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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4일 호적이 있는 서울 중구청을 방문, 가족관계등록부(구 호적)에 관련 서류를 제출한 뒤 웃음 짓는 차월겸(맨 오른쪽)씨와 조카 홍정녀(두번째)씨.
 2009년 8월 14일 호적이 있는 서울 중구청을 방문, 가족관계등록부(구 호적)에 관련 서류를 제출한 뒤 웃음 짓는 차월겸(맨 오른쪽)씨와 조카 홍정녀(두번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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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할아버지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이 됐습니다!"

홍정녀(59·중국 천진)씨는 한국 사람이 됐다는 사실에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렸다. 대다수 중국동포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별 수단을 동원해보지만 브로커에게 돈만 떼이거나 허송세월로 실망하기 일쑤다. 이런 판국에 독립유공자 증조할아버지 덕분에 특별귀화로 국적을 손에 쥐게 됐으니 감개무량이 아닐 수 없다.

법무부는 지난 13일 차도선 의병장과 안무 항일지사 등 8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인 중국동포 41명에게 특별귀화증서를 수여했다. 특별귀화 대상에는 차 의병장의 외 증손이 5명으로 가장 많이 포함됐는데 홍씨도 그중 한 명이다. 차 의병장은 홍범도 장군과 함께 항일무장투쟁 등을 전개한 공로로 1962년 독립장을 추서한 애국지사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특별귀화는 시혜도 아니고 칭찬 받을 일도 아니다.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이 넘도록 이들을 남의 나라 가난한 국민으로 방치한 것에 대해 외려 책임 물을 일이다. 차 의병장 외 증손들이 '특별귀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법무부와 보훈처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차 의병장 손녀의 불굴의 '투쟁' 때문에 가능했기에 더욱 그렇다.

가짜 유족에겐 놀아나고 진짜 유족은 냉대했던 정부당국

2007년 11월 5일 차도선 의병장이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한 월겸(왼쪽)씨와 여동생 옥겸씨가 가짜 유족에 의해 훼손된 비석을 가리키며 어이없어 하고 있다.
 2007년 11월 5일 차도선 의병장이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한 월겸(왼쪽)씨와 여동생 옥겸씨가 가짜 유족에 의해 훼손된 비석을 가리키며 어이없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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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재외동포법 농성 당시의 차월겸씨.
 2003년 재외동포법 농성 당시의 차월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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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선 의병장의 손녀 차월겸(65·송파구 장지동)씨를 처음 만난 곳은 2003년 '재외동포법' 촉구 농성장에서였다. 장군 손녀는 어린 시절 앓은 병에 의해 불구가 된 꼽추(척추측만증) 장애인이었다.

그는 광복 55주년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으로 2000년 8월 11일 조국을 첫 방문했다. 그런데 체류기간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자 초청 기관인 '보훈처'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했다. 이에 그는 "이 땅은 할아버지가 묻힌 땅이라 돌아갈 수 없다"며 그대로 눌러 앉았다.

결국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그는 "유공자의 후손이고 장애인이니 국적취득을 도와 달라!"고 법무부 출입국 관계자들에게 사정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의지가지 할 일가친척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고,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임금을 떼이는 등의 천신만고 끝에 2004년 1월 국적을 취득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07년 9월이었다. 불구인 그는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벌집' 지역인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살고 있었는데 '불법체류자'의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열악한 환경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연이어 나타난 '가짜 후손'들에게 시달리는 딱한 처지였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다급한 형편이었다.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를 그만둔 뒤 외국인노동자 인권/선교단체에서 일하게 된 필자는 '장군 손녀'의 딱한 처지를 알게되면서 '가짜 유족' 사건을 전담하며 취재하게 됐다.

첫 번째 '가짜 유족'은 차씨 종친회 사무총장이었고, 두 번째 '가짜 유족' 또한 종친회 간부였다. 1995년 차 의병장 유해봉환 안장식에 유족대표로 참석한 첫째 '가짜 유족'은 대전국립현충원에 세워진 차 의병장 비석에 자신을 손자로 등재시킨 것은 물론 의병장의 출생지를 자신의 본적지인 '충남 청양'으로 둔갑시켰다.

첫 번째 가짜 유족이 사망한 뒤 나타난 두 번째 '가짜 유족'은 족보까지 조작하는 수법을 통해 차 의병장의 비석을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의 것으로 변조하려고 시도했다. 차씨 종친회는 종친회 연명으로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가짜 유족'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두 번째 가짜 유족은 '종손 보증'을 서달라며 장군의 손녀를 괴롭혔고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보도 그후] '가짜 후손' 사건 진실규명 되다!

'가짜 유족'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면서 차도선 의병장의 출생지와 후손들의 이름이 바로잡히고 가짜 후손은 삭제됐다.
 '가짜 유족'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면서 차도선 의병장의 출생지와 후손들의 이름이 바로잡히고 가짜 후손은 삭제됐다.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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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다!

