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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촛불'이 사회 이곳저곳의 어두운 곳으로 번지고 진화하면서 일부 '촛불'은 '지역'과 만나고 '풀뿌리'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http://cafe.daum.net/sowhanje)도 그렇게 생겨난 사이트다. 이 모임은 당시 "한손에는 촛불을, 또 한손에는 법률을 무기로 삼겠다"면서 지방자치단체 감시와 단체장들의 비리·비위 등에 대한 합리적 권리행사를 선언했었다.  

 

그러던 중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 뇌물 수수 사건이 터졌다. 김 의장이 의장 선거 전 한나라당 동료의원들에게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며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1인당 100여만 원씩 모두 3500만 원을 뿌렸다는 것이다. 김 의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시의원 30명도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에 불려다니고 있다.

 

김 의장이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 누리꾼들의 첫 소환추진 대상이 된 것은 당연. 구속 중인 김 의장과 입건된 시의원들에게 7월치 월급이 그대로 지급되고 있는 사실도 이들을 분노케 했다. 김 의장은 월급 567만원과 함께 업무추진비 월 560만 원을 따로 받는다.

 

점입가경으로 뇌물사건에 연루된 서울시의원들이 재판정에서 희희락락하며 "재판 끝나고 나서 소주나 한 잔 하자구~" "시간만 있었으면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 전원에게 돈 줬을텐데..." "'내 자리(피고인석)에 가서 대신 앉아볼래?' '그럼 100만원 줄 거야?'" 등의 저급한 농담을 주고받은 사실도 알려졌다. 

 

 

'뿔난' 국민모임이 '머슴' 소환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표는 김귀환 의장 주민소환에 이은 해임이다. 주민이 뽑은 머슴, 주민이 내리겠다는 것이다.

 

주민소환제도란?

임기중인 선출직 공직자를 유권자들의 투표에 의해 해임할 수 있는 제도로, 선출직 지방 공직자의 부패를 견제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민소환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에 대해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가 서명하여 해임을 청구하면 주민투표를 거쳐 해임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5월 주민소환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2007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광역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은 각각 유권자의 10%와 15%, 20% 이상의 찬성으로 주민투표가 가능하고 소환 대상자는 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 과반의 찬성이 나오면 해임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귀환 의장은 '지방의원' 규정에 해당한다.

 

법의 남용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취임 뒤 1년 이내, 남은 임기 1년 이내, 그리고 같은 사람은 1년 이내에 다시 소환청구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알려진 주민소환 사례는 경기도 하남과 경기도 시흥이다. 김황식 하남시장이 광역화장장 건립을 추진하다 주민소환 첫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김 시장은 소환 투표가 부결되어 시장직을 계속할 수 있었으나 하남시의원 두 명은 소환됐다. 이들은 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패소한 바 있다.

 

개발사업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연수 시흥시장에 대한 주민소환도 진행중이다.

국민모임은 오늘(5일) 낮 2시 30분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광진지역 시민단체인 광진참여네트워크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의장 출신지역인 광진 제2선거구에서 부패한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보여주는 주민소환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김 의장은 구의 2동, 광장동, 능동, 군자동을 묶는 광진 제 2선거구 출신 서울시의원이다.

 

이 운동이 '촛불'의 진화임을 나타내듯 기자회견장 근처에 전시된 여러 홍보물들이 눈에 띄었다. 촛불소녀 대신 투표용지를 든 '소환걸스'와 마패를 든 '소환어사'가 등장했다. 손피켓에는 '불량머슴 꼼짝마 소환어사 출두요~' '시민참여 주민소환 불량머슴 무한 퇴출'라는 문구가 박혔다.

