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상화 종이전'이 열리고 있는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입구와 내부
 '정상화 종이전'이 열리고 있는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입구와 내부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전통한옥에 현대미가 혼합된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정상화의 과정(process)전'이 24일까지 열린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마음이 훤하게 트이고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절로 우러난다.

한지 등도 많이 사용하는 그의 모노톤(단색)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져 그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볼 때와 같은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예술의 기원과 본질이 뭔지를 생각하게 한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그의 그림에서 풍기는 멋과 깊이를 이렇게 평했다.

"솔직히 말해서 정상화의 회화는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음미하는 시간을 거치고 나면 눈요기 그림과는 비교가 안 되게 깊은 숨결을 내뿜고 있다. 그의 회화는 그 전체가 한데 어울려 무한히 확산해 가는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정상화(1932~)는 1956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967~1968), 일본 고베(1969~1976), 프랑스 파리(1977~1992)에 체류하며 작업을 해왔다. '한국추상 1세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도 경기도 여주에서 변함없이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완성으로 가는 과정의 그림

'무제' 캔버스에 문지르기(프로타주) 129×96cm 1979. 격자무늬는 창호지문을 연상시키고 상호간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무제' 캔버스에 문지르기(프로타주) 129×96cm 1979. 격자무늬는 창호지문을 연상시키고 상호간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 정상화

관련사진보기


이번 회고전의 주제가 '과정(process)'이다. 왜일까? 그의 그림은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상화의 그림은 시작도 끝도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작가는 그렇게 비우고 채우고, 또 차면 다시 없애는 작업을 반복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존재 혹은 부재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그림에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의 그림을 즐기며 감상하면 그뿐이다.

그의 그림은 그냥 하나하나 낱개로 보는 것보다는 다른 작품과 연관해 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마치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얽히고설켜 있듯이 그 누구보다 작품 간 유기적 연관성과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단조로움 속 다양한 변주

'무제' 캔버스에 문지르기(프로타주) 129×96cm 1979. 무늬 속에 비우고 채우는 작업이 수없는 반복됐음 알 수 있다.
 '무제' 캔버스에 문지르기(프로타주) 129×96cm 1979. 무늬 속에 비우고 채우는 작업이 수없는 반복됐음 알 수 있다.
ⓒ 정상화

관련사진보기


위 작품들에서 보듯 그의 화면은 그냥 밋밋한 바탕에 일정하게 덮여진 색층과 격자무늬만 있을 뿐이다.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단조로움 속에서도 다양하고 풍성한 변주는 변화무쌍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그림이 분주하고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들에게 삶의 박자를 한발 늦추게 하는 여유와 또한 사색의 공간도 마련해주니 놀랍다.

이런 그림은 최소의 요소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닮았으나 그 분위기는 다르다. 여기선 왠지 모르게 오래된 돌담길과 같은 그런 한국적 이미지가 솔솔 풍긴다.

이런 풍의 그림을 우리는 흔히 모노크롬(단색화) 미술이라고 한다. 이 미술운동은 우리나라에선 70년대 모더니즘 미술운동으로 크게 유행했는데 그 어느 나라보다도 동양사상을 재해석해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다

'무제' 종이에 아크릴릭 뜯기(데콜라주) 50×32cm 1979. 색채와 무늬의 다양한 변주로 많은 걸 표현한다
 '무제' 종이에 아크릴릭 뜯기(데콜라주) 50×32cm 1979. 색채와 무늬의 다양한 변주로 많은 걸 표현한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구상이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라면, 추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계열의 대표주자 박서보는 오래 전부터 '탈이미지'를 들고 나왔다. '이미지의 무화(無化)'를 통해 이미지를 얻는 역설의 미학인데 요즘 그의 그림이 뜨고 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개념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만큼 그 과정도 정밀하고 꼼꼼해야 하고 게다가 독보적이어야 한다. 또한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장인이 불철주야 연마한 기술로 명품을 만들 듯 그렇게 힘든 작업과정을 견뎌야 한다.

그는 그렇게 구도자처럼 일해 왔다. 캔버스에 3~4㎝ 두께로 고령토와 본드를 발라 말리는 일을 시작으로 아크릴 물감을 여러 층 쌓아올려 화면을 채우고 비우며 엄청난 노력과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는 75세의 나이에도 전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가족과 떨어진 채 200호 이상 되는 캔버스 작업도 혼자 해낸다. 그는 자신의 작업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작업은 혼자 한다. 캔버스는 접는 것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조수는 필요 없다.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28년 세월을 혼자 보내서 혼자인 것이 익숙하다."

