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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그것은 그리움이다. 또한 만남과 별리의 앙상블이다. 다리 위에선 희미한 옛 사랑의 추억이 묻어나고, 다리 위에선 희망과 애증이 되새김질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리를 찾아 넓은 바다나 강을 쳐다보며 그리움에 목말라한다. 강과 바다를 건너기 위한 문명의 이기로 시작된 다리이지만, 그 다리에 인간의 감정이 실려서 이제는 하나의 시가 되고 하나의 감동이 되었다. 

 

 

 

우리에게 '올드 랭 사인'이란 곡과 함께 찾아 온 영화 <애수>(원제 워털루 브리지)를 기억하는가. 전쟁의 와중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두 연인의 애틋함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 순수의 시대를 기억하는가.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이 이루어진 곳은 바로 템즈강을 흐르던 다리 위였다.

 

또한 영화 <퐁네프의 다리>를 기억하는가. 다리 위와 밑의 인간 군상을 교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연인 간의 애증을 치밀하게 표현한 퐁네프의 다리. 다리 위에서 불꽃쇼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희열에 떠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그 얼마나 이중적이었던가.

 

무려 천년의 세월을 버틴 다리라고 한다. 현대 공학이 총 집결된 현수교나 사장교가 아닌돌 하나만으로 만든 다리가 무려 천 년 동안 같은 장소를 지켰다고 한다. 만일 이 다리가 섶다리였다면 벌써 흔적이 사라졌겠지. 그러나 다행히 돌로 다리를 만들었기에 천 년 후의 우리에게까지 그 시대의 숨결을 전해주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가만히 농다리 위를 걸어본다. 그리곤 농다리 위에서 탁하게 흐르는 세금천을 지그시 바라본다. 눈을 감으니 이 다리를 만들기 위해 양쪽에서 이고지고 돌을 나르던 민초들의 숨결이 귓가에 슬며시 끼쳐든다. 무명옷에 양팔을 걷어붙이며 이마에 흐르던 수정 같은 땀방울을 훔치던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이들은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을 이길 튼튼한 다리를 만들겠다는 생각. 아무리 세찬 물보라가 다가와도,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무사히 세금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은 무척 뜨거웠겠지.

 

길이 93.6m, 너비 3.6m의 농다리는 현대 교량 못지않은 과학적인 다리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넓적한 돌로 강바닥에 기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작은 바위를 물고기 비늘처럼 촘촘히 쌓아 서로가 서로를 물게끔 만든 교각을 설치했다. 이렇게 만든 교각은 자체의 중량으로 인해 천년의 세월을 버틸 정도로 강인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이 다닐 넓고도 평평한 상판을 연결했다.

 

 

이 모든 돌들은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하였을 뿐, 그 어떠한 인공미나 가공미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진천의 농다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한 다리이다. 설계도도 컴퓨터도 없었지만 선조들은 생활에서 나온 경험으로 천 년의 세월을 버틸 다리를 건설했다. 장마가 지면 잠시 잠수교가 될 뿐 결코 유실되지 않는 농다리. 그래서 진천의 농다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경외감을 안겨주는 다리인 것이다.

 

중부고속도로 진천 IC를 지나다가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면 만날 수 있는 진천 농교. 다리 전체에 쓰인 돌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석'인데 이 자석은 검붉은 색상을 띤 신비로운 돌이라고 한다. 이 돌은 '자석배음양'이라고 해서 음양의 기운을 가진 돌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한 <상산지>라는 문헌에 보면 농다리는 축조 당시 28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하늘의 별자리인 28숙을 본뜬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농다리에는 심오한 동양철학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고 한다. 농다리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검붉은 몸체를 한 지네가 상서로운 형상으로 세금천 위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네라는 뜻을 지닌 '농'자를 써서 농다리라고 표현한 것이다.

 

 

 

무릇 모든 다리에는 그럴 듯한 전설이 스며 있는 법. 농다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다리에는 두 개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진천의 용맹한 장수 임장군이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소복을 입은 여인이 다리를 건너려고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임장군이 연유를 물으니 친정아버지의 장례식에 가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하였단다. 임장군은 여인의 갸륵한 효심에 감동하여 그 자리에서 용마를 타고 올라 바로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리가 거의 완성될 즈음, 주인과 함께 돌을 실어 나르던 용마가 힘에 부쳐 그만 죽고 말았다. 이때,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이 바로 용바위(쌍바위)가 되었다.

 

 

 

굴티 임씨 집안에 오누이가 있었다. 둘 다 천하장사여서 용호상박이었다. 어느 날, 몹시 다툰 오누이는 서로 죽고 사는 힘내기 시합을 하게 되었다. 아들(임장군)은 굽높은 구두를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오기로 하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치마로 돌을 날라 농다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농다리가 빨리 건설되어 아들이 지게 되었다. 그 엄마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딸에게 뜨거운 팥죽을 먹이는 등, 잔꾀를 부린 결과 아들이 먼저 오게 되었다. 딸은 화가 치밀어 치마에 있던 돌을 그대로 놓았고, 이 돌이 지금도 박혀 있다고 한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부분은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완성하였는데, 이 부분만 장마가 지면 유실되고 말았다.

 

부산의 영도다리에는 피난민의 애환이 깃들어 있고, 남해와 하동을 연결하는 남해대교는 화개장터의 떠들썩함이 묻어 있다. 그러나 진천의 농다리에는 자연석으로만 만들어진 천년 세월의 흔적이 곱디곱게 배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다리에 깃든 민초들의 소박한 심성과 선조들의 지혜가 하늘에 걸린 옥색구름처럼, 은하수에 걸린 별빛처럼 청아하다.

 

 

눈이 몹시도 내리는 날, 온 세상이 백색으로 물들 때 농다리에 쌓인 눈을 밟으며 그리움과 환상에 젖는 것은 우리만의 특권일 것이다. 혹은 달빛이 교교하게 흘러 세금천과 농다리를 비추일 때, 작은 바람과 투명한 물소리를 농다리 위에서 듣는 것도 우리만의 행복일 것이다. 천 년의 세월, 그 얼마나 무심한가. 옛 사람들은 가고 없지만 그들의 흔적은 저 무심의 돌에 그대로 쌓여 있다.

 

농다리 위를 날아가는 순백의 왜가리.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날개를 펼치는 왜가리는 자연과 하나 되면서, 자연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던 선인들의 영혼이런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가장 인간다워지는 것을 농다리는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태그:#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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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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