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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이었습니다. 명절 끝 무렵에 고향집을 떠나 상행 고속도로 톨게이트 진입로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입니다. 앞차들이 모두 요금소를 빠져나갔어도 내 바로 앞차는 웬일인지 따라가질 않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운전하는 남자가 조수석의 부인과 삿대질을 하면서 다투는 거였습니다.

 

"저 집도 명절 후유증이 큰 모양이네?"

 

내 말에, 가져온 부침개를 꺼내서 뜯어먹고 있던 아내가 깔깔거렸습니다. 그 행동의 의미를 잘 아는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엔 우리도 그랬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형수님 사이엔 잠재적인 문제가...

 

나는 외아들이지만 명절이면 작은댁에서 사촌 형제 가족들이 대거 몰려오기 때문에 우리 집은 왁자지껄 하며 대가족으로 변합니다. 그럴 때면 정말 사람 사는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집은 아버님이 나를 늦게 두신 데 반해 작은댁엔 형님도 계십니다. 형제가 없는 나로서는 사촌들과 친형제처럼 지냈기에 우리 형제애는 어려서부터 참 돈독했습니다. 거기에 요리 솜씨가 일품이면서 살림도 야무지게 잘하시는 형수님은 영락없는 맏며느리 감이십니다. 물론 동서들 간에도 우애가 참 좋습니다.

 

내가 연상인 아내하고 결혼할 때만 해도 우리 형제들의 애틋한 형제애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사를 모셔야 하는 우리 집이라, 아버님은 아내의 나이를 아시고도 반대는커녕 오히려 더 잘 됐다고 흡족해하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어느 명절날, 아내의 그 나이가 말썽이었습니다. 형수님 나이가 아내보다 적었던 데서 문제의 씨앗이 싹텄던 것입니다.

 

아내는 나이 적은 형수에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자기 처지를 처음엔 별로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예법이 그렇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칭찬이 음식 솜씨 빼어난 형수님에게 지속적으로 몰리게 되자 상황이 돌변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했건만 돌아오는 영광이 없자, 아내는 엉뚱하게도 나이에 대한 본전 생각이 났던 것 같습니다.

 

형수님에게 집중되는 어른들의 칭찬, 드디어 아내가 폭발하다

 

어느 추석날, 귀경길 차 안에서 아내의 불만은 기어이 나를 향해 무차별 난사하는 형태로 폭발했습니다.

 

"아니, 형님이 음식 솜씨 좋은 거야 결혼생활을 나보다 더 오래했으니 당연한 거고, 나도 이만하면 어디 가서 음식 못한다는 소리 안 듣는데, 어르신들은 너무 하시는 거 아냐?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가 시골에 제일 먼저 가서 그 많은 음식 거의 다 만들고, 작은 댁 식구들 가고 나서도 뒤치다꺼리까지 다 내가 하는데, 어쩜 아버님은 내겐 칭찬 한 말씀 안 하시냔 말이야."

 

갑작스러운 말에 내가 할 말을 잃고 가만있자 아내는 더욱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이야기지만 형님도 그래. 아무리 내가 손아래 동서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어쩜 꼬박꼬박 반말이야? 거기다가 우리 집 맏며느리는 엄연히 난데, 왜 우리 집 오면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이것저것 자기 맘대로 하는 건데? 신혼 때야 내가 잘 몰랐으니까 그렇다 치고, 이젠 그러면 안 되잖아.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별로야."

 

가족들 앞에서는 아내가 그런 기분을 내색한 적이 없습니다. 그날 따라 며느리들끼리도 참 우애가 좋다고 어르신들한테 칭찬까지 듣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내의 기분을 위해서나, 나중에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맞아. 당신 말을 들으니 그 기분 이해할만하네. 좀 서운하긴 하겠어. 그렇지만 여보, 너그러운 당신이 이해를 해야지 어떻게 해.'

 

하지만 나는 그날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조금 엄처시하로 사는 형편이라 평소 아내 기분을 거스르는 말은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날은 아내한테 반기를 들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전부터 명절이면 형수님이 하시던 일이라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걸 이제 와서 당신한테 어떻게 일일이 허락을 받나. 그럼 당신도 이상해지잖아. 그리고 형수님이야 조카며느리니까 그럴 수 있지만, 아버지가 작은 아버님 식구들 앞에서 어떻게 당신을 노골적으로 칭찬하실 수 있겠어? 더구나 형수님도 아무려면 혼자만 칭찬 듣고 속이 편하시겠어?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거니 잠자코 계신 거지. 너무 속 좁게 그러지 말어."

 

이 말은 아내를 더욱 열 받게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치명적이었습니다. 하도 황당해서 항의하듯 말하다 보니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약간 올라간 것도 문제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형수와 아내의 갈등은 엄처시하 남편을 불안으로

 

엄청나게 막히는 고속도로 귀경길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만큼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초주검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내가 아무리 싹싹 빌어도 아내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밥도 못 얻어먹은 아이들과 나는 시골에서 가져온 부침개로 저녁을 때워야 했습니다.

 

며칠 후에 아내의 속은 좀 풀렸어도 여전히 내 고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한 번 품은 불만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은근히 나를 옥죄었습니다. 그래도 내겐 그토록 기다려지던 명절이 공포로 다가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내 눈치만 자꾸 보게 될 명절이 내겐 즐거울 리 만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다음 명절인 설이 가까워 올 무렵에 나는 형님께 찾아가 말못할 고민을 실토하고 묘안을 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히야, 우리 계수씨가 단단히 토라지신 모양이네. 하긴 내가 옆에서 듣기에도 큰아버님이 자네 형수를 너무 칭찬하시니 불편하긴 하더라."

 

술이 좀 거나해진 틈을 타서 조심스럽게 꺼낸 내 이야기에 형님이 한참을 웃고 나서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런 문제는 아주 간단히 푸는 방법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형수님이 전부터 한 가지 제안한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들을 위한 명절 뒤풀이 위문공연이었습니다.

 

형님의 묘책이 나를 구원하다

 

지금까지도 그 공연은 늘 형님이 주도하십니다. 명절날 저녁이면 우리 형제 가족들은 어김없이 노래방에 갑니다. 게다가 아내들도 술을 좀 마시면서 얼싸안고 노래 부르다 보면 명절의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단함이 말끔해지는 모양입니다. 그 공연은 그렇게 명절의 주요 행사로 우리 가족에게 자리 잡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겐 아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즐거운 명절을 되찾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후로 아내는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형수님과 돈독하게 돌아간 것은 물론, 손아래 동서들에게도 자상하게 대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너그럽게 풀어준 형님과 형수님에게도 항상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형제들이 모일 설날이 어린아이처럼 또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명절, 남편들도 두렵다구요>의 응모글입니다.


태그:#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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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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