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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30일에 하려 하는) '현재 합의된' 협정문의 서명과 만약 제기될 수 있는 추가협의는 별개 문제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6월 13일)

"자동차나 개성 등을 포함해서 요구하는 것은 재협상이라고 할 수 있고, 신통상정책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추가 협의라고 생각한다." (이혜민 한미FTA 기획단장, 6월 13일)>


'말장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통상협정은 본문과 부속서한에 어떠한 법적 차이도 없다. '현재 합의된' 협정과 '다시 합의할' 협정의 효력에 일체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정부는 굳이 재협상(re-negotiation)과 추가협상(additional negotiation)을 구분한다.

재협상은 안 되는데 추가협상(추가협의)는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분류, 이런 식의 효력의 차별화, 이런 식의 협상전략이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는가? "재협상은 없다"라던 기존 입장을 포기하는 '조악한 변명'이며, 국민을 현혹시키는 '수사의 정치'이다.

하긴, 투자자-국가소송제(ISD)와 역진방지장치(레칫조항), 최혜국대우(MFN) 등 국가 경제정책을 내놓는 최고 강도의 협상을 해놓고도 '낮은 단계의 FTA'라고 선전하던 정부에게 이 정도는 애교일 수도 있다.

국민 현혹시키는 수사의 정치

그러나 한미FTA의 중요성을 헤아릴 때 정부의 위선을 비웃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최대한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 보자. 정부가 재협상과 추가협상을 분리시키려는 것은 '자동차 관세 철폐와 한반도역외가공지역 위원회 설치' 등은 지키고, 신 통상정책의 내용은 협의하겠다는 뜻이다. '머리는 지키고 팔은 내 준다'(?)는 비장한 각오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식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정부와 의회가 '신 통상정책'을 합의한 만큼, 합의된 국가정책 노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협정이 정책에 맞게 정리되고 바뀌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론'으로 임한다.

'수사학'과 '원칙론'의 차이가 재협상의 전략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재협상을 피하기 위해 추가협상의 내용을 거부하기 힘들게 된다. 미국은 추가협상의 내용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협정이 통째로 의회를 통과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누가 손해이고, 누가 이익인가?

"재협상은 없다"던 김종훈 수석대표는 5월 22일, "재협상이 아니라 추가협의라 불러달라"고 했다. 분명 '말'인데 '사슴'으로 불러달라고? 그러면 '사슴'이 '말'이 되는 세상인가? 어제 추가협의가 별개의 문제라고 발표함으로써 청와대는 신조어를 현실화시켰다.

왜냐고? '협정 분리 발표'는 어떻게든 한미FTA를 체결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6월 말 본협상에 서명하고, 뒤따라 오는 것은 추가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미국에게 추가에 대해서 서명하겠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정부가 차라리 솔직해진 것을 기뻐해야 하나? 정부는 국회에도 사인을 보냈다. 본협정은 국회로 갔으니 국회에서 본협정대로 비준을 해주고, 추가협정은 부속적인 것이니 비토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이다. 정부의 탁월한 국내협상 전략에 감탄해야 하나?

미국의 태도는 다르다. 본협정과 향후 마련한 협정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는다. 효력 차이를 인정하지도, 철자상에 차이 또한 두지 않는다. 기만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회의 태도도 다르다. 의회는 신통상정책에 따른 협정문을 제대로 만들어 오라고 한다.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오면 전체를 보고 비준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상협정에 대한 헌법적 권한 배분에 있어 대한민국 국회는 없다. 가장 강한 대통령 권한과 가장 약한 국회 권한이 16대 대통령과 17대 국회의 특징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더 큰 실패를 부르는 정부의 기만

주목할 점은 어떻게든 한미FTA를 체결하기 위해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의 태도가 실패한 협상을 더 실패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미 우리는 한미FTA 협상에 돌입하기도 전에 소위 '4대 선결조건'을 양보했던 전력이 있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다고 했고, 국민에게 쇠고기 수입 문제는 한미FTA와 관련 없는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 쇠고기 수입 없이 한미FTA 의회 통과는 어렵다고 주장했고, 협상 과정 내내 쇠고기는 우리 측 협상단의 '코뚜레'가 됐다.

지금 재협상과 추가협상을 분리시키는 정부의 전략 또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재협상 주제, 자동차와 개성공단은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핸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국민을 속이기 위해 꾸며낸 말들로 인해 참여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협상·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이전미군기지 환경치유 협상' 등에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왔다. 외교안보 협상이나 통상협상이나 참여정부의 태도는 한 치도 다른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지적해야겠다. 지난 5월 10일 미 의회와 행정부가 신통상정책을 합의한 이후, 양자는 구체적인 문안 작업을 지속해왔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 작업이 끝난 뒤 '제안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회는 미국 행정부와 같은 정부를 파트너로 갖고 있지 못하다. 문안 작업을 공동으로 하기는커녕, '국문 해석본이 없다'는 주장을 들어와야 했다.

정부의 기만과 그로 인한 협상 전략의 오류와 실패는 계속되고, 그럴 수록 거짓말은 늘어갈 것이다. 재협상은 없다는 참여정부여, 차라리 '재협상'을 하라! 그리고 재협상을 충실히 마친 다음 '하나의 생산품'을 국민과 국회 앞에 제시하라. 그리고 비준동의를 요청하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은 틀렸다.

덧붙이는 글 | 최재천 기자는 국회의원입니다.


태그:#한미FTA, #재협상, #추가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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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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