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30일 강릉시는 오죽헌 옆에 헤르만 헤세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부 문화계 인사와 시민들은 강릉의 전통적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의견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박물관 건립을 통해 강릉을 국제문화도시로 알리고 여러 문학, 학술행사 등을 통해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독창성과 문화발전 기여도의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사업이다. 이를 계기로 헤르만 헤세의 생태적 삶을 조명해본다.

 

헤르만 헤세는 인생의 후반기 집필 활동 외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정원에서 보냈다. 정원일을 통해 느낀 바를 30여년간 틈틈이 기록해 엮은 책이 <정원 일의 즐거움>(두행숙 옮김, 이레)이다.

 

헤세가 일상으로 하는 일이란 잡초 뽑기, 토마토 가지 치기, 무화과와 복숭아 같은 과실 따기를 비롯하여 셀 수 없이 세세하다. 매일 아침 그는 밀짚모자와 정원용 도구를 챙겨 들고 내려가는 집 계단 옆의 화단부터 살피고 포도덩굴, 잔디밭, 텃밭, 헛간을 돌고 불을 피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땅 위의 모든 생명을 새순 하나, 개미 한 마리라도 허투루 놓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가슴 속에 담는다. 손바닥만한 땅조각에도 생명의 일어나고 스러짐이 있다.

 

한껏 살찌고 무르익은 복숭아가 손안으로 가득 들어올 때의 충만함, 분신처럼 여겨왔던 유다나무가 열대폭풍으로 쓰러진 후의 쓸쓸함,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주머니칼을 잃어버린 후의 허전함 또한 정원에서 얻는 삶의 한 단면이다. 

 

농촌 생활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온화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고향처럼 모든 정신적인 인간과 영웅적인 인간의 마음을 그 깊은 곳까지 끌어당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돼 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 생활이기 때문이다.            

- 본문발췌

 

도시에 살다 휴일날 산이나 들로 나가보면 우리는 자연의 감화력에 새삼 놀라곤 한다. 그동안 이렇게 좋은 것을 잊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이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스트레스와 긴장이 풀리기도 전에 다시 받을 준비를 해야하는 도시인에게 완전한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의 삶은 그런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깨달음을 준다. 단순함, 경건함과 정직한 노동이다.

 

헤르만 헤세가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헤세의 1962년 사망 후부터 최근 수십 년 사이의 일이다. 그동안 그는 자연에서 연관되는 도피, 신비주의의 작가로 '세계문학의 국제경쟁에서 제외당한' 작가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농촌 생활에 어떤 신비주의적 측면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문학계의 평론가들이 펜대를 놀리며 양산한 내용이다. 땅으로부터 쓴 글이 받아야 할 비평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뿌리를 찾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이어야 한다.

 

농촌 생활을 통해 얻는 수확은 땀이다. 일한 만큼 흘린 땀을 통해 우리는 나를 돌아볼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재발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아무도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흙에 불을 붙여 태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나 시인인 나는 자제와 어쩌면 희생으로 그 값을 지불한다'고 헤세는 적었다. 우리 모두 시인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생태적 삶은 시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니다. 오늘 하루, 땅과 조금 가까워지자.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이레(2001)


태그:#헤르만 헤세 박물관, #헤르만 헤세 , #생태적 삶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