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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르는 산이 어떤 곳인지 대충 아시죠? 엄청나게 싸늘한 칼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땀을 흘리면 위험하니까 등산을 시작할 때는 속에 입은 보온 조끼를 벗고 시작하셨다가, 능선길에 올라 칼바람이 불면 그때 껴입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등산대장이 산행안내를 하면서 겁을 준다.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날씨는 추웠다. 일기예보는 아침기온이 영하 6도, 낮 최고 기온도 섭씨 1도 정도로 추울 것이라고 했다. 달리는 버스 유리창은 바깥 날씨가 추운 탓에 성에가 잔뜩 끼어 희부연 모습이었다.

 

지난 6일 아침 8시에 서울 상일동을 출발한 버스는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강원도 평창에 있는 옛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싸늘한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어 온몸으로 엄습한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온 등산객들이 다시 복장을 점검하고 산길로 나섰다.

 

주차장 옆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10여개의 눈사람들이 동글동글 귀엽고 예쁜 모습이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산길 입구에는 ‘대관령국사성황당’ 입구라는 거대한 표지석이 서있었다. 길은 왼편을 향하고 있었다.

 

산길은 평탄하고 좋았다. 완만한 경사에 제법 넓은 길이었다. 오른편 언덕위에는 통나무들을 엮어 세운 울타리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세워놓았는지 용도는 짐작할 수 없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길바닥은 얼어붙어 있고 양쪽에는 눈이 쌓여 있는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모한 차량운행과 겨울 선자령을 좋아하는 등산객

 

그 때 뒤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며 승합차 한 대가 달려왔다. 그런데 옆을 지나치는 모습을 보니 바퀴에 아무런 안전장구를 갖추지 않은 모습이었다. 승합차는 조금 더 달려가다가 약간의 오르막길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몇 번인가 빙판에서 미끄러지며 헛바퀴를 굴리다가 포기하고 천천히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기가 어디라고 체인도 감지 않고 이곳을 올라가려고 해. 거 참!”

 

등산객들이 혀를 찬다. 날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대관령 산길을 준비 없이 차량 운행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모한 행동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앞장선 사람들이 넓은 길에서 숲속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숲속  길은 쌓인 눈이 장난이 아니었다. 발자국 깊이가 20~30cm 정도로 깊이 파여 있었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며 따라가다가 발자국이 없는 곳을 밟아보니 얼었던 윗면이 푹 꺼지면서 무릎근처까지 눈 속으로 쑤욱 빠진다.

 

숲길을 건너자 다시 임도다. 임도를 지나자 키 작은 마른풀들이 보송보송한 둥그렇고 넓은 양지 쪽 평원이 나타났다. 언덕 이곳저곳에는 수많은 풍력 발전기들이 커다란 날개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기도 하고 멈추어 있는 것들도 보인다.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은 잔잔했다. 그래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에 귀가 시려 모자에 달린 귀 덮개를 내리고 걸었다. 그런데 양지쪽에 들면 바람도 가려지고 햇살이 따뜻해서 온몸에 땀이 흘렀다. 모자도 벗어야 했다.

 

“아니 얼어 죽을까봐 걱정했는데 춥기는커녕 오히려 무더운 걸, 이건 완전히 봄 날씨잖아?”

 

일행들이 등산복 상의 앞섶을 열며 땀을 닦는다.

 

“나는 올겨울 들어서만 이 산이 벌써 세 번째인데 이렇게 따뜻한 날은 오늘이 처음이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정말 얼어 죽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백두대간 선자령구간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데요, 허허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등산객은 수많은 등산코스들 중에서 대관령과 선자령 구간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부드러운 능선과 완만한 경사. 그리고 동해를 조망하며 걷는 산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번씩 이 구간 등산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철이 최고지요, 오늘은 눈이 많이 녹아버려서 아쉽네요. 저 둥그런 봉우리와 초지 평원에 수북하게 눈이 쌓이고 앙상한 나무들이 피워낸 눈꽃을 감상하며 걷는 기분, 그거 대단합니다. 눈이 많이 내려도 이 코스는 위험하지 않아서 더욱 좋아요.”

 

그는 선자령 구간의 겨울 산행에 푹 빠진 사람이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며 걷다가 선자령이 저만큼 앞에 보이는 길에서 바람에 날려 눈이 쌓인 언덕을 오르려다가 눈 속으로 푹 꼬꾸라졌다. 지형이 움푹 파인 곳에 눈이 쌓여 있는 걸 모르고 뛰어 들었다가 가슴까지 눈 속으로 빠져 들며 허우적거리게 된 것이다. 그의 손을 붙잡고서야 겨우 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니 선자령이 고개마루턱인 줄 알았는데 산봉우리네.”

“그러게 말이야. 산 이름을 왜 고개이름처럼 지어놓았을까?”

 

정말 그랬다. 선자령을 처음 찾은 나도 선자령이라는 이름은 봉우리 밑에 있는 고개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선자령은 엉뚱하게도 산봉우리 이름이었다.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산봉우리 이름에 특이하게 고개이름이 붙여진 선자령

 

표지석엔 선자령의 높이가 1157미터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대관령(832m)에서 북쪽으로 6km의 거리,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둥글지만 우뚝하게 솟아 있었다. 산 이름이 유별나게 선자산이나 선자봉이라고 하지 않고  '고개 령(嶺)'자를 써서 선자령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옛날 기록에서 찾아보면 ‘산경표‘에는 대관산이라고 기록되었고, 동국여지도에는 보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보현사의 기록을 전하는 ’태고사법’에는 만월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산 아래쪽에서 바라보면 선자령 둥그런 봉우리가 마치 떠오르는 달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선자령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표지석을 중심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우리들도 먼저 기념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로 열려 있었다. 남쪽으로는 발왕산, 서쪽으로는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이 바라보이고, 날씨가 좋아 강릉시내와 동해까지 내려다보인다.

