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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서 어민으로 행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때'를 볼 줄 알아야 할 일이다. 쉽게 말하자. '시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야 시계도 흔하고 시계 보는 것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옛날 초등학교에서 동그랗게 오린 판자에 시침과 분침을 붙이고 돌려가며 시간을 익혔다.

육지의 시간에 익숙해져 버린 인간에게 자연의 시간은 불편하다. 하지만 물때를 익히고 나면, 어장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진다. 갯일을 하는 마을사람들에게 물때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연장을 들고 구멍을 찾는 일이다. 낙지·칠게·개불·바지락·백합 등 갯벌생물들은 갯벌을 들고날 때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모지조개 작업, 마치 새만금 도요새 같다

▲ 모시조개와 바지락 채취(경기도 시흥 오이도).
ⓒ 김준
경기만의 오이도 갯벌에서 만난 할머니는 한쪽 다리를 저시지만 갯벌에만 들어가면 젊은이가 따라가기 힘들다. 모시조개, 바지락 채취량도 다른 사람의 두 세배다. 그 비법은 간단하다. 구멍을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할머니는 조개를 캘 때 모든 갯벌을 뒤집지 않는다. 먼저 호미로 콕콕 갯벌을 찍는다. 그러다 구멍을 발견하고 갯벌을 파면 어김없이 모시조개나 바지락이 있다. 신기할 뿐이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하다. 예전에 새만금의 옥구염전 근처에서 만난 도요새들이 먹이를 찾던 그 모습이다. 이 녀석들이야말로 구멍 찾기 선수들이다. 부리로 콕콕 갯벌을 찍다 구멍에 머리가 묻힐 듯 집어넣어 어김없이 칠게며 갯지렁이를 잡아낸다. 할머니가 모시조개를 찾는 모습도 그러하다.

어민들이 사용하는 어구들은 이런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동물들이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보고, 인간이라는 동물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리라. 생존을 위해 소금을 찾아떠나는 맘모스의 뒤를 밟았던 인간처럼.

조새, 집안 살림에서 마을운영까지 책임진다

▲ 조새를 수선하는 어민(전남 함평 주포).
ⓒ 김준
바다와 갯벌을 마당으로 둔 함평만 주포리, 따뜻한 봄 햇살을 등지고 앉아서 한 주민이 숫돌에 뭔가 벼르고 있다. 얼른 보기에는 영락없이 부엌칼 날을 세우는 모습이다.

마침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없이 한적하다. 해안도로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은 황토밭 구릉과 갯벌이 연결된 갯벌생물의 삶터였다. 마치 바다와 육지의 금을 긋듯 시멘트로 해안에 옹벽을 치고 도로를 만들었다.

주민이 벼르는 것은 칼이 아니라 조새였다. 함평만 굴은 다른 지역처럼 줄에 매달려 자라는 것이 아니라 돌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직접 갯벌에 들어가 조새로 굴을 한 알 한 알 쪼아야 한다.

조새를 많이 사용하면 굴 껍질을 내리치는 방아쇠가 뭉뚝해져 제 역할을 못한다. 이럴 때 숫돌에 칼을 벼르듯 손질을 한다.

어민들이 사용하는 많은 연장이 그렇듯 조새도 단순하다. 조새는 손잡이 아래쪽에 굴의 방을 내리쳐 굴의 껍질을 해체하는 방아쇠와 그 위쪽에 굴의 알맹이를 따내는 갈고리, 손잡이인 몽둥이로 이루어져 있다.

▲ 며느리조새, 시어머니조새, 시할머니조새(충남 태안).
ⓒ 김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지만 크게 경남지역과 여수·순천·고흥의 갯마을 어민들은 '쪼시게'나 '조시게', 장흥·완도·무안·함평·신안·영광·전북·충남 지역에서는 '조새', 인천에서는 '죄'라고 부른다.

조새의 모양새도 갯벌의 생태환경과 굴 서식조건에 따라 방아쇠 날이 한쪽만 있는 것, 양쪽에 있는 것이 있으며, 갈고리의 형태도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몽둥이도 멋스럽게 멋을 낸 놈부터 투박스럽게 손잡이 역할만 하는 녀석까지 여러 형태이다.

조새 하나가 가계를 책임지기도하고, 마을운영 기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충남 태안 굴양식을 하는 마을은 가족의 숫자만큼 조새를 가지고 있다. 할머니 조새, 어머니조새, 며느리 조새 등. 이 마을은 조새가 생계를 책임진다.

