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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르신들 손길을 거치면 투박하고 거칠던 땅도 금세 푸른빛으로 넘실댑니다. 산비탈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자투리땅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애써 가꾸시는 걸 보면...
▲ 자투리땅 농사꾼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르신들 손길을 거치면 투박하고 거칠던 땅도 금세 푸른빛으로 넘실댑니다. 산비탈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자투리땅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애써 가꾸시는 걸 보면...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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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주 동안은 시골풍경을 따라 많이 다녔답니다. 날씨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무척 좋고, 하루가 다르게 푸르게 바뀌어가는 들판을 보는 재미도 퍽 쏠쏠합니다. 운 좋게도 어느 마을 들녘에서 어르신들과 얘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날은 더욱 기쁜 날이지요.

들판 풍경을 보고 있자면 늘 느끼는 거지만, 우리네 농사꾼들 손길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이른 봄부터 집 앞 텃밭에서 허리를 굽히고 온종일 거름 주고 씨 뿌리며 일하는 어르신들의 손길은 어느 샌가 온통 푸른빛으로 밭 한 가득 채웁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와서 허리 굽힌 채 일하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우리 같으면 10분도 못 있고 벌떡 일어날 테니까요.

몇 주 앞서 성주군 벽진면 월곡리 산길을 넘어올 때였어요. 길이 끝나는 곳에 어르신 부부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자투리땅에서 부지런히 김을 매고 계셨지요. 가만히 보니 이제까지는 밭으로 쓰지 않던 곳이었어요. 산비탈 한 쪽 귀퉁이에 붙은 땅인데, 크고 작은 돌을 골라내고 밭을 갈고 있는 걸 보니 알겠더군요.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어르신들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보아 올 가을엔 이 작은 자투리땅도 무언가 풍성한 열매를 거둬들이겠지요.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 어느 들녘을 지날 때였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납니다. 손수레를 매단 채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누런 소를 보았습니다. 얼마 앞서 영화로 봤던 '워낭소리'가 떠오르더군요.
▲ 워낭소리?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 어느 들녘을 지날 때였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납니다. 손수레를 매단 채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누런 소를 보았습니다. 얼마 앞서 영화로 봤던 '워낭소리'가 떠오르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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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좀 봐! 우와 그림이다. 딱 '워낭소리'네."
"이야! 참말로 멋지다. 요즘 저렇게 밭에서 풀 뜯는 소는 보기 힘든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요? 참으로 멋진 풍경, 사진감이 되는 풍경이 눈에 번쩍 띄었답니다. 자전거를 타고 군위군 소보면 지방 국도를 신나게 달리고 있을 때였어요. 누런 소 한 마리가 손수레를 매단 채로 논둑 곁에서 풀을 뜯고 있었어요. 요즘은 논둑이나 밭둑에도 잡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치는 걸 자주 보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걸 보니 무척 신기했답니다. 게다가 그 풍경이 마치 얼마 앞서 영화로 봤던 <워낭소리>의 한 장면 같기도 했지요. 그러고 보니, 풀을 뜯는 소 곁에는 어르신 부부가 빈 모판을 옮기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 또한 워낭소리의 주인공 할아버지 할머니 같았어요. 멀리서 사진을 찍으며 말을 건네는 우리를 보고 할머니는 손을 흔들어주면서 나그네를 반겨줍니다.

땅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던가? 그 진리를 믿으며 온삶을 땅과 벗삼아 부지런하게 일하시는 어르신들, 농삿일 하는 어른들을 뵐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농사꾼 어르신 부부 땅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던가? 그 진리를 믿으며 온삶을 땅과 벗삼아 부지런하게 일하시는 어르신들, 농삿일 하는 어른들을 뵐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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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일)는 칠곡군 왜관읍 들녘을 가로지르는데, 올해 처음으로 모심는 풍경을 만납니다. 군데군데 논바닥을 한바탕 뒤집어 갈아놓은 걸(이쪽 경상도에서는 모 심기에 앞서 땅을 갈아엎는 걸 '로타리 친다'라고 한답니다) 봤는데, 어느새 모를 심고 있었어요. 그 옛날 이맘때면, 마을 사람들 모두 나와서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은 채로 양쪽에선 못줄을 잡고 줄을 맞춰 흥얼흥얼 콧노래도 부르면서 모내기를 했지만 요즘은 그런 풍경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요. 논에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두메산골 다랑이 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지난해엔 운 좋게도 경북 김천시 대항면 방하 마을에서 손수 모를 심는 풍경을 구경했지요.

