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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 지붕이 심하게 요란을 떤다. 무더운 날씨가 3일 정도 계속되면 한 두 시간쯤은 메마른 땅에 축복이라도 하듯 촉촉한 비가 내리는 곳. 그래서 일까? 어제 낮의 무더위는 한풀 꺽 인지 오래지만 새벽에 찾아온 빗소리는 새벽시장 가는 길을 망설이게 한다.

수북하게 쌓인 가지와 고추 앞에서 비옷을 입고 비닐 봉지를 손에 잡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
▲ 연변의 새벽시장 수북하게 쌓인 가지와 고추 앞에서 비옷을 입고 비닐 봉지를 손에 잡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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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용기를 내서 나선 연변 새벽시장. 빗줄기가 가늘어질 즈음 시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이곳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붐빈다. 오늘은 막내 녀석이 따라나서겠다고 앞장을 서더니 익숙한 걸음으로 즉석 먹거리 코너로 향한다.

커다란 불판 위에서 오감을 후비고 들어온 냄새에 발걸음은 이미 요지부동이다. 젊은이가 들어도 힘이 부친 듯, 전을 뒤집는 막대기가 버드나무처럼 휘청거리더니 노란 속살을 드러낸다. 막내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목구멍에서는 저절로 침이 솟아오르고 마음은 이미 지갑을 만지작거린다.

각종 야채와 해산물이 가득 들어 있는 전은 찹쌀가루로 만들어서인지 고소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 참쌀가루로 만든 전 각종 야채와 해산물이 가득 들어 있는 전은 찹쌀가루로 만들어서인지 고소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 윤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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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커다란 전이 한 개에 한화로 약 만 원 정도. 물론 이것도 근으로 달아서 팔긴 하지만, 한판을 사면 6-7인이 먹기에도 충분하며 한 끼 식사로도 안성맞춤이다. 찹쌀가루로 반죽하여 형형색색의 각종 야채와 해산물들로 빚어서 만든 전이기에 맛 또한 크기만큼이나 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세운다. 아들 녀석을 핑계 삼아 이미 한 판은 비닐 속에 들어가 있다.

막 튀겨낸 튀김들은 바삭바삭한 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 즉석 먹거리 코너 막 튀겨낸 튀김들은 바삭바삭한 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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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사고 나오자 아들 녀석이 조건을 단다. 튀김을 사주면 엄마에게 눈감아 주겠단다. 약속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녀석은 자신의 팔뚝만한 튀김을 손에 들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한 입을 권한다. 바삭거린 느낌과 감미로운 단맛이 입안에 젖어든다.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공산주의란 틀 속에서 살아서일까? 아님, 먹거리가 풍부해서일까? 이곳 연변에선 비교적 먹거리 걱정은 필요 없는 듯하다. 시장에 나온 풍성한 식료품들은 이들의 식단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당에서는 필요 이상의 음식들이 평상시에도 주문을 받는다. 아마 절반 이상은 먹지 않고 음식을 남기지만 그래도 당연한 듯 모두가 받아들인다.

도수별로 늘어선 술통 속에선 곡주냄새와 진한 향이 묻어나고 ...
▲ 술통들의 향연 도수별로 늘어선 술통 속에선 곡주냄새와 진한 향이 묻어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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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늘어선 술통. 40도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술들이 커다란 통에 담겨 있다. 주인이 조선족임을 알고선 하루에 얼마 정도를 판매하는지 물어보니 웃음으로 답할 뿐이다. 한동안 지켜보며 만든 과정을 물어보자 집에서 빚어온 약술이라고 자랑한다.

틀니를 조립한고 있는 듯.
▲ 틀니 틀니를 조립한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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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을 팔기위해 혈압을 측정하고 있는 듯 ...
▲ 혈압 측정 약품을 팔기위해 혈압을 측정하고 있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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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기를 재촉하는 아들 녀석을 따라 막 돌아서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카메라 전원을 켜도, 그들의 능숙한 손놀림은 빈틈이 없다. 책상 하나를 시장에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틀니를 만들어 팔고 있지 않는가.

무면허 치과의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 그들은 새벽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틀니를 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뒤에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병원에서 하는 것보다 값도 저렴하고 질도 괜찮은 편이어서 이곳 사람들에겐 흔한 일 중에 하나라고 했다.

알콜과 솜으로 세척한 틀니는 몇 가지 약품을 첨가하여 입안에 들어가고 ...
▲ 다양한 유형의 틀니 알콜과 솜으로 세척한 틀니는 몇 가지 약품을 첨가하여 입안에 들어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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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오늘 아침의 새벽시장은 놀라움과 맛이 어우러진 진풍경이었다. 빗줄기가 더 이상 우리의 발길을 멈춰세우지 말기를 기도하며, 우린 아침을 먹고 우리 민족의 얼이 깃든 용정과 해란강을 보기 위해 연변의 자랑인 모아산으로 갈 짐을 꾸렸다.


태그:#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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