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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오일장 북적대는 사람만큼 매기는 짜투리다.
▲ 창녕오일장 풍경 창녕오일장 북적대는 사람만큼 매기는 짜투리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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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바깥날씨가 차가웠지만 장마당에 나갔다. 그러나 이른 아침이서 그런지 장 기분이 나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드문드문 장거리를 펼쳐놓은 장꾼들은 도란도란 모여 화톳불을 쬐고 있었다. 언 손을 녹이려 길손도 불티 곁으로 파고들었다. 장작 타는 불기운은 살아있다.

“오늘 장이 제대로 서겠습니까?”
  “날이 쪼매 차바서 그랗지 장은 안 되겠습니꺼?”
  “장이 서면 뭐하노. 무슨 매기가 있어야지. 요즘은 장이 제대로 섰어도 재미가 없어. 하루 종일 벌벌 떨어가며 팔아봤자 단돈 삼만 원 벌기 힘들어. 시팔, 이제 장돌뱅이도 끝장인기라.”
  “그기 다 제 살 제 베어 먹기로 생기는 대형마트 때문아이가. 인구 만 명도 안 되는 코딱지만한 읍내에 벌써 대형마트가 몇 개고? 다 망하는기라.”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누구하나 맞수걸이를 하는 상인이 없다. 괜히 말 붙이고 있는 게 미안해서 자리를 떨려고 하니까 괜찮다고 되레 손을 잡아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주섬주섬 종이상지 위에 꺼내놓는다. 때늦은 아침을 먹는다며 길손에게도 대접에다 젓가락 하나를 배당한다. 엉겁결에 받아들고 뻘춤하게 서 있으니 곁에 있던 사람이 밥주걱을 권한다. 먹을 만큼 대접에 밥을 퍼라는 시늉이다.

하루 종일 벌벌 떨어가며 팔아봤자 단돈 삼만 원 벌기 힘들어

창녕 오일장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뜸하다.
▲ 난전 모습 창녕 오일장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뜸하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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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시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먹는 밥, 화톳불에 팔팔 끓는 잡탕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상인들은 여러 반찬을 돌려먹는 것보다 냄비에다 한꺼번에 털어 넣고 끓이는 잡탕을 최고로 삼는다고 했다. 거기다가 생조기 두 마리, 물오징어, 생굴 한 접시를 추가했으니 별미가 아닐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육해공군이 총출동한 진미였다.

“이렇게 먹어야 하루 종일 추위에 떨지 않고 견뎌내는 거야.”
  “그래 맞아. 우리같이 한데서 일하는 사람은 제때 밥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고맙습니다. 모처럼 훈훈한 시장 인심을 느껴보네요. 원래 한솥밥을 먹는 사람은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고 하잖아요. 여러분이 그런 분들인 것 같아요.”
  “근데, 아까부터 사진 찍으려고 하든데, 사진만은 찍지 마소! 괜히 얼굴 팔리고 싶지 않으니까.”

순간, 불에 댄 것처럼 뜨악했다. 그렇잖아도 화톳불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밥 먹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길손의 개적인 생각이었다. 그들 중에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었다. 시장바닥에 사는 자신의 모습이 탐탁치 않다는 것이었을까.

시장상인들의 마음은 훈훈하다

매양 사람들로 북적됐던 싸전,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 싸전의 모습 매양 사람들로 북적됐던 싸전,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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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전으로 가 보았다. 마찬가지다. 여느 때 같으면 바리바리로 실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고 했다만, 오늘 장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고작해야 노인네들이 장거리를 보기 위해 한두 말 이고 오는 게 전부란다. 쌀 한 되 삼천오백 원, 찹쌀 한 되 육천오백 원이다. 그렇기에 쌀 한 말 팔아봐야 동태 고등어 두어 마리에다 소고가 한 근 끊고 나면 바닥난다.

“농사가 다 헛것이여. 늙은이가 쌀 한 말 맨드느라 얼마나 논두렁을 밟고 다녔는지 아는감? 그란디 언제나 쌀을 내다팔 때마다 그냥 빼기는 것 같아. 돈이 안 돼. 세상에 다른 물가는 다 올라가는데 쌀값은 제자리야. 말도 안 되는 휜소리여.”

조정금(78) 할머니의 노기 띤 일성이다. 할머니는 외동아들을 간암으로 먼저 보내고 혼자 사신다고 한다. 가진 것이라곤 산비탈에 손바닥만한 천수답과 밭뙈기가 전부. 그것으로는 각종 제세공과금 납부가 어려워 정부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고 했다. 지금 농촌에는 조 할머니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대개 도회지로 나가 살고 있는 아들딸이 버젓하게 있어 그나마 정부보조금도 받지 못하는 분들이 태반이다.

세상에 다른 물가는 다 올라가는데 쌀값은 제자리

싸전과 마찬가지로 어물전도 찾는이가 뜸하다.
▲ 어물전 모습 싸전과 마찬가지로 어물전도 찾는이가 뜸하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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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시장바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가 우리사회의 약자들인 서민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처한 상황을 들어보면 지금의 정치가 어떻고, 경제사정이 어떠하며, 우리사회 어디가 곪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엇박자를 놓고 있고,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딴지를 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나아가면 대학생 등록금 천만 원 시대, 더 이상 농투성이의 아이들은 대학을 보낼 길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자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분들도 형편은 똑같다.

“보다 싱싱한 생선을 가져온다고 새벽에 마산까지 물건 하러 갔다 왔는데, 아직 생선 반도 못 팔았네예. 시방 밑지는 장사 하고 있어예. 이래저래 중간상인들만 돈 버는 기라예. 안 팔리는 물건 냉동시켜봤다 본전 빼기는 어렵겠고 헐값이라도 팔린다면 팔아야지예.”

요즘은 도통 매기가 없단다. 한산한 시장모습
▲ 썰렁한 시장 풍경 요즘은 도통 매기가 없단다. 한산한 시장모습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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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점 김민수(43)씨의 맥 빠지는 얘기다. 말마따나 요즘 도통 장사가 안 된단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팔리는 정도였는데, 이달 들어 전혀 매기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연말이라 그렇겠지만 불황에다 소비심리가 잔뜩 위축되어 버렸기 때문이란다.

“그 뭣입니꺼. 아이엠에프 때도 이러지 않았습니더. 그래도 먹는 것은 쉬쉬 짬짬이 팔렸는데, 요즘처럼 장사하기가 어려워서야 어디 살겠습니꺼. 힘들다힘들다고 해도 사는 경기는 시장 분위기로 먼저 아는 깁니더.”

한 상인의 말에 다르면 하루 종일 팔아봤자 단돈 삼만 원도 건지기 힘든다고 했다.
▲ 시장풍경 한 상인의 말에 다르면 하루 종일 팔아봤자 단돈 삼만 원도 건지기 힘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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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김씨의 넋두리가 아니어도 시장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장바구니를 보면 안다. 손이 가볍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를 부양한다고 4대 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고 으르고 있다. 그게 가당찮은 얘긴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은 온당한 처방전은 아닌 것 같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당장에 서민들이 사는 형편을 바로 챙겨보지 못하고 입안하는 정책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나락에 빠진 경기침체만을 단지 탁상공론 하듯 헛배만 키우지 말고 시장바닥으로 가 보라. 혜안은 그곳에 있다.


태그:#창녕오일장, #싸전, #어물전, #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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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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