진실과 거짓이 명백하게 가려졌을 때 쓰이는 말이다. <오마이뉴스>에 의해 '가짜 유족' 사건이 제기되자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 종친회 등은 물론 중국 출장 조사 등을 통해 진실규명에 나선 보훈처는 <오마이뉴스>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또한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차월겸씨가 '장군의 진짜 핏줄'임이 입증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지난 13일 "2008년 5월 28일 차도선 애국지사 비명에 잘못 기재된 내용(출신지, 후손 이름)을 정정하고, 차상옥(비석에 등재된 첫 번째 가짜 유족)은 삭제했다"며 "차씨 종친회에는 족보수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국 현지 조사 과정에서 주중 북한대사관과 무송현(의병장의 최후지역) 정부가 '차도선 묘소 조사'에 대해 주고받은 공문을 발견했다"고 덧붙여 밝혔다. 김일성 주석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차천리(의병장의 애명)에게 감명 받았다'고 밝힌바 있듯이 북한도 차 의병장에게 관심 쏟았던 것이다.

이로써 차 의병장 가짜 유족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보훈처는 '독립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보훈'의 노력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보훈행정이 '가짜'에겐 구멍이 뻥 뚫린 반면 '진짜'에겐 구멍이 바늘처럼 비좁았던 만큼 이에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차씨 종친회는 '사과'도 '족보 수정'도 외면했다. 종친회 관계자는 17일 "차도선 의병장 후손에게 사과했느냐"는 질문에 "사과할 것도 없다"면서 "월겸씨와는 없던 일로 하기로 하고 끝냈다"고 답변했다. 또한 "족보는 수정됐느냐"고 묻자 "족보는 그대로이다"라고 말했다.

3대에 걸쳐 독립투쟁에 나선 애국지사와 그 후손을 유린하고도 '사과'도 '족보 수정'도 하지 않는 종친회의 '뻔뻔함'과 '무례함'을 어찌해야 좋을까?

장군의 손녀 "14평 아파트 행복합니다!"

차월겸씨의 14평 임대아파트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차월겸, 언니 옥녀, 조카 홍정녀와 홍정옥(오른쪽부터)
 차월겸씨의 14평 임대아파트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차월겸, 언니 옥녀, 조카 홍정녀와 홍정옥(오른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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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손녀는 송파구 장지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비록 '14평'의 좁은 아파트이지만 햇볕 잘 들고, 온수도 잘 나오고, 화장실도 수세식이니 감지덕지 할 뿐이다. 독립유공자 초청장을 받고 64주년 광복절 경축식장에도 다녀온 그는 "대통령 두 분(2000년 8월 15일 김대중, 2008년 8월 15일 이명박)과도 악수했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국적을 취득한 것이 아니라 고난의 세월을 통해 국적을 획득했다. 장군인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면 장군의 손녀는 조국 땅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불구의 몸으로 생존투쟁을 전개해야만 했다. 그의 투쟁을 통해 언니, 동생, 조카 등 20여 명이 조국의 품에 안겼으니 그의 승리에 대해 조국은 박수를 보내기 이전에 '부끄러움'을 바쳐야  옳다.

"불법체류자 신세로 유랑걸식하며 살 때는 앞날이 캄캄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이젠 살 희망이 생겨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경제위기 극복 10% 나눔 범국민운동'(광복회 주최)에 다달이 10만원씩 보내고, 태안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는 10만원 성금을 보냈으며, 언젠가 큰물(수해) 났을 때는 3만원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싸워서 얻은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잘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대한민국에서 '애국심'이란?

장군의 손녀는 할아버지의 조국 품에 안긴 것에 감사하며 애국심을 발휘하며 산다. 그리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매국의 대가로 누리는 호의호식에 감사하며 애국심을 휘두르며 산다.
 장군의 손녀는 할아버지의 조국 품에 안긴 것에 감사하며 애국심을 발휘하며 산다. 그리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매국의 대가로 누리는 호의호식에 감사하며 애국심을 휘두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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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자국민 보호를 위해 전직 대통령까지 특사로 파견하고, 6.25 전쟁에서 실종된 군인의 유해를 찾는데 갖은 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미합중국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그 애국심은 다민족 연방국가인 미국을 결집시키는 동력이기도 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유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제국주의는 반대하지만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미합중국의 국민에 대한 태도는 부럽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애국심'의 발로는 무엇일까?

친일파 자손은 재벌이 되고, 족벌언론의 사주가 되고, 권력의 핵심이 되어 부귀영화를 독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선 애국심마저 그들의 몫이다. 매국의 댓가로 자자손손 승승장구하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는 조국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조국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친 항일지사들과 거지꼴로 사는 후손들의 애국심은 무엇인가?

장군 손녀의 기도를 듣고도 끝내 유쾌하지 않다. 그의 소박한 행복과 애국심이 매국체제에 의해 언제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불구 노인의 외로운 투쟁에 후견인을 자처하며 참여, 5회에 걸친 보도를 통해 '가짜 유족'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14평의 보금자리를 확보하는데 보탬이 됐다는데 위안을 삼으며 불행한 '애국심'의 나라를 오늘도 걷는다.

2009년 8월 14일 장군의 손녀는 법무부가 특별귀화자들에게 선물로 준 태극기를 14평 임대아파트에 게양했다.
 2009년 8월 14일 장군의 손녀는 법무부가 특별귀화자들에게 선물로 준 태극기를 14평 임대아파트에 게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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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애국지사, #애국심, #보훈처, #법무부,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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