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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와 일본 시민단체 피스보트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아시아 민간교류 프로그램, 피스앤 그린보트가 11월 20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다. 한국측 300명, 일본측 300명이 함께 크루즈를 타고 아시아 주요 지역을 방문하는 피스앤 그린보트는 참가자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환경친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와 함께 '2008 피스&그린보트'를 테마로 다양한 기획보도를 연재한다. [편집자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이제 막 끝났다. 정확히 827번째다. 역시 대답은 없다. 일본 대사관 창문은 굳게 닫혀 있고, 커튼들은 빈틈없이 바깥 풍경을 차단하고 있다. 일본 대사관은 실눈조차 뜨지 않고 있다. 그토록 철저한 외면을 감싸주는 폴리스라인이 슬프도록 선명했다.

시위 참가자 200여명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할머니와 사진을 찍고, 그리고 할머니를 부둥켜안았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양, 한 참가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할머니에게 다가가려고 애쓰는 일본인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수요시위 참석"

수요시위에 참석한 아베리사씨
 수요시위에 참석한 아베리사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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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꼭 인사드리고 싶다"던 아베 리사(26)씨였다. 헌데 한편으로는 분명 머뭇거리는 듯 했다. 태평양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바다라고 했던가. 현해탄 240㎞를 건너 온 용기는 어디 갔는지, 불과 몇 m 앞에서 아베씨는 뭔가 망설이는 듯 했다.

"한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수요 시위였습니다. 쇼핑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역사는 당장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을 때부터, 내가 해야할 일이 뭔가, 많이 고민했었어요. 그래서 정말 오고 싶었죠. 그런데 일본인이 여기 있는 걸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실까…. 망설이게 되더라구요."

물론 이용수(80) 할머니는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눈가에 번진 눈물을 닦아내고 환하게 아베씨를 맞아줬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꼭 끌어안았다. "독도가 아무나 부르는 독도냐"고 목소리를 높였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죄가 없다"고. 8월 20일은 아베씨에게 잊지 못할 827번째 수요일이 될 듯 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양국 정상"

다음 달에 아베씨는 니카라과로 떠난다. 9월부터 니카라과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씨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그것은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 <세계를 간다>에 수요시위가 꼭 소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라고 했다. '예비 공무원' 신분으로 인터뷰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은 행정직에 불과하다"면서 "스페인어를 전공해서 한일 관계나 아시아 문제와 관련한 특별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유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난 당당함은 아니었다. 그는 "한일 문제에 대해 굉장히 알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어,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과거를 잘 모른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면서 "피스보트에 승선한 한국인들과의 대화와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본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이용수 할머니와의 포옹이 아베씨를 더욱 당당하게 만든 듯 했다. 그는 "강간이란 범죄를 63년 동안이나 방치한 것도 이상하지만, 이에 대해 사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 정상이 아무렇지 않은 듯 교류하는 것이 더욱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본 수상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제 82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열린 일본대사관 앞에 경찰통제선이 쳐져 있다.
 '제 82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열린 일본대사관 앞에 경찰통제선이 쳐져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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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보트에서 봤던 위안부 문제 다큐멘터리에 '충격'

- 간단히 자기 소개부터 한다면?
"고등학교까지 일본에서 마쳤다. 대학은 미국에서 다녔다. 미국인은 일본인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외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피스보트에 타면서부터다. 9개월 동안 통역을 하면서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됐다. 한국인들이 한일 문제에 대해 얘기해줘서 많이 알게 됐다."

-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된 계기는?
"역시 피스보트였다. 한일 문제에 대해 굉장히 알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과거를 잘 모른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강연 와중에 위안부 문제나 재일교포 문제를 접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피스보트에 타지 않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위안부 문제를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충격이 컸을 것 같다.
"일본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말로 들었을 때와 달리 다큐멘터리를 통해 할머니들을 실제 눈으로 보면서 느낀 충격은 매우 컸다.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들이라 더욱 그랬다. 강간이란 범죄를 63년 동안이나 방치한 것도 이상하지만, 이에 대해 사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 정상이 아무렇지 않은 듯 교류하는 것이 더욱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시위를 보고 있는 아베리사씨
 수요시위를 보고 있는 아베리사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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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시위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생각보다 시위가 평화롭더라.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젊은이들이 할머니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 역시 그랬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 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 비가 오거나 더운 날에도 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시위에 참석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가.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대사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상당히 부끄러웠다. 일본 수상이 한 번 와서 봤으면 좋겠다."

- 한국 경찰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렇게 평화로운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경찰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과거에 혹시 폭력적인 경우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 정부와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의 긴장감이 한국 경찰을 통해 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 틈날 때마다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
"일본에 있는 친구들에게 수요시위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 특히 일본 대사관 쪽을 자주 촬영하던데.
"커튼이 다 내려져 있고, 감시 카메라만 돌고 있더라. 위안부 문제 자체를 일본이 거부하는 상징으로 느껴졌다. 대사관 직원들도 눈에 띄었는데, 무시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요시위를 시작한 이후) 17년 동안이나 이렇게 무시했다는 것은 정말 나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따스한 포옹 "너는 죄가 없다"

- 이용수 할머니와의 포옹이 인상적이었다.
"할머니가 일본에 당한 걸 생각하면, 일본인을 싫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그런데도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면서 너는 죄가 없다고 했다. 얼마나 마음이 넓고 대단한 건가."

