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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땔감을 작은 짐수레에 싣고 힘겹게 마을 고샅길을 지나간다.
 할머니가 땔감을 작은 짐수레에 싣고 힘겹게 마을 고샅길을 지나간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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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길을 떠나는 것이다. 하루하루 쉼 없이 걸어온 길, 인생길도 어쩌면 여행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나는 오늘도 길을 떠난다. 그냥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길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빠! 우리 여행가자."
"어디로 갈까?"
"그냥, 여수만 벗어나면 돼."
"목적지가 있어야지."
"콧구멍에 바람만 쐬면 되지 뭘~"
"그래, 그냥 가자."

갑작스레 떠나기로 한 여행, 집이 갑자기 부산하다. 물을 끓여 보온병에 가득 담고 김밥과 컵라면을 구입하고 귤 등의 과일을 챙겼다. 여행준비 끝. 자~ 이제 출발이다. 국도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여수에서 출발 순천을 경유 58번 도로를 따라가는 길은 스치는 풍경마저 정겹다.

겨울풍경에 취해 멈춰서길 반복하다

돌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석공의 정성과 혼이 서려있는 듯해 가슴이 뭉클해진다.
 돌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석공의 정성과 혼이 서려있는 듯해 가슴이 뭉클해진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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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부근의 초가집
 낙안읍성 부근의 초가집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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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기찻길 건널목, 간간이 보이는 전원주택, 눈길 닿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이름 모를 마을 앞의 정각을 지키는 느티나무와 다랑이 논의 풍경들에 취해 멈춰서길 반복한다.

낙안자연휴양림 길은 굽이굽이 물결모양으로 흘러간다. 낙안면사무소 건너편에 쌓아놓은 이색적인  돌탑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든다. 작은 돌멩이를 촘촘히 쌓아올려 맨 꼭대기의 자연석에 얼굴을 새겨 놓았다. 자연석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석공의 정성과 혼이 서려 있는 듯해 가슴이 뭉클해진다.

낙안읍성 성곽을 따라 돈다. 한 소녀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성곽 위를 총총히 걸어간다. 초가집 뒤란의 나목에는 바싹 말라비틀어진 하늘수박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차는 낙안읍성을 지나 오르막길을 거슬러 오른다.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 수십 마리가 무리지어 차 앞을 위태롭게 스쳐지나간다.

다랑이 논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다랑이 논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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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면이다. 장산삼거리에서 송광사방면(15. 27번국도)으로 길을 잡았다. '전국최우수딸기묘생산단지'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걸 보니 이곳은 딸기재배를 많이 하는가보다. 메타세콰이어 나목이 길게 늘어선 텅 빈 겨울 길을 차는 시원스레 달린다.

송광면 신촌마을이다. 할머니 한 분이 땔감을 작은 짐수레에 싣고 힘겹게 끌고 간다. 점심 무렵을 약간 지난시간인데도 시골마을의 굴뚝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음메~' 소 울음소리 들려온다.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누리는 호사가 아닐까

등나무아래 벤치에 점심상을 차렸다. 컵라면과 김밥 과일 몇 개가 전부이지만 그 어느 성찬보다 더 좋다.
 등나무아래 벤치에 점심상을 차렸다. 컵라면과 김밥 과일 몇 개가 전부이지만 그 어느 성찬보다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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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맞으며 후루룩~ 마시는 컵라면의 맛은 차마 글로 표현키가 어렵다.
 찬바람 맞으며 후루룩~ 마시는 컵라면의 맛은 차마 글로 표현키가 어렵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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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을에 찾아와 갈대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했던 고인돌공원이다. 이곳에 잠시 머물까하다 시장기가 돌아 그대로 지나쳤다. 배고프다 보채는 아이들 때문이다. 대여섯 대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주암호 수변공원에 차를 세웠다.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호수 같은 주암호의 시원스런 모습이 발아래다.

등나무 아래 벤치에 점심상을 차렸다. 컵라면과 김밥 과일 몇 개가 전부이지만 그 어느 성찬보다 더 좋다. 찬바람 맞으며 후루룩~ 마시는 컵라면의 맛은 차마 글로 표현키가 어렵다. 아이들은 맛이 짱이라며 좋아한다.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누리는 호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수변공원의 정각에 올라 굽어보니 주암호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수원인 주암호는 오랜 겨울가뭄으로 속살을 드러냈다.

서재필공원에 들렸다. 덩치 큰 대리석의 독립문이 인상 깊다.
 서재필공원에 들렸다. 덩치 큰 대리석의 독립문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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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호에 잠겼던 옛 농토의 구획선과 실개천, 작은 다리가 초췌한 모습이다. 호수는 오랜 갈증으로 바닥의 속살까지 훤히 드러낸 것이다.
 주암호에 잠겼던 옛 농토의 구획선과 실개천, 작은 다리가 초췌한 모습이다. 호수는 오랜 갈증으로 바닥의 속살까지 훤히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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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산기슭도 목마름으로 말라간다.
 멀리 산기슭도 목마름으로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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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와 소리의 고장 보성이다. 서재필공원에 들렸다. 덩치 큰 대리석의 독립문이 인상 깊다. 주암호로 가까이 다가갔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오른다. 주암호에 잠겼던 옛 농토의 구획선과 실개천, 작은 다리가 초췌한 모습이다. 호수는 오랜 갈증으로 바닥의 속살까지 훤히 드러낸 것이다. 멀리 산기슭도 목마름으로 말라간다.

차는 계속 달린다. 화순이 가까워 올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길을 떠나라. 그냥 도로의 흐름을 따라가다 발길을 멈추고 이곳저곳 기웃거려보라. 그곳에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한조각의 추억이, 정겨운 모습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겨울풍경, #여행, #주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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