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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일까? 계단에서 가끔씩 마주치면 쏜살같이 도망가는 놈이 있었다. 아무래도 옥상에 거처를 마련하려는가보다 싶어 옥상문을 꽁꽁 걸어잠궜다. 지난해, 고양이가 옥상에서 새끼를 낳는 통에 한동안 옥상문을 개방해 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동안 아내는 빨래를 널거나 걷을 때 '고양이 때문에'라는 핑계로 나를 귀찮게 했다.

 

조금 불쌍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안돼"했는데, 어머니가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은데 좀 놔두자. 옥상만큼 안전한 곳이 어딨겠니?"하신다. 그리고 며칠 전 고양이가 새끼를 네마리나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양이는 자기의 거처가 사람들의 눈에 띄면 옮긴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어머님이 "기껏 자리 깔아준 곳에서 새끼낳고 잘 있더니만 시멘트바닥으로 이사를 갔다"하시며 서운해 하신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옥상 한 구석 창고같이 쓰는 곳 틈바구니에 고양이가족이 있다.

 

"한 마리가 없네요?"

"저기로 이사가려나보다. 거기 한 마리 있는데 다시 이사하는 중에 우리가 올라왔나보다."

"그나저나 저것들 클 때까지는 둬야겠네요. 먹을 것 너무 많이 주진 마세요."

"알았다. 어차피 키울 것도 아닌데 뭐. 그래도 생명인데 잘 보살펴줘야지."

 

이미 어미와 몇 차례 눈을 마주친 바 있기에 조금 떨어진 곳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미도 나와 눈을 몇번 마주치더니만 경계를 풀지는 않았지만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다.

 

 

그렇게 한참 지난 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어미 고양이는 이사할 준비를 마쳤는지 슬슬 새끼들을 데리고 이동을 한다. 어차피 이사하려는 곳도 다 알아놨는데, 그 곳에서 그냥 살아도 해치지 않을터인데 말이 안 통하니 우리네 마음을 전할 수도 없다.

 

잠시 행렬에서 이탈한 새끼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만 다가온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 허긴 우리 식구 중에서 너희들을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커서 세상으로 나가다오."

"지금부터 키우면 집고양이 될 것 같은데 한 마리 키울까?"

"그냥 두세요. 고양이들은 잘해주면 지하고 친군 줄 안다니까요. 개하고 달라요."

 

 

어쩌면 옥상에 올라와 새끼를 낳은 에미는 지난해 우리 집 옥상에서 태어난 놈일 수도 있다. 그 어딘가에 기억되어있던 인자가 그를 다시 우리집 옥상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도시에서 도둑고양이로 살아가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것이다. 동료 중에는 로드킬한 것도 있을 것이며,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인기척만 나면 기겁을 하고 도망도 쳤을 것이다. 도심에서 야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 쉬운 일 아니건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혜롭게도 도심에서 어느 곳마다 안전한 옥상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그 집 주인이 악하지 않아 최소한 자신들을 돌보지는 않아도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까지도 간파했다면 지혜롭다는 찬사를 보내도 마땅할 것이다.

 

 

동물이건 초록생명들이건 자연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법이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그리하는 것은 본래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비인간화되었기 때문이다. 비인간화되었다는 것은 반자연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빈자연적인 삶을 살면서 인간의  본래성을 상실했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분신을 했다. 그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문익환 목사님은 이런 요지의 말씀을 했다.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마세요. 목숨을 끊을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세요. 우린 적의 손에 죽을 지언정 스스로 죽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간혹 절망하고 싶을 때 오히려 나를 새롭게 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은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물이라면 미물인 도둑고양이, 그들도 지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삶 혹은 타인의 삶에 대해 너무 가벼이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양이,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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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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