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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아니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력한 소통의 시대에 더 강력한 고통의 시대를 감수해야 하는 2008년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참지 못해 터뜨리는 신음을 너머 터뜨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규로 바뀌고 또 다른 모습으로 터질지 모를 시민의식 뒤에서 한국현대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묻고 또 묻는 질문 뒤에는 21세기 10년을 바라보는 2008년이라는 시간과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통째로 틀어쥔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수면 아래 있다가도 사회 전반에 걸친 논란거리가 터질 때마다 한국현대사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박정희 시대는 지금도 상황에 따라 2008년 대한민국 무대의 등장인물로 나설지 모른다.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는 것 이상으로 지금 이 곳 뒤를 어슬렁거리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정당한 논란과 불안한 혼란 사이에서 자유로운 시민의식이 다시 피어오르는 지금, 박정희 시대는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 시대에 끼어들 수 있다. 여러 필진이 경제와 정치사회 면에서 박정희 시대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분석한 이 책은 그래서 읽고 또 읽어볼 만하다.
 
개발과 성장에 '미친'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나?
 
"개발독재는 한국의 극단적 근대화시대를 집약하는 핵심어이며 박정희시대 18년을 꿰뚫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 개발독재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한국 모더니티의 기본틀을 주조한 박정희시대의 빛과 그늘, 그 기적과 위험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이 책, 18)
 
지금 우리는 어딜가나 '성장'을 벗어나 살지 못한다. '공공의 적'인지 뭔지 모를 영어몰입교육에서도 '성장'은 지상목표이고,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대외정책에서도 어쨌거나 '성장'은 절대목표가 되어있다. 오로지 성장만이 국가 목표가 되어 있으며 나눔이라든가 타협이라든가 토론이라든가 하는 '비생산적 행위'는 언제든 외면받는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출발했다던 새 정부는 지금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그게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거칠게 밀어내려 한다.
 
20세기 초반에 겪은 뼈아픈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갓 태어난 대한민국은 20세기 중반을 피눈물을 흘리며 건넜다. 그리고 6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지금도 그 지위를 잃지 않은 길고 긴 박정희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 시대는 "근대로 가는 이중혁명으로 불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관문을 통과"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한껏 비틀어놓았다.
 
우리 현대사는 배고픈 시절을 등지고 목소리를 높인 '성장'과 '개발'에 눌려 자의반 타의반 자유와 민주주의를 뒤뜰에 밀쳐놓았다. 그 결과, 한국현대사는 항상 불편한 손님을 안고 사는 처지였다.
 
한국현대사에서 박정희 시대는 왜곡된 전환점이다. 배고프고 정신없던 50년대와 모든 잠자던 것이 깨어나던 80년대 사이를 꿰차고 눌러앉은 것은 '일인정치'의 60~70년대였다. 그리고, 그 시대는 무기력하다고 비판받은 민주화 정부들을 발판 삼아 또 다시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다.
 
그런 박정희 시대에 관하여, "주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연구와 주로 '동아시아 기적'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연구 사이에 차이가 큰 것은 이 시대에 대한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박정희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정리되어있지 않으며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게다가, 21세기 첫 10년 끝자락에서 그 재현을 볼지도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미궁에 빠뜨린다.
 
제 아무리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여도 그 시대는 다시 올 수 없고 와서도 안 된다. 그 누구도 '일인정치' 혹은 '일인통치'를 다시 보길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개발과 성장에 '미친' 대한민국이 얼마나 사회를 한쪽으로 끌어가기 쉬운지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은 가끔 아주 가끔 배고픈 시절을 비판 대상으로 삼아 떠오르는 '성장'지상주의와 그와 동시에 제기되는 권력집중화의 필요성에 쉽게 동의(?)해 버리기도 한다. 예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 겪었는데도 말이다.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총론> 개발독재의 정치경제학과 한국의 경험 :이병천

 

<제1부> 경제개발의 빛과 그늘

1. 한국 산업화의 발전양식 :서익진

2. 박정희시대의 산업정책 :이상철

3. 재벌체제와 발전지배연합  :조영철

4. 금융억압의 정치적·제도적 조건 :유철규

5. 박정희시대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김삼수

6. 개발독재와 빈부격차 :이정우

 

<제2부> 개발독재의 정치사회학

 

7. 유신체제의 형성과 분단구조 :이종석

8.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의 길 :한홍구

9. 폭압적 근대화와 위험사회 :홍성태

10. 죽은 독재자의 사회 :진중권

11. 민주화시대의 ‘박정희’ :홍윤기

한국 현대사 왜곡의 중심에 선 박정희 시대를 분해하고 재해석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2인 필자의 공동참여로 탄생했다.
 