우리가 어릴 적에만 해도 이런 풍경은 쉽사리 봤지만, 요즘은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은 모습이랍니다. 이 사진은 지난해에 경북 김천시 대항면 방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손으로 모심기 우리가 어릴 적에만 해도 이런 풍경은 쉽사리 봤지만, 요즘은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은 모습이랍니다. 이 사진은 지난해에 경북 김천시 대항면 방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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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논마다 모를 심겠지요? 부디 저 푸른빛이 잘 영글어 들판 가득 누렇게 알알이 풍년이 들기를 기도한다면 너무 이른 바람일까요?
▲ 모판 이제 곧 논마다 모를 심겠지요? 부디 저 푸른빛이 잘 영글어 들판 가득 누렇게 알알이 풍년이 들기를 기도한다면 너무 이른 바람일까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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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모심는 풍경을 봅니다. 그 옛날과 달리 기계 몇 대와 두어 사람만 있으면 저 너른 땅에다가 금세 모를 심습니다.
▲ 모심기 올해 처음으로 모심는 풍경을 봅니다. 그 옛날과 달리 기계 몇 대와 두어 사람만 있으면 저 너른 땅에다가 금세 모를 심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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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앙기 한 대와 곁에서 일손을 돕는 이 하나, 아마도 이분들도 부부로 보이는데, 이제는 기계 때문에 모심으려고 일손이 그리 많지 않아도 됩니다. 농삿일을 하는 분들한테는 더없이 고마운 물건이지요.
▲ 기계가 대신하는 모심기 이앙기 한 대와 곁에서 일손을 돕는 이 하나, 아마도 이분들도 부부로 보이는데, 이제는 기계 때문에 모심으려고 일손이 그리 많지 않아도 됩니다. 농삿일을 하는 분들한테는 더없이 고마운 물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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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어릴 적에 보던 정겨운 풍경에 견줄 수는 없지만, 모심기는 지나가던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아 맵니다. 온 마을 사람이 한데 어울려서 일하는 풍경 대신에 트랙터와 이앙기가 논 한 가운데 있고 겨우 두어 사람만이 나와서 모를 심을 뿐입니다. 그래도 얼마 안 있으면 이곳도 푸른빛으로 가득 메울 걸 생각하니 보는 이도 저절로 뿌듯하고 기쁩니다.

농사꾼들 부지런한 손길은 참으로 높이 우르를 만하답니다. 일한 대로 되돌려 주는 땅, 가꾸는 이를 속일 줄 모르는 '땅'을 믿으며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그 곁을 지나가면서 푸근한 풍경에 감탄하며 스쳐가는 한낱 나그네일 뿐이지만, 부지런하게 땅을 일구면서 온종일 논과 밭에서 허리 굽혀 일하시는 우리네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소박하게 삶을 꾸리면서도 땅을 동무 삼아 당신들의 삶까지도 부지런하게 일구어내는 농사꾼 어르신들한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바쁜 일손 때문에 힘들고 지칠 텐데도 지나가는 나그네한테 손을 흔들어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는 그 넉넉한 마음 씀씀이도 참으로 고맙습니다.

어르신들, 올 한해도 그저 비올 때 와주고, 해날 때 해가 나서 부지런하게 애쓰며 가꾼 당신들의 손길이 알찬 열매로 거짓 없이 보답해주기를 바랍니다.

노인과 텃밭
부지런한 손길로 가꾸는 텃밭, 어르신들 손길은 참으로 우르를 만하다.
 부지런한 손길로 가꾸는 텃밭, 어르신들 손길은 참으로 우르를 만하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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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부터 온종일
허리 한 번
곧게 펴는 일 없다.

굽힌 허리와
때때로
토닥토닥 두들기는
손 방망이 하나면
기름진 땅이 된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
노인이 쉼 없이 흘리는
땀과 만나면
풍성한 열매 맺는
푸른 목숨이 숨 쉰다.

벌써 거두고도 남음이 있는
열매가 웃는 소릴 듣는다.

시/ 손현희


태그:#농사꾼, #모내기, #시골풍경, #워낭소리,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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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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