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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임도를 따라 올라와 고갯마루에 서니, 층층이 다랑논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가을걷이 때에 오면 더욱 남다른 풍경이 되어 있겠네요.
▲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다랑논 거친 임도를 따라 올라와 고갯마루에 서니, 층층이 다랑논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가을걷이 때에 오면 더욱 남다른 풍경이 되어 있겠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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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 마을 뒤쪽으로 넘어가는 산길은 우리가 다녀본 여느 임도와는 매우 달랐어요. 사람이 다닌 흔적도 거의 없거니와 길은 좁고 잡풀이 많이 자라나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탈 곳보다 끌고 가야할 곳이 더 많더군요. 다행스럽게도 마을에서 그리 높이 오르지 않았는데도 너르고 편한 길이 나왔기에 한숨을 돌렸답니다.

오늘은 이 산길을 넘어가서 산 밑에 있는 문포동을 거쳐 신분차별 없이 공부를 가르쳤다는 대방동 '도산서당'을 둘러보고 난 뒤, 다시 영취산 임도를 타고 신라천년고찰 '감응사' 절집까지 가볼 생각이었답니다.

기산 농공단지 앞에서 행정리 마을 뒷산을 올라가는 임도가 나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고, 매우 거친 길이었답니다.
▲ 거친 산길 기산 농공단지 앞에서 행정리 마을 뒷산을 올라가는 임도가 나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고, 매우 거친 길이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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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다랑논이 아름다운 물안개마을

한 식구로 보이는 분들이 다랑논에다가 모를 심고 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인데도 이앙기가 올라와서 일손을 덜어주네요.
▲ 다랑논 모내기 한 식구로 보이는 분들이 다랑논에다가 모를 심고 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인데도 이앙기가 올라와서 일손을 덜어주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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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리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서니 한창 모내기를 하는 한 식구들이 보였어요. 언뜻 보기에도 층층이 다랑논으로 모두 모를 심으려고 물을 가득 대놓았어요. 경사도가 꽤나 가파른 곳인데도 예까지 이앙기가 올라왔고 그리 넓지 않은 논바닥에 '착착 착착…' 모를 심고 있었어요.

일하시는 분들한테 인사를 하고 마을 쪽으로 내려다보니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층층이 물을 가득 메워두고 모심기만 기다리고 있는 다랑논 풍경이 매우 멋스러웠어요. 아마도 올 가을쯤에 여기 다시 온다면, 더욱 멋진 풍경이 되어 있을 듯하네요.

다랑논을 옆에 끼고 신나는 내리막을 달려갑니다. 문포동(물안개마을) 마을 앞에는 커다란 신도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어 그것만으로도 이 마을에 남다른 역사를 지닌 듯합니다. 한문글자로 빽빽하게 적어놓았기에 자세하게 알 순 없어도…. 이 마을엔 1445년 좌찬성과 강원감사를 지낸 권희맹 어른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고 그 신도비가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분의 넋을 기리며 그 한 일을 신도비에 새겨두었답니다.

아이고, 가는 날이 장날일세!

문포동에서 조금 내려오니, 바로 다음 마을인 대방동이에요. 여긴 '도산서당(경상북도 기념물 제59호)'이 있는 곳이지요. 골목을 따라 소박하고 오랜 세월을 그대로 지닌 듯한 '보건진료소' 옆으로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그 좁은 길에 커다란 트럭 두 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어요. 차를 가만히 살펴보니 '출장뷔페', '외식뷔페' 라는 글이 적혔는데 아마도 무슨 행사를 하는 듯했지요.

문방리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요. 문방리는 다랑이논을 따라 내려와 첫 마을인 문포, 도산서당이 있는 대방동, 그 아래 종산동을 합쳐 문방리라고 합니다. 보건진료소 옆 모퉁이 길을 따라 가면 도산서당이 나옵니다.
▲ 문방리 보건진료소 문방리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요. 문방리는 다랑이논을 따라 내려와 첫 마을인 문포, 도산서당이 있는 대방동, 그 아래 종산동을 합쳐 문방리라고 합니다. 보건진료소 옆 모퉁이 길을 따라 가면 도산서당이 나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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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 오늘 뭐 하는 날인가?"
"글쎄말이야 그래도 한 번 들어가 보자. 어차피 여기 보고 가려고 했잖아."

서당 마당에는 어느새 천막이 쳐있고 마루 밑엔 커다란 스피커가 놓여있습니다. 몇 사람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행사 준비를 하는데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오늘 이곳에서 '남양 홍씨' 종친회를 한다고 하더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어요. 하는 수없이 말씀을 드리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둘러봅니다. 한눈에 봐도 오랜 시간이 흐른 듯 서당 곳곳에서 세월이 묻어났습니다. 이 도산서당을 처음 지었을 때가 1799년 조선 정조 때이고 그 뒤로도 몇 번 고쳐지었다고 하는데,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무엇보다 퍽 남달랐던 건, 마루에 걸려있는 현판과 편액들이 무척 많았어요. 오랜 역사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지요. 이 도산서당은 처음 홍우범이 '죽림재'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운 뒤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 꾸려온 곳이랍니다.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학생들을 받고 가르치기에 힘썼대요. 일찍이 평등교육을 내세운 바탕이 된 곳이지요.