-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호에 고개를 끄덕이더라. 동의한다는 뜻인가.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명히 일본 사람 중에는 그런 사실 자체가 없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일부 일본 정치가들의 발언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한일 양국의 공동 조사 또는 국제적 수준의 연구 활동이 이뤄진다면, 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베리사씨가 남지민씨로부터 수요시위 설명을 듣고 있다
 아베리사씨가 남지민씨로부터 수요시위 설명을 듣고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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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부터는 외교 공무원 신분이 된다. 이런 말을 하기 부담스럽지 않나.
"나는 행정직에 불과하다. 어떤 의견도 개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스페인어를 전공해서 한일 관계나 아시아 문제와 관련한 특별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유감이다. 일상 생활을 통해서라도 수요시위를 계속 알리고 싶다. 힘이 닿는 한,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 <세계를 간다>에 수요시위가 꼭 소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도 좋을 것 같다."

-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고 생각하나.
"실제 할머니를 뵙게 되니까, 저 분들이 나의 할머니였다면 절대 일본 정부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스보트에 타지 않았다면, 그리고 수요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단어 정도만 아는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특히 수요시위에 참석하면서 문제 의식이 훨씬 더 깊어졌다."

"가해국 독일은 피해국과 함께 교과서 만들어"

수요시위 내용을 메모하고 있는 아베리사씨
 수요시위 내용을 메모하고 있는 아베리사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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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다면 독도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다.
"미안하다. 사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 부끄럽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에 대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지만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만 보도되고 있다. 왜 일본 영토인지에 대한 근거는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당연히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지,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약간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일본 초등학교에서 인권수업을 한다. 그런데 피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해서만 배우지, 가해자로서 주변국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독일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얘기가 독일은 가해 국가와 피해 국가가 함께 만나 교과서를 만든다고 한다. 교육하지 않으면 반성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도 문제지만, 그에 대한 전후 처리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 진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한국인들에게 당신의 생각은 아마도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알지 못하면 남에게 설명이 어렵지 않나. 피스앤 그린보트가 11월에 출항한다고 들었다. 굉장히 타고 싶었는데, 참 아쉽다. 내가 피스보트를 통해 이렇게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듯이, 피스앤 그린보트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한일 문제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 끝으로 앞으로 외교 공무원으로서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스페인어를 배운 이유는 미국 때문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악용했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일본이 주변국에 행한 일들과 비슷하게 닮아있다고 본다. 일본은 돈이 많은 나라다. 다른 나라와 교역할 때, 더더욱 역사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해자 편에 섰던 역사 교육해야"
아베 리사의 친구 남지민씨 "피스보트에서 소통의 희망 발견"

이날 인터뷰에서 통역을 맡았던 남지민(여·26)씨와 아베 리사씨는 친구 사이다. 두 사람은 작년에 피스보트에 승선했다가 친분을 쌓게 됐고, 아베씨의 '특별한 한국 초행길'에 남씨는 기꺼이 '도우미'로 나섰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나오는 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하나하나 '친구'에게 자세히 통역해주는 모습을 보였던 남씨 역시 '예사 젊은이'는 아니었다.

현재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남씨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논문 주제는 '기후변화의 불공평성'. 그는 "못 사는 나라일수록 기후변화에 더 취약해서 빈곤해진다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친구(아베 리사)처럼 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피스보트였다"고 설명했다. 다른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기후변화의 불공평성을 많이 느꼈다는 것. 또한 남씨가 피스보트에서 발견한 것은 '소통의 희망'.

남지민씨가 아베리사씨에게 수요시위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남지민씨가 아베리사씨에게 수요시위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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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스보트에 타기 전만 해도 일본 사람들한테는 뭘 얘기해도 잘 안 먹히겠구나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피스보트에서 사할린에서 강제노동하는 조선인을 봤던 한 일본인 할머니를 알게 됐어요. 그 할머니가 일본 사람들이 참 못되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죠."

그리고 그 일본인 할머니는 "사할린에 묻혀 있는 조선 사람들을 조선 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남씨가 "일본을 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런 분들과 연대해서 함께 한일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된 계기다. 그래서 남씨는 '친구'처럼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사실 피해자라고만 생각하잖아요. 세금을 내는데 투표권은 없는 재일교포 문제에 대해 얼마나 눈감고 있었는지, 베트남 전쟁에서 얼마나 가해자 편에 섰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인과 대화하는 한국인, '이 사람들은 가해자고, 우리는 피해자'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열린 마음으로 상대가 잘 모르면 알려준다는 마음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씨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도 정작 한국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일본인이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강의 몇 개 들었다고 실천하기 참 힘든 일을 하는 아베 리사는 참 대단한 친구"란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끝으로 남씨는 특히 젊은이라면 피스앤 그린보트 등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찾아보면 많이 있어요. 한일 학생 교류나 역사에 대해 소통하는 프로그램, 이런 부분에 저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 본 나라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되잖아요. 단순하게 여행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뉴스에 나오는 말만 듣고 있지 말고, 직접 내가 보고 들으려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태그:#수요시위, #위안부, #피스보트,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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