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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가 가져온 선물. 꿀콩말이 떡과 빼빼로.
 조쉬가 가져온 선물. 꿀콩말이 떡과 빼빼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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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초인종이 울려 밖으로 나가 보니 이웃집 총각 조쉬가 서 있다. 조쉬는 버지니아공대를 졸업하고 이곳 대학에 근무하는 미국인이다.

"무슨 일이에요?"
"이거 한 번 맛 보세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가져왔어요."

조쉬 손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빼빼로와 떡이 들려 있었다.

'에엥, 이거 거꾸로 된 거 아니야? 우리가 맛보라고 갖다줘야 할 한국 음식이 어째 미국사람 손에 의해 다시 우리에게 건네지는 거야?'

뒤바뀐 상황이 우스웠지만 어쨌거나 반가웠다. 한국을 떠나온 뒤 한국 과자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물론 이곳에서 2시간 정도 가면 한국 과자나 떡을 사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내게는 한국 음식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한국 과자나 떡을 사먹으려고 일부러 가본 적은 없었다.

조쉬가 가져온 떡은 꿀콩말이 떡(Honey Rollcake)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져온 떡이 이미 1/3 정도 떼어져 나가고 포장도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빼빼로도 종이박스에 들어있는 것 가운데 개별 포장된 한 봉지만 가져오고.

우리나라 사람 같았으면 결코 이런 걸 남에게 갖다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조쉬는 선물이라고 가져온 것이다. 조쉬의 선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쁜 해석: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떡'을 사봤다. 그런데 직접 먹어보니 끈적거리는 게 치아에도 달라붙고 입에도 별로 안 맞았다. 그래서 먹는 걸 중단하고 남은 걸 갖다 줬다. 한국 사람들은 좋아할 테니까.  

좋은 해석: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다'는 우리말 속담을 조쉬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귀한 한국 음식이니까 혼자 먹기 아까워 가져왔다.

조쉬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

우리집 아이는 랩 포장도 부실하고 떡도 일부 떼어져 나간 걸 보고 좀 싫은 내색을 했다. 더구나 일부 떨어져 나간 떡도 칼로 반듯하게 잘라져 나간 게 아니어서 그런 걸 가져온 조쉬에 대해 의아해 했다.   

하지만 나는 '좋은 해석'을 취해 조쉬가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오랜 만에 먹어본 떡과 빼빼로는 맛있었다.

"이번엔 군만두랑 잡채를 먹었어요"

그런데 며칠 뒤 조쉬가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엊저녁에 샬로츠빌에 있는 한국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어요. (주: 샬로츠빌은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임.) 아주 맛있었는데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당신들을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군만두>와 <잡채>를 먹었고 <보리차>도 마셨어요. 여기 안 와봤으면 한번 와봐도 좋을 것 같아요."

샬로츠빌의 한국 식당에서 군만두와 잡채를 먹고 보리차도 마셨다는 조쉬.
 샬로츠빌의 한국 식당에서 군만두와 잡채를 먹고 보리차도 마셨다는 조쉬.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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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한국 음식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흥미로운 것은 '군만두' '잡채'를 한글로 적고(인터넷에서 그대로 복사해 왔단다), 그것을 다시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해 놓은 것이다.

야채와 고기, 두부로 속을 넣은 튀긴 만두인 <군만두>와 야채, 고기에 고구마 당면으로 만든 <잡채>

아무려면 한국사람이 군만두와 잡채를 모를까. 하여간 친절한 조쉬다. 나는 조쉬의 이런 정성이 갸륵해서 답장을 보내면서 불쑥 한 마디 적었다.

"조쉬,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가 봐요. 한국 여자라도 소개해 줄까요?"

조쉬에게 한국 여자를 소개해 줄까냐고 물었던 것은 그가 한국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절하고 착하기 때문이었다.

작년 여름,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젊은 총각 조쉬는 이삿짐을 나르는 우리에게 다가와 도울 일이 없냐고 물었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쪽지에 전화번호, 이메일까지 친절하게 적어주고 갔다. 또, 며칠 뒤에는 이웃이 된 걸 환영한다며 직접 만든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가져오기도 했다.

손맛이 뛰어난 미국인 총각 조쉬가 만든 복숭아 아이스크림.
 손맛이 뛰어난 미국인 총각 조쉬가 만든 복숭아 아이스크림.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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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뿐만이 아니다. 조쉬는 나이 든 분들이 많이 사는 이곳에서 폭설이 내리면 삽을 들고 나와 부지런히 찻길을 치우는 인정 많은 총각이다. 그래서 이런 착한 남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줄까냐고 물은 것이었다. 조쉬의 답장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물론이에요(Sure!). 저는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마음이 열려 있거든요."

한국 음식을 사랑하는 조쉬가 이번에도 한국 음식 얘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집 냉장고에 불고기를 재워놨어요. 인터넷에서 불고기 조리법을 배웠거든요."

조쉬가 보낸 또 다른 메일이다.

"어제는 유자차를 샀어요. 저는 한국 음식을 좋아해요. 그래서 한국 음식 만드는 법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불고기, 비빔밥,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저에게 기본적인 한국 음식 조리법을 가르쳐 줄래요?"

조쉬의 '한국 음식 사랑' 열정이 식을 줄 모른다. 그래서 요리에 별 취미가 없는 나 대신 탁월한 요리사인 남편을 소개해줄까 생각 중이다.

그나저나 조쉬와 같은 친절한 남성을 만나면 여성이 한평생 편할 텐데 혹 관심 있는 여성이 있을는지. 이참에 한 번 '마담 뚜'로 나서 보나 어쩌나? ^^

어린 시절 꿈이 이루어지다! 조쉬는 지난 6월, 오레곤주 아스토리아에 있는 '구니스 하우스'를 찾아갔다. 이곳은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이 모험 영화 'The Goonies'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조쉬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을 가고 싶어했는데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다고 좋아했다.
 어린 시절 꿈이 이루어지다! 조쉬는 지난 6월, 오레곤주 아스토리아에 있는 '구니스 하우스'를 찾아갔다. 이곳은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이 모험 영화 'The Goonies'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조쉬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을 가고 싶어했는데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다고 좋아했다.
ⓒ Josh Baug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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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 음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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