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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앙기 왜 그러냐. 뒤가 빵구나부렸다. 맨머리야."

"잉~! 고장나 부린 것 같은디."

"비가 쏟아질 것 같은디… 뭐가 이상이디야?"

"알간디. 젠장 5년 밖에 안 된 것이 끄떡하면 고장이야."

 

모심기 3일째 되는 날(12일). 오늘도 동생과 난 여섯 필지의 논에 모를 심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앙기가 고장이 난 것이다. 두 번만 왕복하면 다 심는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바람은 불기 시작하고 비는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데 이대로 중단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동생은 이리저리 전화를 걸기 시작하더니 고장의 원인이 무슨 스프링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전화를 한다.

 

"어이, 좀 와주어 쓰것는디. 어디여?"

"……"

"그려. 그럼 쪼깨 있다 보자고 잉."

 

다행히 평소 안면 있는 이앙기 기술자와 연결되어 곧 고치러 온다는 답을 듣고 동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때 시간이 오후 6시 무렵이다.

 

모를 심다가 이앙기가 고장이 나든가 아님 진흙 속에 기계가 빠져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여간 낭패가 아니다. 한창 일할 시간에 기계를 고치러 시내까지 가야한다. 바로 고치면 다행이지만 어떤 땐 이삼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농부는 애간장이 다 녹는다.

 

논에 모를 심을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기계가 고장이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옛날엔 동네사람들이 단이라는 것을 조직하여 품앗이로 손모를 심었지만 요즘엔 대부분 기계모를 심기 때문이다.

 

삼십 분 쯤 지나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온다. 그동안 동생은 찐득찐득 달라붙은 이앙기의 흙을 물로 씻어냈다. 스프링을 교체하고 나니 저녁 7시가 넘는다.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돌풍 같은 바람이 세차게 불기까지 한다.

 

비를 맞으며 다시 동생은 이앙기를 끌고 논으로 들어간다. 모를 다 심고 빈 모판을 차에 실으니 8시가 넘는다. 비를 맞아서인지 추위가 온 몸에 밀려온다.

 

"형은 차 끌고 먼저 집에 가."

"넌 왜?"

"난 논에 물꼬 좀 틀고 갈랑게."

 

그리곤 동생은 제수씨와 함께 어둠 속으로 이앙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물꼬를 내러 간다. 새벽 5시 30분부터 저녁 8시가 넘는 시간까지 동생 내외는 종일토록 논에서 지내다 집에 들어오면 밤 9시가 다 된다.

 

"사람값 빼고 다 올라버렸당게"

 

모내기가 시작되면 동생과 제수씨 하루는 새벽 5시 30분에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 곧바로 논에 가서 모를 심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침밥을 대충 먹고 쉴 틈도 없이 바로 논으로 향한다.

 

점심은 논에서 해결한다. 대부분 타지에 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에 와서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오고가는 시간을 절약해 모를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논에 모를 심기까진 여러 과정을 거친다. 먼저 좋은 볍씨를 골라 소독을 하고 싹을 틔운다. 싹이 희끗희끗 적당히 올라오면 모판에 흙을 넣고 볍씨를 빼곡하게 뿌리는 작업을 한다. 이때 볍씨를 골고루 빈틈없이 뿌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가 듬성듬성 나 모를 심을 때 빈
자리가 많이 생기게 된다.

 

모판에 볍씨를 넣은 다음 하우스에서 싹을 틔운다. 이때 싹이 골고루 나게 하기 위해 물뿌리기를 오전 오후로 나눠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모를 심기 위해 논으로 가기 전에 병충해 예방 농약을 미리 뿌려준다. 영양제도 뿌려준다. 그리고 5~6㎝ 자라면 논에다 심게 된다.

 

그런데 이때 주는 농약값이 장난이 아니란다. 몇 백만 원이 든다며 동생은 한숨을 쉰다.

 

"이거 농약값만 사백만원이 넘어. 이거 한 봉에 얼만줄 알아. 만육천 원이나 가."

"그럼 한 박스에 얼마인데?"

"얼마긴. 스무 개씩 들었으니 삼십이만 원이지. 거기에 비료값도 엄청 올랐어. 어찌됀놈의 것이 갈 때마다 오른당게."

"기름 값도 많이 올랐다며."

"말도 마. 작년보담 배가 올랐응게. 아마 사람값 빼고 다 올랐을 걸."

 

사람 값 빼고 다 올랐다는 동생의 말에 갑자기 가슴이 멍해졌다. 면세유도 작년보다 거의 배가 올라 갈수록 농사지어도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요즘 미국 쇠고기 수입 건으로 송아지 값이 반 값으로 하락됐다는 소식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진 터다. 사료 값은 청정부지로 솟고 소 값은 떨어지고 해서 농민들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그런데 어찌 한숨소리가 소를 키우는 사람들뿐일까. 벼농사나 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한숨소리 높아지기는 마찬가지다. 비료 값과 농약 값, 여기에 유류비까지 해마다 급격하게 인상되기 때문이다.

 

산구석에 쳐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리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신경림 시인의 '농무'가 징징 소리를 내며 울리는 것 같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비료 값도 안 나오는 현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현실은 그대로인 것 같다.

 

징이 /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가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너그들은 커서 농사짓고는 살지 말거라잉. 공부 열심히 혀서 농사짓지 말고 도시에 나가서 살도록 혀야 헝게. 알것냐."

 

내 어릴 때 부모님한테 늘상 들었던 말이다. 평생 땅을 일구며 흙을 파먹고 사는 당신들이지만 자식들은 당신이 하던 일을 하길 원치 않아했다. 그만큼 힘들고 힘들기 때문이다. 어릴 때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던 난 부모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농사를 특히 논농사를 지으며 안 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곤 했다. 그 어려움과 힘듦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생은 달랐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농사지으며 살길 원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시골에 내려와 농사짓는 걸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엔 동생은 짐 다 싸들고 제수씨를 데리고 시골로 낙향을 해버렸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짐 싸들고 내려온 동생을 부모님도 어찌할 수 없었다. 벌써 12년 전이다.

 

그동안 빚도 많이 졌다. 농협에 진 빚만도 억이 넘는다. 그러나 동생은 농촌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는 걸 후회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희망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들녘으로 매일 향한다. 나는 그런 동생이 안쓰러워 일 때가 되면 바쁜 일손을 돕기 위해 무조건 시골로 달려간다. 아이들이 안 놀아준다고 가끔 투덜대기는 하지만 일하러 간다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준다. 

 

3일 동안의 모내기.  온 몸이 뻑적지근하고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이게 늘 힘들게 농사짓는 동생을 생각하는 형의 마음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태그:#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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