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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서준식이란 이름을 어렴풋이 듣기는 했다. 아마 여러 군데 쏘다니다가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곳을 주워들었을 때 딸려온 이름일 것이다. 나머지 서준식의 삶은 <서준식의 생각>이라는 책을 읽으며 비로소 알았다. 이 책은 인권운동가 서준식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쓴 책이다.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독한 고문세례 속에서 7년을 복역했지만 끝까지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10년을 더 감옥에서 보낸 사람. 듣기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도록 흉측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온갖 고문이 그의 청춘을 지배하였다. 서준식은 고문과 맞바꾼 대가로 다른 이름을 얻었다. "비전향 출옥수 제1호."

 

서준식은 우직하다. 꼬맹이 시절에도 무척 운동을 좋아했던 터프한 남자였다. 매일 근육을 단련하며 책상물림 먹물을 경멸했다는 서준식답게 글에도 단단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듯싶다. 이를 한껏 악 다물고 꾹꾹 눌러쓴 글이다. 마치 땀과 피로 쓰는 것이 어울릴 듯싶을 정도다. 그리고 서준식은 그의 글처럼, 우직한 스타일처럼, 늘 한결같은 삶을 살아왔다.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서준식은 인권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겪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인권운동의 선봉에 서 있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다. 어릴 적 그 많던 일본인 친구들 앞에서 '조센진'임을 스스로 고백했을 때 아마도 서준식은 모진 세상과 처음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그때도 그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웠다.

 

<서준식의 생각>을 읽으면 한 사람이 단지 국가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혹독한 폭력을 당해야 했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감옥에 있는 17년 동안 서준식은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대접받았고 지금도 보안관찰법이란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다. 결코 사람다운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서준식은 다른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 한다. '인권운동사랑방(www.sarangbang.or.kr)'은 그런 눈물 어린 노력의 일환이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인권은 계급 때문에, 권력 때문에, 상황 때문에, 나이 때문에, 성별 때문에 때때로 무시당한다. 머리칼이 길다는 이유로 중학생을 멍 들도록 때리는 교사가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대한민국에서 인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학교에서는 인권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 '훈련' 시키는 부모들은 어린이 권리조약의 내용은 고사하고 존재조차 모른다. 국가보안법, 보호관찰법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철폐되지 않았다. 누구도 인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라다. 그래서 '비인간'속에서 '인간'을 생각함은 더욱 소중하다.

 

1평도 안 되는 감옥에서 고문에 시달린 십칠 년이라. 서준식 이 사람에게 주눅이 든다. 표지에 있는 서준식의 모습은 사람 좋아 보이는 푸짐한 아저씨일 뿐이다. 이 사나이는 어떻게 그 모진 억압을 꿋꿋하게 견뎌왔을까? 서준식의 글은 자기 살아온 삶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뿌듯하다. 서준식은 이 대한민국에서 물질적 풍요를 포기한 삶을 살면서도 끝내 꺾이지 않았다. 아마 그의 지갑은 가난해도 정신과 양심은 풍요로울 것이다.

 

서준식은 허구 속 인물이 아니다. 서준식은 현실 세상에서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신다. 당신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그처럼 닮고 싶어하는 영웅이 우리 현실 길바닥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당신의 권리를 위해 당신이 몰라주는 괴로운 싸움을 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질곡을 굽이굽이 헤치며. 인권운동가 서준식. 시련에 굴하지 않는 영웅이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서준식의 생각> /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펴냄 / 2003년 3월 출간 / 1만5000원.


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야간비행(2003)


태그:#서준식의 생각, #인권운동,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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