 

국민모임은 "김귀환 사건은 패거리 정치와 부패한 의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인 서울시의회의 현주소를 극명히 드러낸 것"이라며 "그럼에도 30여 명의 시의원들이 반성의 기미없이 재판정에서조차 희희덕거리며 변명하고 감싸는 모습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이환 광진주민연대 대표는 "의장 선거 과정에서 공공연히 뇌물을 주고 받은 사람들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행태에 절망한다"면서 "우리의 무관심을 참회하고 안이함을 반성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이 운동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고사를 지내고 홍보 유인물을 광진구 곳곳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총 유권자수 7만 2344명인 광진 제2선거구의 경우 1만 4469명이 서명에 응해야 주민소환이 이뤄지며 국민모임은 광진 시민단체들과 함께 오늘 15일 광진주민소환추진본부를 정식 발족시킨 뒤 늦어도 오는 11월까지 이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의 반응은 좋았다. 많은 주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기자회견을 눈여겨 보는 한편 주민소환 운동의 취지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했다. 능동에 산다는 김은지(49)씨는 "김귀환 의장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지방자친가 뭔가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주민소환에 대해서는 오늘 처음 들었는데,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운동 나왔다가 현장에 들른 심미옥(52)씨가 "감옥 가고 재판받는 사람들한테 월급 주는 게 말이 되느냐, 내가 지금 가서 아는 사람들 죄다 데리고 오겠다"고 나서자 "지금 말고 며칠 후 본격적으로 소환 서명을 시작할 때, 그때 도와주시라"며 관계자들이 말리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내, 자녀들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왔다는 김준열씨(40·광장동)는 "지난 선거에 김귀환씨를 찍었는데 배신감을 느낀다"면서 "사건이 터진 후에도 의장이나 의원들이 정신을 전혀 못 차린 것 같은데, 주민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대평 국민모임 공동대표는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진보적인 정당이나 정치단체들이 홍보할 때는 국민들이 무심한데 아무래도 우리는 시민 눈높이에서 주민소환을 홍보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잘 맞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국민모임은 김귀환 의장 주민소환운동에 전념하는 한편으로 '성매매 잔치'를 벌였다는 의혹이 있는 서울 중구 의회 등 다른 자치단체, 자치의회 등에 대한 감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주민들, 권리에 눈뜨기 시작할 것"

김래평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 공동대표(ID 콘도르)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시민단체 활동은 물론 지역운동을 경험한 적도 없다. "촛불이 (나를) 많이 바꿨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 김 대표는 퇴근 후 저녁에 국민모임 집행부들과 회의를 하고 오늘 같은 휴일에는 거리로 나온다. 김 대표는 "김귀환 의장에 대한 주민소환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소환운동으로 인해 주민들이 자신의 권리에 눈뜨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오늘 기자회견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다음 카페에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을 만들고 지난 두 달 동안 회의를 해 왔다. 어제(4일) 이곳 어린이대공원 후문에 천막을 치고 '광진 주민소환 추진 임시본부'를 차렸다. 광진참여네트워크 등 지역 단체 등 7개 단체들과도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소환을 계획했으나 김귀환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당연히 이쪽으로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촛불이 '국민모임' 탄생을 이끌었다고 보나?

"촛불을 들면서 '합법적 수단으로서 국민이 심판할 수 있는 무엇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주민소환을 알게 됐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 지금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 '국민모임' 소속 누리꾼들은 대부분 생활인들인가?

"그렇다. 광진 시민단체들을 제외하고 국민모임에서 열성적으로 뛰는 사람들은 모두 생활인들이다. 나도 회사원인데, 밤에 회의하고 주말에 밖으로 나온다. 함께 공동대표를 하는 사람은 거의 회사생활을 하기 힘든 지경이다."

 

- 주민 반응은 어떤가?

"좋다. 진보적인 단체나 정당에서 실시한 홍보활동은 반응이 미미했는데 아무래도 일반 시민, 생활인들이 나서서 같은 시민들에게 호소하니 잘 먹히는 것 같다. 정서적으로 잘 맞는 것 같다."

 

- 이후 계획은?

"오늘은 주민소환을 왜 해야 하는지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주민들의 반응을 느낄 것이다. 15일에 광진주민소환추진본부를 발족시킨 후에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곧 선관위에 주민소환 계획을 통보하고 교부증을 받은 뒤 수임자(서명도우미)를 모집할 계획이다. 1만 4469명 주민의 서명을 무리없이 받아 선관위에 제출하는 것이 최종목표다. 11월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 낙관하는가?

"당연하다. 광진 주민들을 만나면 분노가 굉장히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민소환제는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의미가 있다. 지역 주민보다는 같은 당 패거리에 더 눈치보는 지금 문화에 동조할 주민이 누가 있겠나.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주민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도 큰 의미다. 주민들이 권리에 눈뜨기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태그:#주민소환, #김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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