신분 차별 없는 평등교육의 바탕이 된 도산서당

가는 날이 장날? 우리가 도산서당을 찾았을땐, 종친회 준비로 몹시 바빴답니다. 바쁜 분들 앞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는 것도 방해가 될까 매우 조심스러웠답니다. 그래도 이분들은 도리어 미안해하시더군요.
▲ 남양 홍씨 종친회 가는 날이 장날? 우리가 도산서당을 찾았을땐, 종친회 준비로 몹시 바빴답니다. 바쁜 분들 앞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는 것도 방해가 될까 매우 조심스러웠답니다. 그래도 이분들은 도리어 미안해하시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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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준비하느라고 모두 바쁘게 움직이는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그분들한테 방해가 될 듯해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어요. 천막에 가려져 서당 전체 모습이 한눈에 나오는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지요. 바쁜 틈에도 나름대로 꼼꼼하게 구경을 하고 둘러보는데, 마당 앞에 무척 오래 되어 뵈는 키 큰 향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채로 쇠막대기에 기대어 힘겹게 서있는 게 보였어요. 또 그 아래에는 빗돌 하나가 반 토막이 난 채로 서있고요. 이 서당과 가까운 곳에는 '고산숙'이라고 하여 홍우범의 후손들이 크게 새로 넓힌 곳인데, 그곳 또한 서당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그대로 알게해 준 향나무입니다. 나무 둥치 모양만 봐도 알겠지요? 가지마다 축 늘어져있어 쇠막대기로 받쳐놓았더군요.
▲ 도산서당 향나무 오랜 세월을 그대로 알게해 준 향나무입니다. 나무 둥치 모양만 봐도 알겠지요? 가지마다 축 늘어져있어 쇠막대기로 받쳐놓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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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에서 종친회 행사를 준비하던 어르신 두 분이 우리를 눈 여겨 보셨어요. 이분들도 바로 이 서당을 세운 홍우범의 후손들인데, '남양 홍씨' 문중의 어른들이셨어요. 예까지 일부러 찾아왔을 텐데, 때마침 종친회 행사 때에 맞춰온 걸 도리어 미안해 하면서 나중에 꼭 다시 한 번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도 벌써 오래 앞서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뒤에 도둑이 한 번 들었다고도 얘기해줬어요. 서당 안에 보관해두었던 옛날 책들을 모조리 훔쳐갔다고 몹시 안타까워하셨지요. 우리가 이런 문화재를 찾아다니면서 둘러본 곳에서 자주 듣는 얘기였어요. '문화재'라고 하면 어디든지 그런 나쁜 사람들이 먼저 눈독을 들이고 몹쓸 짓을 하는지 참 속상했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맘먹고 산 넘어 달려온 길인데, 종친회 행사 때문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게 퍽 아쉬웠답니다. 어르신들 말씀대로 나중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 나옵니다. 또 다음에는 미처 구경하지 못한 '고산숙'도 둘러봐야겠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좀 더 늦게 왔더라면 종친회를 하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겠단 생각도 들었답니다. 이런 행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나름대로 볼거리가 있었을 텐데….

도산서당을 나와서 이제 우리가 내려왔던 길을 다시 거꾸로 올라갑니다. 그 길에서 또 왼쪽으로 꺾어서 임도를 타고 가면 신라 천년고찰 '감응사'로 갈 수 있습니다. 감응사는 얼마 앞서 기사로도 소개했던 돌담으로 둘러싸인 '한개마을' 바로 위에 있는 곳이랍니다. 푸르고 싱그러운 영취산 임도를 따라 또 다시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도산서당에는 편액이 무척 많았어요. 모두가 무척 오래 되어 보였고요. 남양 홍씨 후손 가운데 성주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가장 먼저 희생되었던 우송(友松) 홍기섭 선생도 바로 이곳 대방동에서 난 분이랍니다.
▲ 도산서당 편액 도산서당에는 편액이 무척 많았어요. 모두가 무척 오래 되어 보였고요. 남양 홍씨 후손 가운데 성주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가장 먼저 희생되었던 우송(友松) 홍기섭 선생도 바로 이곳 대방동에서 난 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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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 앞마당 한쪽에 이렇게 빗돌 하나가 있었어요. 반 토막이 난 채로 있는데 미처 그 까닭을 여쭤보지 못했답니다.
▲ 반토막 난 빗돌 도산서당 앞마당 한쪽에 이렇게 빗돌 하나가 있었어요. 반 토막이 난 채로 있는데 미처 그 까닭을 여쭤보지 못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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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산서당, #문방리, #홍우범, #영취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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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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