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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오른쪽)가 1일(현지시각) NBC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이하 SNL)에 출연했다. 왼쪽은 세라 페일린을 연기한 코미디언 티나 페이.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오른쪽)가 1일(현지시각) NBC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이하 SNL)에 출연했다. 왼쪽은 세라 페일린을 연기한 코미디언 티나 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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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정치인이 환영받기가 힘들겠지만, 적어도 미국과 한국에서 코미디가 정치를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NBC 방송국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이하 SNL)>는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팬이 있는데 ▲ 매주 한 명의 게스트 스타가 갖가지 에피소드에 등장해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 미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을 마음껏 풍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케이블채널 XTM이 쇼의 원제 대신 '재밌는 스타쇼'라는 어정쩡한 제목으로 방영했다가 SNL 골수팬조차 흡수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대선을 불과 3일 앞둔 1일 자정(미국 동부시 기준)에 방송된 SNL에는 놀랍게도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출연했다.

쇼에 나온 매케인 후보는 "지난 수요일 오바마는 3대 메이저 TV 방송국에 30분짜리 인포머셜(infomercial, 정보광고)을 했지만, 우리는 QVC(홈쇼핑 채널)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뒤이어 "나는 진정한 이단아, 돈 없는 공화당원"이라며 아내와 함께 기념품을 팔아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쇼에 생기를 불어넣은 사람은 매케인의 러닝메이트 세라 페일린을 연기한 코미디언 티나 페이였다(SNL 코미디언 겸 작가로 활약하다가 SNL를 떠난 그는 페일린 역을 맡기 위해 한시적으로 SNL에 복귀했다).

페이는 "이번 선거를 정말 비싸게 치르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옷을 매만졌고(페일린은 명품 옷을 입고 다녀 구설수에 올랐다), 매케인이 한 눈을 파는 사이 'Palin in 2012(다음 대선에는 페일린을 뽑자')고 적힌 티셔츠를 몰래 들어 보이며 "화요일(대선 투표일)까지만 기다렸다가 입어라, 나는 (주지사를 맡고 있는) 알래스카든 어디든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웃겼다.

정치코미디쇼에 등장한 매케인과 페일린

세라 페일린으로 분한 티나 페이가 1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이하 SNL)에서 'Palin in 2012(다음 대선에는 페일린을 뽑자')고 적힌 티셔츠를 몰래 들어 보이고 있다. 페일린의 잦은 윙크도 코미디 소재가 됐다.
 세라 페일린으로 분한 티나 페이가 1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이하 SNL)에서 'Palin in 2012(다음 대선에는 페일린을 뽑자')고 적힌 티셔츠를 몰래 들어 보이고 있다. 페일린의 잦은 윙크도 코미디 소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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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인터뷰를 가리는 것으로 소문난 페일린 자신도 매케인이 출연하기 2주 전에 SNL에 직접 출연했다.

쇼에 나온 페일린은 자신을 풍자하는 랩에 맞춰 어깨춤을 들썩이고, 자신을 패러디한 페이를 뒤집는 면모를 과시했다. 페일린이 출연한 SNL의 시청률은 프로그램 최고기록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대선의 승패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들이 SNL에 잇달아 출연한 것을 정치 풍자로 자신들의 표를 깎아먹는 미디어에 대한 미국식 대응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SNL은 1976년 1월 17일 방영분에서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 모습을 묘사했으니 정치풍자에 관한 한 관록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하다. (SNL이 1975년 10월11일 첫 회를 방송한 것을 생각하면, 타 방송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일찌감치 정치 코미디를 구상한 셈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윤보선·함석헌·정일형·김대중 등이 참여한 3·1 민주구국선언이 '정부전복 선동사건'으로 곡해될 정도로 언론이 힘을 못 쓰던 시대였으니 주한미군들이 즐겨보던 SNL은 '별천지 얘기'로 치부됐을지 모르겠다.

뜬금없이 SNL 얘기를 꺼낸 것은 한국 정치 코미디의 척박한 풍토를 문제삼기 위해서다.

풍자 좀 할라치면 규제에 부딪혀

MBC <코미디하우스>의 '3자토론'
 MBC <코미디하우스>의 '3자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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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풍자는 고사하고 "용모가 단정치 못하고 바보 흉내를 일삼는다"는 이유로 배삼룡·이기동·이주일 등의 TV 출연이 금지된 것이 1980년 9월의 얘기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차기 대통령(노태우)이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할 즈음 1노3김의 성대모사와 KBS <회장님 우리 회장님>, MBC <일요일밤의 대행진> 같은 풍자 코미디가 인기를 끌었지만, 한 때의 유행에 그쳤다.

정치코미디라는 것이 인물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묘사를 넘어 권력 자체에 대한 풍자로 발돋움할 수 있어야 했는데, 방송국 내부 심의와 외압이라는 이러저러한 규제의 틀에 묶여서 코미디가 기를 펴지 못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갓 취임했던 1993년 4월 28일에는 SBS <코미디 전망대>가 YS가 부산 여대생들 사이에 인기인 1위로 뽑힌 일을 다뤘는데 "하여튼 부산 가시내들 못 말려요"라는 진행자 정재환의 코멘트는 삭제된 채 방영되는 일이 있었다. "(대통령과 여대생들에게)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 나온 게 이유라면 이유였는데, 지금 시각으로 보면 방송국의 그러한 처사에 대해 누리꾼들이 "심하다"는 야유를 던질지 모르겠다.

여야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지난 10년 동안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2003년 MBC가 배칠수·박명수·김학도라는 성대모사 달인들을 내세워 16대 대통령후보였던 노무현·이회창·권영길의 '3자 토론'을 시도했지만, 그조차도 소재 고갈로 곧 생명력을 잃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2004년 '환생경제'라는 촌극으로 코미디언들도 하지 못한 본격 정치코미디에 도전했지만, 야당으로서의 정치적 노림수가 너무 훤히 보였는지 4년이 지난 지금 '저주 받은 걸작'으로 인터넷상에서만 회자되고 있다.

돌발영상이 사라진 시대, 국민은 웃을 일이 없다

KBS2 폭소클럽2의 '응급시사'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허경영씨
 KBS2 폭소클럽2의 '응급시사'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허경영씨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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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말 혜성 같이 등장해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동영·문국현·이회창·허경영으로 이어지는 초호화 캐릭터를 자랑했던 KBS2 폭소클럽2의 '응급시사'는 현 정부가 출범하자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여당 한 번 찔끔, 야당 한 번 찔끔' 이런 식으로 공영방송이 두루뭉술하게 정치적 줄타기를 할 바에는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2008년 우리 정치에 대한 냉소가 고조되며 풍자할 거리도 차고 넘치는데, 정작 이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코미디는 보이지 않는다.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코너 중 하나인 '대충토론'이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지만 '비주얼 있는 코미디'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왜 미국에선 되는데 우리는 안 되는 걸까? 정치인들에 대한 '리얼한 묘사'로 인기를 한 몸에 모았던 YTN <돌발영상>을 못 보게 된 마당에 정치코미디에 대한 갈증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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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맥케인, #페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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