 

동해바다 위에는 길게 구름산맥이 형성되어 있어서 더없이 신비롭고 황홀한 모습이었다. 능선 서쪽으로는 둥글둥글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지며 옛 목장 풀밭 곳곳에 하얀 눈이 덮여 있고 사이사이 서있는 풍력발전기 날개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상에서 간식을 나눠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정상에서 새봉으로 내려가는 응달길도 눈이 깊었다. 눈길을 빠져나와 다시 임도를 따라 걷다가 눈 쌓인 언덕을 넘어서자 저 아래 풀밭 가운데 우뚝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골짜기를 지나 산봉우리에 서있는 풍력발전기 탑과 날개가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잘록한 허리 모양의 골짜기를 지나 언덕에 오르니 이 봉우리가 바로 해발 1130미터 곤신봉이었다. 곤신봉에서 잠깐 쉴 때 모두들 벗었던 아이젠을 다시 착용한다. 이제부터 내려가는 길은 온통 눈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들도 모두 아이젠을 착용했다. 겨울철 산행 눈길에서 아이젠만큼 유용한 안전장비도 없을 것이다.

 

하산길로 접어들자 정말 온통 새하얀 눈길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그 가파른 내리막 눈길에는 고작 3~4미터 쯤 되는 밧줄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위험한 길이어서 어느 등산객이 걸어놓고 간 것 같았다. 모두들 오금을 펴지 못하고 쩔쩔매며 내려간다.

 

여성등산객에게 큰 소리 치다 망신당한 남성등산객

 

“여자들은 어쩔 수 없어 평탄한 길은 제법 잘 걷는 것 같아도 이런 길에서는 헤맨단 말이야.”

 

앞쪽에서 쩔쩔매느라 내려가는 속도가 느린 두 명의 여성등산객을 보며 우리들 뒤쪽에서 내려오고 있던 남성 등산객 한 사람이 혀를 끌끌 찬다.

 

“보라고? 남자들은 그래도 잘 내려가잖아? 남자들은 군대에 갔다 왔기 때문에 모두들 대담하거든 허허허.”

 

뒤돌아보니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등산객이 뒤따르는 일행인 듯한 여성에게 남성을 과시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여자라고 모두 남자만 못하란 법 있나? 난 군대 안 갔다 왔어도 잘 할 수 있어.”

 

여성등산객은 몹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앞에서 쩔쩔매던 여성들이 저만큼 내려가자 우리들도 밧줄을 붙잡고 위험한 곳을 내려와 역시 급경사진 눈길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빨리 내려오지 않고 뭐하고 있어? 군대 갔다 온 남자가 이 정도 눈길에 쩔쩔 매면 되나?”

 

조금 전 뒤따라오던 바로 그 여성등산객이었다.

 

여성등산객은 보란 듯이 큰소리치던 남성을 앞질렀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까지 앞질러 성큼성큼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들도 사실 급경사 눈길에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 여성은 별로 힘들어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저 아래로 내려가면서 뒤처지는 남성등산객에게 큰소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그 여성에게 큰 소리쳤던 남성 등산객은 우리들과 비슷한 속도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 여성등산객에게 큰소리치던 패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요즘 여성들 참 무섭단 말이야. 등산은 남자들이 훨씬 잘할 것 같은데 막상 이렇게 함께 해보면 당할 수가 없으니, 저 앞에 내려가는 저 여성 좀 봐? 얼마나 대단한지. 아까 산에 오를 때도 도저히 못 따르겠더구먼.”

 

놀라워하는 건 오히려 우리 일행들이었다. 우리들은 체력에서도 기술에서도 40대 중반 쯤의 여성등산객을 도저히 따를 수 없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어어! 저 나무 좀 봐? 바위 가운데에서 크게 자란 나무가 바위를 쪼개버렸잖아?”

 

앞장서 걷던 일행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말 상당히 큰 바위 가운데 어른의 한 아름으로 안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자란 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쪼개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위 중심을 쪼개고 자란 거목과 대공산성지

 

나무 형태를 살펴보니 바위 가운데 틈새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오랜 세월동안 자라면서 바위 틈새를 점점 벌려 바위를 쪼갠 보습이 분명했다. 단단한 바위를 쪼개며 크게 자란 나무의 모습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작은 능선을 따라 더 내려가자 이번에는 커다란 소나무 앞에 ‘대공산성지’라는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주변에는 어느 곳에서도 옛 산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금 더 내려가자 길가 저만큼에 옛 산성의 흔적이 10여m 쯤 남아 있었다.

 

이 대공산성은 해발 944m 높이에 쌓은 석성과 토성 혼합형으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쌓았다는 설이 있다, 또 발해의 후손인 대씨가 쌓았다하여 대공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지리적으로 볼 때 이곳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나 발해의 후손이 성을 쌓았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공산성은 구한말 을미사변 후에 의병장 민용호가 이끄는 민병들이 왜군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유명한데 길이 4km의 성안에는 건물터와 우물터, 그리고 성문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대공산성 터를 지나 여전히 쌓여 있는 눈길을 내려오니 다시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에도 눈은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임도에서 벗어나 골짜기 옆 작은 능선길에 접어들자 눈이 점점 적어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보현사 입구 넓은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들보다 먼저 내려간 10여명의 등산객들 중에는 급경사 눈길을 거침없이 내달아 우리들을 앞질러 내려간 여성등산객도 느긋하고 여유있는 표정으로 뒤따라 내려간 다른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백두대간, #선자령, #곤신봉, #대공산성,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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