겨울이면 비닐하우스로 지은 굴막에 가족들이 모여 조새로 박신작업(굴까는 일)을 한다. 함평만 한 마을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마을공동어장인 굴밭에서 조새로 굴을 깐다.

한 가구에 한 명씩 참여할 수 있는 굴 작업은 채취량을 제한하지 않는다. 매일 채취량을 확인해 킬로그램마다 정해진 액수에 따라 마을기금을 제한다. 이 돈은 마을사업은 물론 노인잔치, 화전놀이의 종자돈으로 사용된다.

독살, 시간과 공간을 엮는 생태어법의 원형

▲ 독살(전남 신안 안좌).
ⓒ 김준
인간이 만들어낸 고기잡이법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일까. 독살이다. 독살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조간대의 지형을 고려해, 돌담을 쌓고 물길을 막아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다.

조간대의 지형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 모양도 일자형, 반달형, 디귿자형, 미음자형, 꺾쇠형, 젖꼭지형 등 다양하다. 독살은 경기만 일대에서는 돌살이라 부르며, 가로리만과 안면도, 서천 비인만 등 충남해역과 부안·신안·해남·여수 등 전라도 해역은 독살, 제주도에서는 '원'이라고 부른다.

독살은 누구나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을 옮겨 물길을 막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하겠는가.

서남해역의 갯벌 중에는 논과 밭처럼 두렁이 만들어진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갯벌에서는 굴이나 바지락을 채취한다. 산비탈을 일궈 밭을 만들듯 어민들이 돌과 모래를 집어넣어 어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작은 담이나 말뚝을 박아 개인권리(점유권)를 인정한다. 독살도 마찬가지다.

독살은 엄청난 돌을 옮겨 쌓아야 하기 때문에, 동원된 사람에게 돈으로 건 식량으로 건 지불할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사람을 동원할만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마을에서 행세 꽤나 해야 독살을 쌓을 수 있고 운영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마을공동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재산으로서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사려면 쌀가마 꽤나 주어야 했고, 임대를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년 날을 잡아 독살에 고기가 많이 들기를 기원하는 독살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제주도와 충남의 일부지역에서는 아직도 독살을 이용해 멸치를 잡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독살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양식어장이 시작되면서였다. 조간대에 드는 고기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돌을 갯벌에 집어넣어 굴양식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돌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살이 있는 곳은 대부분 굴이 많이 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살은 어디에 쌓는가. 당연히 적은 노력으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을 택한다. 자리가 좋은 곳은 이중 삼중으로 독살을 쌓기도 한다. 만입된 곳을 막기도 하고, 모래등과 여와 바위를 연결해 돌을 쌓기도 했다.

물발이 세면 큰 돌을 이용해 쌓아야 하고, 바닷물이 가장 늦게 빠지는 임통은 크고 작은 돌을 얼기설기 조밀하게 쌓는다. 바닷물은 잘 빠지면서 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사주가 있으면 이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쌓기도 했다. 독살은 돌을 쌓는 것 외에 물이 가장 늦게까지 고여 있는 곳에 대나무나 칡넝쿨을 엮어 임통을 만든다. 물이 빠지면 독살 안에 남아 있는 고기를 쪽대·쪽받이·반두·사둘 등으로 부르는 뜰채를 이용해 잡았다.

죽방렴, 기다려서 잡는 지혜

▲ 죽방렴(경남 남해 지족마을).
ⓒ 김준
독살처럼 죽방렴은 오는 고기를 기다려 잡는 오래된 전통 어법이다. 지금처럼 바다 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남이 잡을세라 밤새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잡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만기요람>에는 고군산·위도·영광·부안·만경·광양·순천·강진 등지에 어살로 고기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1469년(예종 1년)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편'에 소개된 이 어법은 지금도 남해 지족해협에서 이어지고 있다.

죽방렴은 얕은 갯벌에 V자 모양으로 참나무 말뚝을 박고 그물을 엮어 고기를 유인해 V자 끝에 설치된 불룩한 임통(불통)에 가두어 잡는다. 어민들은 하루에 두 번씩 배를 타고 들어가 뜰채로 고기를 건져낸다. 지족마을 어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주로 멸치를 잡는다.

이외에도 학꽁치·장어·도다리·농어·감성돔·숭어·보리새우 등도 잡히며 인근 횟집에서 활어용으로 공급되고 있다. 지금의 죽방렴은 그물을 대어서 만들지만 과거에는 대나무를 쪼개서 엮었다. 지역에 따라 대나무 대신 칡넝쿨이나 싸리나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는 명주그물, 나일론 그물 등이 사용되었다.

