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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의 불법과 탈법,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은 받아들일 수 없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다수당이라고 해서 새 정부 출범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탄핵과 다를 바가 없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19일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정부조직개편 협상이 결렬된 데 대한 책임론 공방을 벌였다. 반면 전날(18일) '기형적 조각' 발표를 강행해 여야 협상을 결렬시킨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아침 일찍 새 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대운동장을 돌며 스킨십과 팀워크를 다졌다.

 

'이명박'스러웠다.

 

지난달 21일 국회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제출된 뒤 지나온 일련의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인은 'CEO형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독주'에 나섰다. 기다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데드라인을 넘어서자 주저없이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에겐 카운터파트너인 통합민주당은 물론, 아군인 한나라당의 존재 역시 큰 의미가 없었다. 여야는 지난 28일 동안 '헛일'만 한 셈이다. 기존 정치권과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이 당선자가 상대가 있는 정치 협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전날 밤 이 당선자의 장관 발표 직전에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무슨 정치를 이렇게 하느냐"며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인사청문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이 당선인과 인수위를 옹호했지만, 당과 사전협의가 소홀했던 것에 대한 불만까지 감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경원 대변인도 "인수위의 조각발표 방침을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면서 "너무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endly, 언론친화적)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독주·자신감·오판·독선... 야당은 없었다

 

독주는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실적과 결과가 중시된다. 결국 독선으로 이어진다. 정부조직개편 협상이 파국 위기로 치달을 때 <한겨레> <조선일보> 등 대부분의 언론이 "새 정부의 정무 기능에 비상등이 켜졌다"며 이명박 당선인의 정치력을 문제삼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인수위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 개편작업"(박재완 정부혁신 TF팀장)이라고 호들갑만 떨었지, 토론회나 공청회 등 여론 수렴 작업을 한 차례도 거치지 않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특히 국회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됐지만, 이명박 당선인 측은 명분과 여론을 앞세워 국회 통과를 낙관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이 당선인측의 자신감은 '오판'으로 확인됐다.

 

당초 인수위는 "통일부 통폐합은 (국회통과를 위한) 협상카드가 절대 아니다"고 큰소리쳤지만, 한나라당은 통일부 존치에 합의했다. "위헌 요소가 있다"며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를 추진했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통일부 존치, 국가인권위 독립기관화, 금융감독원 권한과 과학기술부 기능조정 등 우리도 양보할 만큼 했다"고 말했듯이, 국회 협상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이명박 당선인측은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과의 협상을 경시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협상은 "만약 (야당이) 인수위 개편안을 받지 않으면 절름발이 출범을 할 수 있다(이명박 당선인)"는 '협박'으로 시작됐다. 이후 여야 간에 진행된 네 차례의 협상이 모두 성과없이 끝나자 이명박 당선인측은 곧바로 야당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야당에 의사타진도 해보기 전에 협상채널부터 공개하고, 야당 대표에게 사전연락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면담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국민담화'로 야당을 자극했고, 이 당선인은 손학규 대표와 단 12분 전화통화를 하면서 "대화가 잘 안 되면 (통일부까지 폐지하는) 우리의 원안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러한 태도는 "짜여진 정치적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라는 야당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지난 14일 밤 여성부를 살리고 해수부만 폐지하는 선에서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이 당선인은 "부(部) 대신 특위로 하라"며 협상안을 되돌려보냈다.

 

새 정부 내각 명단이 언론을 통해 사실상 확정되는 '초법 조각' 상황도 벌어졌다. 손학규 대표는 내각 명단이 실린 신문을 흔들며 "이게 정치를 하자는 건지, 이게 야당을 대하는 신정부의 자세인지…"라며 분통을 터트렸지만, 인수위 관계자들은 장관 후보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는 '촌극'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급기야 인수위는 16일 열리는 국정운영 워크숍에 15명의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참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위는 그러나 "초법적인 행위"라는 정치권의 비난이 쏟아지자, 불과 3시간만에 공식 입장을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인수위는 다시 "17일에는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가 이 역시 실현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야당만 자극한 채 이 당선인의 체면을 구겼다. 특히 국무위원 후보자 워크숍 참석 계획이 이 당선인과 청와대 예비 참모 회의 결과 나온 것이어서, 새 정부의 정무 기능을 더욱 의심케 했다. 이 회의에서 국무위원 후보자의 워크숍 참석 강행에 대한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강경파에 묵살당했다고 한다.

 

앞서 12일 이 당선인은 인수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 예산보다는 국민이 참여하는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는 게 의미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것도 정무기능 부재의 사례로 꼽힌다.

 

당초 국민성금운동은 앞서 이 당선인과 조찬을 함께한 재(在) 일본 대한민국 민단 관계자들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인수위 회의에서 별다른 논의 없이 공식 입장처럼 발표됐고, 이경숙 위원장은 아예 "상당히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힘까지 실어줬다.

 

이명박의 초강수 왜?... "총선 때 보자"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실종된 채 조각이 단행되면서 새 정부 국정운영에는 당분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질 전망이다. 오는 25일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에도 일정기간 국정 공백은 불가피하다.

 

당장 민주당은 "불법, 탈법적 인사청문회에 들러리 설 수 없다"고 못박음에 따라 장관 인사청문회 파행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인사청문회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이 당선인으로서는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낸 뒤 통상 30일이 지나야 국회 절차와 관계 없이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그 때까지는 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들로 국무회의체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의 입장은 확고하다. 정부조직개편에 대해 명분과 여론에서 앞서고 있다고 판단하는 만큼 오는 4·9총선에서 누가 더 옳은 지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 당선인은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 내정자 등과의 워크숍에서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런 정치권의 여러 모습들이 국민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초이스(choice)를 준다고 생각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 당선인은 18일 내각 명단을 발표하면서도 "(정치권이) 총선을 의식해 정부조직법 개선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참뜻을 왜곡했다"고 야당을 겨냥했다. 총선에서 '야당이 발목을 잡았다'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여의도 정치개혁'을 내세워 안정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당선인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실제 약이 될 지, 독이 될 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분위기다. 이 당선인과 인수위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총선에서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손학규 대표를 비판하면서 총선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우려감을 반영한 것이다.

 

안 원내대표는 19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손 대표가) 혁신에 대한 불만세력을 규합해서 총선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자 하는 총선 전략"이라며 "총선을 위해서는 신정부의 출범이나 국민들의 의사나 국가발전은 염두에도 없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손 대표로서는 이번 협상과정을 통해 '강한 야당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당내 입지를 공고히 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았다'라는 예비 여권과 보수 언론들의 정치공세를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 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어떤 평가가 나올 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결국 이번 정부조직개편 협상에 대한 여야의 최종 '성적표'는 총선 결과를 통해 나오게 되는 셈이다.


태그:#이명박 당선인, #정부조직개편, #4.9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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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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