1부('경제개발의 빛과 그늘')는 경제 관점에서 박정희 시대를 분석하여 겉으로 드러난 성공과 그 뒤로 밀려난 쓰라린 그늘들을 들추었다.
 
한편, 2부('개발독재의 정치사회학')는 '개발독재' 시대가 우리 사회 틀과 의식 구조에 미친 영향을 다루었다. 그 허울좋은 '옛 영광'의 가면을 조금씩이라도 제대로 벗겨내길 바라면서.
 
한정된 자원을 철저히 국가 관리를 통해 관리하는 가운데, 재벌 형성은 사실상의 묵인과 방조하에서 이루어졌고 (재벌 중심으로 적용된) 관치금융체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가진 것 없는 나라와 배고픈 민족이라는 쓰린 감정 때문에 개발과 성장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 사회 전반에 걸쳐 자행된 모든 '빈부격차'에 쉽사리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동환경은 당연히 실체가 늘 불분명한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받았을 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국가 전체에 걸쳐 상시 동원체제식 구조가 깔려있었고 심지어는 병영국가 체제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 시민과 민주의식은 자리잡을 수 없었고 오로지 오랜 '일인통치'가 주는 우상화와 신비화만 거듭 태어났다. 게다가 언제 끝날지 모를 정권을 형성했던 박정희 시대는 독재권력의 비판을 넘어서 오히려 정책 일관성이나 정책 안정성을 보증하는 희한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간상으로는 20세기와 이별한 21세기에도 이 사회가 '죽은 독재자의 사회'(10장)로 기울어진 건 아닌지를 살펴봐야 하는 건 슬프지만 매우 현실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성장지상주의 시대 혹은 개발지상주의 시대를 한참 넘어선 것 같은 지금, 우리는 다시 성장과 개발을 지상목표로 하는 '이미 흘러간 옛 소리'에 휩싸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지난 시간'이 아니라 언제든 되새김질해야 할 '오늘을 이룬 어제'요 '내일을 이루는 오늘'이다. 무엇을 반복하고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갈지는 역사를 과거에만 묶어두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너무 갑작스레 떠오른 주제이지만 사실상 이미 우리 몸에 깊숙이 자리잡은 소통의 시대. 그 시대를 거스르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그 거꾸로 가는 걸음을 지금 당장 멈출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또 정중히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초두 우리는 오랜 동원의 세기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시민의 세기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주의적 개발독재 동원체제와 세계화된 시장 및 자본의 전제주의의 이항대립을 넘어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간의 수평적 상호소통과 상호승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에 기반을 둔 민주적·생태적 시민국가와 풀뿌리 시민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제, 곧 삶의 기본틀을 바꾸는 과제다.
 
동원적 사회구성은 민주적 시민권에 바탕을 둔 자율적 시민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국가는 동원국가에서 시민국가로, 국민은 신민적 객체에서 시민적 주체로 거듭나는 국가 및 국민의 발본적 재형성과 재생의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국가는 문명인 동시에 감옥이다.
 
시민적 주체와 시민공동체의 형성은 국민국가의 상대화, 그리하여 지방, 국가, 아시아,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이제야말로 홉스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계층질서, 그 서열화의 원리를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그 속에서 국익확장 싸움을 벌이는 동원국가적 지향, 중심을 향한 열망과 대국 따라잡기의 정신구조를 청산하고 우리 안의 타자 및 우리 밖의 타자와 화해(和諧)를 추구할 때가 되었다."(이 책, 64~65)

덧붙이는 글 |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이병천 엮음. 창비, 2003.
12인 필자: 김삼수, 서익진, 유철규, 이병천, 이상철, 이정우, 이종석, 조영철, 진중권, 한홍구, 홍성태, 홍윤기.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이병천 엮음, 창비(2003)


태그:#한국현대사,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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