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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명화 씨와 반려동물 큰별이.
ⓒ 황명화
경기도 용인시 기흥의 한일마을. 신갈저수지를 끼고 있는 한적한 동네다. 동네 앞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거침없는 밀려드는 아파트개발로부터 마을을 지켜내고 있었다. 건너편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와는 달리 아직 고즈넉한 시골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지난 21일 이곳을 찾은 이유는 최근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는 요리에세이 <솔로 쿠킹 다이어리>의 작가 황명화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한일마을은 마을 앞을 지나는 고속도로 밑 지하도를 통해 외부와 소통한다. 통로를 지나자마자 위치한 마을 초입 버스 정류장에서 작가와 만났다. 초행길에 기자가 헤매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 마중을 나온 것이다. 그러나 '길치'인 기자는 이미 한참을 헤맨 후였다.

'맛' 있는 서평을 쓰기 위해 찾아나선 길

@BRI@그녀는 작가란 이름보다 에세이스트로 불리고 싶어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이다. 그녀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쿠킹'한 요리를 맛보고 싶어서였다. 명색이 요리에세이 책인데 밋밋하게 서평만 쓰는 것은 '맛'이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쳐들어갈 테니 닭볶음탕(닭도리탕)을 해달라고 했지만 칼자루를 쥔 그녀는 라자니아를 내놓겠단다.

마을 어귀에서 그녀의 집까지 걷는 길은 조붓한 산길이다. 바닥에 시멘트만 깔리지 않았다면 때 이른 봄 냄새가 코밑으로 올라왔음직한 날이다. 한 달 전 이사를 한 이곳은 마을의 제법 높은 곳에 있는 전원주택이다. 아담한 앞마당과 넓디넓은 신갈저수지가 뒷문 밖으로 펼쳐져 있다.

[삶] 대문에 다다르자 조카 인재와 딸내미(?) 큰별이가 마중을 한다. 그녀와 함께 사는 식구들이다.

2년 전부터 남동생의 딸을 맡아 기르고 있다. 싱글인 그녀가 11살 조카를 키우는 것에 대해 그녀는 '다 늙은 원숭이 한 마리가 이제 막 반항기에 돌입한 멍멍이 한 마리와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같이 식사를 해보니 그 말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블로그에 써놓은 조카 육아일기를 보면 웬만한 엄마를 능가하는 뒷바라지를 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조카에 대한 연민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성장하길 바라는 고모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때론 까칠한 척 하지만 조카 역시 고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쉽게 느끼게 하는 순수한 아이였다.

딸내미 큰별이는 견공(犬公)이다. 레브라도 리트리버종의 5살 된 암컷이다. 맹인안내견으로 길러졌는데 발작 때문에 지금은 평범한 반려동물이 됐다. 큰별이와 인연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빛이 좀 전과 달리 반짝거렸다. 32시간 동안 36번 발작을 일으키며 사선을 넘나들던 큰별이가 기적적으로 소생했을 때, 솔로인 그녀에게 딸이 생겼다. 털이 사정없이 날리는.

왜 혼자 사느냐는 우문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현답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가 사는 방법을 둘러보면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두 딸과 아웅다웅 밀고 당기면서 짬짬이 군침 도는 요리와 맛있는 글을 쓰면서 지내는 삶이 나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글·책] 그녀의 글은 요리보다 맛있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이 학교 대표로 독후감을 써내라는 말을 잘못 듣고 반장도 아닌 그녀가 원고지 뭉치를 내밀었을 때, 난감해 하던 선생님의 표정. 결과적으로 반장은 떨어지고 그녀가 대상을 수상을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꾸준히 그리고 왕성하게 자신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번 책은 싸이월드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그녀의 일상을 눈여겨본 출판기획자의 적극적인 권유에 의한 것이다. 그녀가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큰별이에 관한 책 <사랑해 큰별아>를 지난 2004년 말에 선보인 바 있다.

그녀는 지금 세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감춰뒀던 이야기 보따리가 한꺼번에 풀어진 탓에 한해에 두 권이라는 다작을 하게 됐다. 이번 책은 친구를 주제로 우화 형식의 글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그녀의 진정한 글쓰기 내공을 가늠하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지난주부터는 <동아일보> 생활면에 매주 금요일 '골드미스 다이어리'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요리보다 글 솜씨가 더 좋다는 의미다. 요리가로 이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녀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 라자니아
ⓒ 황명화
[요리] 그녀에게 있어 요리는 한마디로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솔로독립만세'를 외친 지 4년 만인 20대 후반에 치른 집들이 때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행복했다고 한다. 남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 그녀가 요리를 즐기는 힘의 원천이다.

이날 준비한 요리는 라자니아. 17인치 모니터만한 접시에 두께 10센티미터짜리 빅 사이즈다. 열댓 명이 달라붙어도 너끈한 양처럼 보이는데, 그녀는 8등분을 한다. 손이 큰 탓이다. 두 접시를 먹고는 '만세'를 불렀다. 저녁도 먹지 못할 정도로 배를 채웠다.

요리는 접시에 담겨서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을 나누면서 주고받는 사는 이야기까지 요리가 지닌 가치이다. 요리가 주는 맛도 맛이지만 인생의 감칠맛을 무엇이 감히 능가하랴.

멀리 신갈저수지 물빛이 조금씩 변해갈 무렵 맛있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 정리가 덜 된 상태라 집주인도 기자도 서로 미안했다. 들고 갈 것이 마땅찮아 미술사 관련 서적을 한 권 선물했다. 싱글인 그녀와 두 딸의 열렬히 배웅을 받으며 한일마을을 빠져나왔다.

위풍당당한 그녀의 맛있는 하루 <솔로 쿠킹 다이어리>

▲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212쪽, 1만원
ⓒ매경출판(주)
요리에세이라는 색다른 장르의 책이다. 싱글 생활 15년의 베테랑 솔로가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이야기에 걸맞은 요리 한가지씩을 소개하고 있다.

싱글들을 슬프게 하는 것, 그것은 몸이 아플 때다.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심지어 죽마저 혼자 끓여 먹어야 할 때, 그녀는 단호박 수프와 브로콜리 수프를 권한다. 책은 이런 식으로 35가지의 에피소드와 요리를 소개한다.

그녀가 풀어놓는 에피소드는 그러나 결코 그리 가볍지 않다. 친구 없이 영화 <친구>를 본 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던 소금구이집 아줌마와의 살가운 인연 등을 읽을 때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글과 음식을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재주가 있는 작가다. 글쟁이로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보람이자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산다고.

시티즌 빈스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영림카디널(2007)


태그:#황명화, #솔로쿠킹, #다이어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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