지족마을에서 죽방렴을 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한다. 옆 죽방렴과 500m 이상 떨어져야 하고, 인근 어민들이 허락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새롭게 죽방렴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도 어촌마을의 갯벌이나 어장 운영은 법률보다 마을공동체에서 정한 규칙이 먼저 지켜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법보다는 마을공동체의 규칙이나 규범이 강한 규제력을 갖는 셈이다.

지족마을에서는 죽방렴 1통이면 대학생 하나는 충분히 가르칠 정도였다. 죽방렴 멸치는 다른 멸치에 비해서 잡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기 때문에 맛이 좋아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지족해협에는 20여 통의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다. 최근 죽방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곳은 갯벌체험과 죽방렴 멸치잡이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손, 이만한 연장 있나요?

▲ 맨손으로 낙지를 잡는 어민(전남 신안 신의).
ⓒ 김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좋은 도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연장 중에 '연장'은 인간이다. 인간의 오감과 손발만한 도구가 없다.

지난해 추석 무렵 전라남도 신안군 섬 갯벌에서 만난 어머니는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맨손으로 낙지를 잡고 있었다. 맨손으로 낙지구멍을 파서 잡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구멍 속에 손가락을 넣고 낙지를 기다려 잡는 것을 보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어머니는 고무함지박에 줄을 달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허벅지까지 빠지는 갯벌을 좌우로 살피며 조심스럽게 오간다.

낙지구멍을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게 구멍들이 많기 때문에 낙지구멍을 잘 찾아야 한다. 손가락을 넣은 채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느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횟집에 있는 낙지를 담아놓은 함지박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낙지가 발을 내밀어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어머니가 낙지를 잡는 방법이 꼭 그런 모습이다.

그렇다고 낙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심지어는 발만 남겨두고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낙지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면 적당한 순간 손을 구멍 속으로 '푸욱' 집어넣으며 몸통과 머리를 잡아내야 한다. 이것 역시 감각이다. 선수가 아니면 그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다. 순전히 '손 감각'으로 잡아내야 한다.

잘못된 연장, 생태계를 파괴한다

▲ 칠게를 대량으로 잡기 위해 만들어낸 불법 PVC 관.
ⓒ 김준
연장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다. 연장은 자연생태계가 유지되는 범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종종 인간이 만든 연장들은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최근 갯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칠게잡이가 그렇다.

PVC관으로 만든 칠게잡이 통을 갯벌에 묻고 양쪽에 양동이를 묻는다. 칠게들은 물이 빠진 갯벌에서 먹이 사냥을 위해 오가다 PVC 홈통에 빠진다. 20미터 밖에서도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재빨리 구멍 속으로 숨는 칠게는 홈통에서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인간의 손에 잡힌다.

낙지잡이 미끼로 사용되어 대량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칠게를 잡아 파는 전문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칠게잡이 연장이 개발되기 전까지 손이나 호미로 구멍을 파잡았다. 칠게는 낙지만 아니라 도요새 등 새들이 좋아하며, 사람들도 반찬으로 많이 이용한다.

갯벌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바닷물을 갯벌 깊이 소통시켜 동식물 플랑크톤을 공급해 주는 것은 물론 갯벌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남해 갯벌지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개체 수도 엄청났던 칠게들이 인간이 만들어낸 대량포획 어구에 의해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 연장은 새만금 갯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방조제 공사가 진행되면서 백합이 점점 줄어들고, 어장과 양식이 어려워지자 눈길도 주지 않았던 칠게를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갯벌에 PVC관이 묻히기 시작했다. 당장 몇 사람은 칠게를 잡아 소득을 올릴지 모르지만 지속성을 갖기는 어렵다.

연장은 사회성을 갖는다. 그래서 문화연구에 중요한 대상이다. 선사시대에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연장'에 대한 해석은 거의 절대적이다. 조개무지에서 발견한 작은 뼈조각에서 선사인들의 의식주를 밝혀내고 권력구조를 읽어낸다.

옛날 변소 흙벽에 줄줄이 걸려 있던 농기구를 비롯한 연장과 짚으로 만든 도구들이 예사롭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으레 부엌과 변소를 슬금슬금 들어가 본다. 혹시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용하던 보물들이 녹이 빨갛게 슬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 않나 싶어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 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다, #염전, #갯벌, #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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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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