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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에게 신경질을 어떻게 부린다요. 하도 속이 상헌께 아내 앞에서는 일부러라도 웃제라. 그라도 진정이 안 되면 카세트 엄청스레 틀어 불고 노래를 따라 부른당께요. 집사람만 보면 눈물이 나올라 안 그라요."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손발이 꼬여 있는 아내 양귀순(64)씨를 바라보는 남편 정동규(70)씨의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했다.

정씨는 25살에 19살이던 양씨와 결혼해 45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 긴 생활 중, 정씨는 지난 30년간 아내를 간호하느라 한시도 아내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

병간호 30년, 한시도 아내 곁을 떠나 본 적 없는 남편

▲ 벽면에 가지런히 걸려 있던 부부의 액자사진. 사진 속 얼굴이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준다.
ⓒ 최육상
지난 15일 정씨의 사촌동생 정동만(49)씨와 함께 부부의 집을 찾았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내를 건너고 산을 굽이굽이 돌아서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산골짜기, 전체 가구가 열다섯인 강경마을.

매실을 따러 나갔다가 점심 식사를 위해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 정씨의 첫마디는 내심 동생이 못마땅하다는 투였다.

"보여줄 게 뭐 있다고 기자양반을 모셔 왔어. 이렇게 산다고 떠들면 있던 병이 없어지는감? 내는 그냥 조용히 살면 되는디. 집사람이 아프지 않으면 그걸로 족할 것이구먼."

마루에 걸터앉은 정씨는 아내를 향한 응어리가 깊은 듯 아내를 쳐다보며 긴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연방 뿜어냈다.

아내 양씨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몹시 꼬부라져 숟가락을 집기도, 한 걸음을 내 걷기도 매우 벅찬 모습이었다. 특히, 발바닥뼈가 울퉁불퉁해서 걷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대학병원도 도무지 수술은 안 된다고 안 허요"

▲ 30년 전 이유도 모른 채 아프기 시작한 양씨의 손과 발.
ⓒ 최육상
얼마 전까지 움직이지 못하던 양씨가 허리 수술도 받고 무릎 수술도 해서 이만큼 움직이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는 부부에게 "수술하면 손발을 치료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 정씨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전주 시내에도 가보고 대학병원에도 가봤지라. 아내가 류마티스 관절염인가 뭐시라 하는데 도무지 수술은 안 된다고 안 허요. 그라서 십년이 넘도록 누워서 움직이지도 못 했지라. 다행히 얼마 전 여수에 있는 병원에서 무릎에 연골을 넣는 수술을 하고서 포도시(간신히) 움직이는 것이구만."

아내 양씨는 모진 세월 동안 늘 곁에 있어 준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양씨는 "수술?"이라고 되뇌며 말끝을 흐렸다.

"포도시 먹고 사는데, 남편이 너무 고생스러운 게.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섭기도 혀고, 수술할 때도 남편에게 업혀서 가고, 5일에 한 번씩 읍내 병원까지 택시 타고 갔다 오려면 하루에 2만원씩이나 드는데 또 수술을 하려면…."

"아내 약값 치르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지라"

10년 전에 장애 3등급을 받은 양씨는 병세가 악화돼 현재는 장애 1등급에 해당한다. 하지만 남편 정씨는 아내의 장애등급 높이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오갈 데도 없는 시골에서 장애등급이 뭔 의미가 있다요. 자식들이 보내오는 생활비 몇 십만 원과 농사짓는 게 수입의 전부이긴 혀도 입에 풀칠허면 안 되겠소. 약을 하도 먹으니께 아내의 위가 나빠져 부러 좋은 한약으로 몸보신을 하며 양약을 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서두… 아내 약값 치르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지라."

▲ 전북 순창군 적성면에 자리한, 안팎에서 본 부부의 집. 확 틔인 전망이 시원하다.
ⓒ 최육상
부부의 집은 전망이 확 트여 있었다. 울창한 숲을 이룬 산을 뒤로 두고, 멀리 내려다 보이는 하천과 논밭의 풍경은 부부의 시름만 잊을 수 있다면 여느 명당에 견줘도 결코 손색이 없었다.

"집터의 기운이 참 좋다"고 하자 남편 정씨가 기다렸다는 듯 "좋지라"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시골에서 대학교 총장과 방송국 아나운서를 배출한 터 아니것소. 박사도 4명이 나왔지, 아마. 어렸을 때는 요 밑에 살았는데, 집사람과 결혼하고 이곳으로 옮겨왔으니 여기 산 지도 어느덧 45년쯤 안 되겠나."

"세상이 을매나 좋은디 방에만 처박혀 있당가"

부부의 집을 찾은 이 날은 매실 따는 일손을 돕느라 마을 주민들과 일가친지들 몇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요즘 세상에 정씨 같은 사람은 보기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사촌동생 정정애(50)씨는 "오빠가 병간호를 어찌나 정성스럽게 하는지 모른다"며 "30년이 넘도록 지켜봤지만 오빠의 정성은 끝이 없다"고 말했다.

양씨의 친동생 양계순(62)씨는 "형부는 언니 몸에 좋다는 것이 있으면 옻이면 옻, 오리면 오리, 매실이면 매실 등 무엇이든지 갖다 먹인다"며 "형부 정성을 봐서라도 언니의 병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올해 연세가 아흔이라는 한 할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면서 "건강한 게 최고야, 나보다 오래 살아야 혀, 암. 세상이 을매나 좋은디 방에만 처박혀 있당가, 빨리 나다녀야지"라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동만씨는 "형수님이 장애등급을 받은 거나 생활 정도를 보면 당연히 생활보호대상자(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감인데, 형님이 물려받은 논과 밭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그게 안 되고 있어라"며 "지금이야 형님이 기력이 있응께 먹고 살기는 허지만, 형님까지 아프면 그땐 어쩔까 모르겠어라"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부부를 바라봤다.

▲ 손을 맞잡은 부부. 지인들은 요즘 세상에 정씨 같은 사람은 보기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 최육상

"이녁, 제발이지 이젠 아프지 마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내의 병간호를 하다 보면 가끔은 짜증도 날 법. 남편 정씨에게 "화가 날 때면 어떻게 하시느냐"고 묻자 정씨는 정색을 하고 "화는, 무슨 화를 낸다요"라며 면박을 줬다.

"가끔 자식들도 필요 없다는 생각에 울컥하긴 해도, 그 아그들이 뭔 죄가 있다요. 다 부모 잘못 만난 죄지. 직장 댕기며 먹고 살기 바쁠 텐데도 생활비 보내주고, 전화도 해 주니께 그것으로 됐지라. 아픈 몸이지만 아내가 있어 2남 1녀를 고등핵교와 대핵교까지 보내며 건강하게 키워낸 거 아니것소. 그런 아내에게 어떻게 화를 낸당가요."

정씨는 굽어진 아내의 발을 씻어주며 이렇게 희망을 다짐했다.

"이녁, 제발이지 이젠 아프지 마소. 둘뿐이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죽을 때꺼정 당신 곁에 있으리다. 당신도 오래오래 살아서 내 곁에 있어주소. 이 터가 명당자리니께 당신 병은 분명히 나을 것이구만."

▲ 남편 정씨는 아내 양씨의 구부러진 발을 씻어주며 "제발 아프지 마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최육상

태그:#정동규, #양귀순, #병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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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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