붙이기, 뜯어내기, 문지르기의 반복

'무제' 종이에 잉크와 뜯어내기(데콜라주) 50×32cm 1979. 사물의 재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무제' 종이에 잉크와 뜯어내기(데콜라주) 50×32cm 1979. 사물의 재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 정상화

관련사진보기


이 작가의 작업요체는 내적 자율성을 가지고 평면을 무한대로 확대하며, 물질과 자아를 해체시키고 오직 순수한 미를 탐색하는 여정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구체적 방식으로 '붙이기(콜라주), 뜯어내기(데콜라주), 문지르기(프로타주 prottage)'가 사용된다. 여기에 '목판작업'도 추가된다.

모노크롬미술에서 보면 작가마다 개성이 다르다. 60년대 프랑스 모노크롬작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은 오직 청색으로만 작업을 했고, 이탈리아 모노크롬작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는 예리한 칼로 그림을 찢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위 청색계열 작품은 뜯어내기(데콜라주) 방식으로 작업한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하늘과 바다, 흰구름과 먹구름까지 은은히 보여주는 것 같다. 엷은 청색과 짙은 청색 등 다채로운 청색이 뒤얽혀 하모니를 이룬다. 그 속에서 어떤 공명과 울림을 일으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같은 계열의 다채로운 색

'무제' 종이에 아크릴릭과 뜯어내기(데콜라주) 65×50cm 1979. 시공간을 뛰어넘어 보다 넓고 깊은 세계를 보여준다
 '무제' 종이에 아크릴릭과 뜯어내기(데콜라주) 65×50cm 1979. 시공간을 뛰어넘어 보다 넓고 깊은 세계를 보여준다
ⓒ 정상화

관련사진보기


또 다른 이 청색계열의 작품은 작가가 경험한 남해 바다의 추억과 관련이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물빛 속에 작가가 느낀 선율과 감동이 뜨거운 청색에서 차가운 청색까지 수만 가지의 청색으로 화면을 물들인다. 거기서 전혀 색다른 청색의 융합이 일어난다.

푸른 바다의 출렁임에서 얻은 이런 청색의 신비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난다. 그래서 관객들은 청색이 주는 그 미묘한 물빛에 현혹된다. 같은 계열의 색만으로 추상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구상 못지않다. 아니 실은 더 많은 변주도 가능하다.

드러내고 감추는 미학

'무제' 종이에 연필과 뜯어내기(데콜라주) 35×50cm 1978. 공예품이 아닌 예술품의 위엄을 풍긴다
 '무제' 종이에 연필과 뜯어내기(데콜라주) 35×50cm 1978. 공예품이 아닌 예술품의 위엄을 풍긴다
ⓒ 정상화

관련사진보기


그의 그림은 비우고 채우고, 붙이고 때내고, 담고 덜어내는 반복 과정, 다시 말해 드러냄과 감춤이라는 순환구조를 통해 그림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어떻게 숨 쉬고 움직이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역시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군더더기가 없는 흑백계통의 단색화가 제격이다.

그가 이렇게 40년 이상 예술적 열정으로 남긴 이런 무늬와 흔적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삶의 궤적으로 또한 진화시켜온 미의 발자취로 관객들 가슴에 오래 남으리라.

끝으로 미술평론가 필립 피게(P. Piguet)도 정상화에 있어 그림이란 삶의 최우선적 사유방식이라고 했지만 그가 시종일관 이런 작업에 투신한 것은 자신만의 사유를 시공간을 넘어 영원히 가슴에 품어보고 싶은 그리움 같은 것을 화폭에 담아보려는 몸부림이 아닌가 싶다.

1970년대 모더니즘운동으로 모노크롬(Monochrome)미술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모노크롬미술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서양에서처럼 다색화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의 모노크롬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정신세계로 승화시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논리를 펼친 것이 특징이다. 작가들의 고뇌와 정신세계를 통해 전통적 미의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출한 한국적 모더니즘미술운동이다.

이 미술운동에 가담한 주요 화가는 박서보, 정창섭, 김창렬, 이우환, 하종현, 권영우, 김기린, 정상화, 윤형근, 윤명로 등이다. 이 운동은 한때 흰색에 주목하며 화단을 일색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가들로부터 관념적 심미주의로 치부되어 무가치한 미술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박서보의 '탈이미지(물질이나 자아의 해체)'에서 알 수 있듯이 '무작위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이 미술운동은 미적 자율성과 순수화의 의지(무목적성), 평면의 확대, 물질의 정신화 등을 중시한다. 박서보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나의 행위와 물성이 만나는 합일의 장이며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리다보면 내가 없어진다." 이렇게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 미술운동이다.

덧붙이는 글 | 소격동 학고재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70 Tel. 720-1524~6. 12월 24일까지
정상화전홈페이지 http://www.hakgojae.com/gh02/index.htm(약력, 다른 작품 등 참고)
정상화 홈페이지 http://www.kcaf.or.kr/art500/chungsanghwa



태그:#정상화 , #모노크롬미술, #이우환, #박서보, #이브 클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