▲ 단풍 고요와 평화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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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낙엽 길을 걷는다. 살면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수없이 걸었다. 내가 걸어서 길이 될 수는 없을까? 결론은 충분히 부족한 존재, 그 자체다. 교직 21년! 그래, 끊임없는 공부!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또 다짐한다.
 
그냥 저 안에 머무를 순 없을까?
▲ 유리창에 비친 가을 그냥 저 안에 머무를 순 없을까?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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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원 농가 유리창에 비친 가을 풍경이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른 풍광이 나타난다. 카메라를 든 나를 그 안에 넣고 싶다. 무슨 수를 써도 자연과 동화될 수 없는 나의 한계들.

저 고양이 눈, 닮고 싶다.
▲ 고양이 저 고양이 눈,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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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사람의 눈빛이 저 고양이 눈만큼 강렬할 수 있을까? 존경하는 형이 그랬다. '만 미터 깊은 바다를 들여다보는 고래의 충혈된 눈'을 가지라고. 고래가 심해 먹잇감을 포착하면 그 집중력의 결과로 눈이 충혈된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이루고 싶을 땐 그런 고래의 눈을 가지라고 말한다. 저 고양이 눈과 고래의 눈을 닮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4년이 지난 제자들과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일박이일 동안 오붓하게 보낸 시간들이 있는 한 올 가을도 풍성한 수확을 거둔 셈이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들, 서로를 놀라게 한 희로애락들이 내년 소풍 때도 이어지겠지. 승호! 응조! 대우! 고맙다.


태그:#가을 여행, #가을 소풍, #사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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