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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오마이뉴스> 편집부가 '불황이 OOO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사를 공모한다는 글을 봤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물어 봤죠. "요즘 특별히 힘들어요? 불황이라고 하니까..." 마침 누군가 이렇게 말하네요. 어차피 없는 사람들은 항상 불황이라고. 다만 예나 지금이나 힘들었는데 요즘은 정말 더하다고.

 

당장 반찬에서 드러나는 불황이기도 하지만 저의 경우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얼마 전 역 앞에서 밥도 못 먹고 노숙하시는 분이 계셔서 1000원을 드린 적이 있거든요. 작년 겨울에는 또 다른 분께 5000원을 드렸고요. 몇년 전에 2만원을 드린 것이 가장 많은 액수였던 것 같습니다. 갈수록...극 빈곤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돈이 줄어들고 있더라고요. 전철 안에서 파는 껌도 일부러 항상 샀었는데 요즘은...

 

사실 제가 사는 동네는 빈곤층과 중산층, 어느 정도 돈이 많은 계층이 함께 지내는 곳입니다. 수십 년 된 소형차와 신형 외제차가 나란히 도로 위를 달리는 곳이기도 하고요. 역 주변엔 노숙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침부터 고물을 수집하러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습니다.

 

저 또한 얼마 전 20Kg 정도 신문을 모아 고물상에 가져다 준 적이 있습니다. 집에선 먼 곳이라 가방에 넣어 낑낑대고 메고 갔는데 도착하니 사우나를 한 것처럼 땀이 흠뻑. 손에 쥐어진 돈은 천원. 천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벌기가 힘들구나 그때 새삼 느꼈습니다. 천원의 가치. 그 무게감은 30분 동안 20Kg을 등에 짊어지고 가서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밑바닥을 사는 서민들에겐 말이죠.

 

그런데 골목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하루 종일 여러 동네를 돌아야 모을 수 있는 분량의 파지들이 리어카에 가득 실려 있는 겁니다. 시간은 아직 점심이 조금 지났는데 말이죠. 어떻게 벌써 저리도 모아왔나 싶어 고물상에 들어가 물어봤습니다. 할머니들이 폐품들을 정리하고 계시네요. 그분들 전부를 사진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될 수 있으면 얼굴 안 나오는 사진만 찍고 고물만 찍기로 했습니다.

 

"이거?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지. 오늘 마트 개업식이라서 잔뜩 나온 거야."

 

 

 

새로 오픈한 마트에는 장보는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창고 밖까지 쌓여있는 물건들과 그 옆에서 빈 박스들을 계속 정리하시는 할아버지. 매장 안에서는 계속해서 가져다줍니다. 사람이 바글바글 하군요. 그런데 막상 저렇게 파지들을 모아 생활하시는 분들은 마트에서 얼마나 물건을 사실 수 있을까요. 한 달에 몇 번이나 저곳에서 장을 보실 수 있을지. 저 할아버지는 오늘 운이 좋은 날입니다. 리어카 하나에 8000원 정도 버셨다니까요. 그마저 끌힘도 없는 할머니나 아프신 분들은 하루에 1000원~2000원 버는 수준입니다.

 

실제로 제가 고물상에 갔을 때도 어느 할머니께서는 680원을 받고 계시더군요. 마트 오픈 덕을 보셨는데도 이렇습니다. 주로 동네에 버려진 폐휴지들을 모아서 가져다주시는데 종이컵, 신문지, 박스 닥치는 대로 모아봤자 얼마 안하죠. 그런데도 이렇게 쓰레기 더미에서 폐지를 모으시는 이유는 생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부 보조금이 29만원 조금 넘게 나오지만 사글세 방값을 내니 얼마 남지 않으시고 예전에 사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약값도 많이 들어가신다고 합니다.

 

"물가 오른 거 비하면 우리 생활비는 어림도 없어."

"그런데 장애인 수당은 안 받으시는 거예요?"

"요즘 나라도 어려운데 영세민 보조 해주는 것도 어디야...미안해서 (장애인)등록 안했어."

 

실제로 이 할머니 말고도 고물상에서 일하시는 분 또한 몸이 성치 않으십니다.

 

"먹고 살려고 하다가 손도, 허리도 병신이 됐어. 허리는 휘고 관절은 부어올라 항상 아픈데도 이 일을 계속 해야지 약이라도 먹고 굶어 죽지 않아."

"할머니, 병원에 마지막으로 가신 적이 언제에요?"

"병원...가면 좋은데..."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살기 위해서 모여드는 이곳에 민원이나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고물 정리할 때 시끄럽다는 등의 이유로 말이죠.

 

"사실 몇 년 전에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쫓겨 왔어. 없는 사람이 조그만 땅 얻어서 먹고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데도...여기서도 지금 세금도 못 내고 있어. 주변에 장사가 안돼서 고물은 안 모이고 모아봤자 가격도 얼마 안하고. 그런데 어떻게 (항의하고) 이럴 수가 있어. 국민성이 틀렸어...(약간 성이 나셔서)왜 없는 사람을 괄시해!"

 

마침 고물상 옆에는 대형 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데 간혹 가다 신도들이 지나가면서 눈을 흘기며 뭐라고 안 좋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더군요. 여기에 대해서 할머니들은 너무도 서운해 하셨습니다.

 

"요즘은 예수가 기업이야, 기업! 나가라고 하고! 다행히 (그곳)목사님은 나쁜 말 안하시지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몰라. 대통령이 장로라서 그러는 게야?"

"그분은 소망교회라고...다른 교회 다니세요."

"그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말할 때마다 대통령이 장로라고 하던걸?"

"..."

 

"이제 여기서도 쫓겨나면 우린 갈 데가 없어. 동네를 떠나서 시내로 가면 죽으라는 소리야. 전부다 노인네들이 리어카로 고물 끌어 오는데 시내로 가면 그걸 어떻게 끌고 와..."

 

"너 안 죽으면 나 죽는다...이러고 사니...(김수환)추기경 신부님처럼 우리도 그리 살아야 하는데..."

 

사실 고물상은 자원의 순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산업입니다. 그런데 왜 무시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어서 고생하신 분들이 늙어서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나라라니. 그래도 이분들의 고물상 앞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거 뉴스>, <스쿨 오브 오마주> 등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불황, #고물상, #극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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