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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 검찰 깃발.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결국 검찰이 제보자에게 놀아난 것인가? 정말 헷갈린다.

검찰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제이유사건 '거짓진술 강요' 파문과 관련해 <세계일보>의 오늘(9일)자 기사 '수사 녹취 나흘 전 이재순 전 비서관 연루 강력 제기-제이유 전 간부 미스터리 행보'(송민섭 기자)는 또 하나의 의문표를 덧붙인다.

검찰이 강요했던 것이 '거짓진술'이 아니라, '진실'이었단 말인가?

기사 골격만 따라가 보자. 서울동부지 백모 검사의 거짓진술 강요 신문 내용을 녹음한 제이유그룹 김영호(40) 전 상품개발담당 이사는 문제의 녹음 4일 전 이뤄진 신문에서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제이유 학습지 납품업자 강정화(김영호씨의 녹취록 일부를 언론에 공개한 주인공)씨의 유착의혹을 수사 초기 검찰에 제보했다고 시인했다.

검찰 진술조서 내용을 들여다보자.

거짓진술은 진실이었나

백모 검사 "제이유 수사 초기 단계에서 학습지의 제이유 납품 건과 관련해 강씨가 피의자에게 '모부장(이재순 전 비서관)이 어려워 도와줘야 한다. 내가 먹는 게 아니라, 모 부장 몫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고 검찰에 제보했느냐?"

김영호 전 이사 "그와 같은 내용으로 제보한 사실은 있지만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2004년 7월쯤 학습지 제이유 납품과 관련해 여러 차례 만남이 진행되던 도중 강씨가 저에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모 검사를 돕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검사 "강씨로부터 모 검사가 관련돼 있다는 말을 듣고 주 회장과 정모 대표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느냐?"

김영호 전 이사 "회사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라 제가 직접 가서 학습지와 관련해 모 검사가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돼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더니 주 회장이 알았다고 하며 잘 진행하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세계일보>는 이같은 진술은 "강씨가 이 전 비서관을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주 회장이 강씨의 권유로 이 전 비서관이 제이유그룹과 연결돼 있음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진술"이라고 풀이했다. 검찰 관계자도 "김씨가 이 비서관과 강씨의 유착관계를 검찰에 처음으로 제보했다"고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김씨는 나흘 뒤 이런 진술을 번복한다. "백 검사가 '거짓진술'을 강요하자 이를 MP3로 녹음"해 이번에 공개했다.

무엇이 진실인가? 김씨는 왜 다음 검찰 신문에서는 진술을 번복하고, '거짓진술을 하라는 말이냐'고 되묻기까지 하면서 이를 녹음했을까?

제보해놓고 '진술강요' 주장한 까닭

<세계일보>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하나는 제이유피해자모임비상대책위 관계자의 말이다.

"김씨가 처음에 강씨와 이 전 비서관의 연루설을 제보한 뒤 조사 과정에서 말을 바꾸는 바람에 검찰이 애를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 김씨는 처음에 주 회장과 앙숙관계였다가 면회를 몇 번 갔다 온 뒤 측근으로 돌아서 구속집행정지 탄원서를 주도하고 있다."

검찰이 결국 제보자인 김씨에게 놀아났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해석은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이 비서관과 강씨의 유착관계를 제보했지만 자신에 대한 비리수사가 진행되자 검찰이 자신의 공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주변에 호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의 해석이 맞는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검찰이 김씨의 진술에 놀아났을 뿐만 아니라, '거짓진술'(혹은 진실에 가까운 진술)을 강요했다가 완전히 덫에 걸린 꼴이다. 어디 검찰 뿐일까?

<경향신문>은 엊그제(2월 7일) 4개월이 지나 뒤늦게 왜 지금 공개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의 선고공판을 1주일 앞둔 시점이다. 검찰은 그 공개 배경이 불순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제이유그룹의 다른 관계자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조사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검찰 조서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재판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혐의사실은 물론 주수도 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해석일 수 있다.

시험대 위에 선 검찰과 언론

그렇다면 놀아나는 것은 비단 검찰 뿐만이 아니다. 그 실체적 진실의 전모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면 재판부 또한 그 누군가의 플레이에서 놀아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언론 또한 김씨가 공개한 녹취록 보도를 통해 '조역'의 역할을 단단히 한 셈이다.

게다가 <세계일보>의 기사 또한 검찰의 '신문조서'에 의존한 보도이다. 필경 검찰에서 나온 자료이기 십상이다. 김씨나 강씨의 변호인을 통해 구했을 수도 있겠지만, 피의자들에게 불리한 조서 내용을 변호인이 외부에 유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검찰의 '반격성 폭로'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어찌됐든 검찰, 언론, 법원, 이 모두가 결국 누군가에 놀아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먹고 먹히는 이전투구의 한 복판에서 언론 또한 어떤 장단인지도 모르고 춤을 추고 있는지 모른다.

검찰은 과연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나머지 녹취록의 내용을 비롯해 아리송한 '거짓진술강요' 사건의 진상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검찰 수뇌부의 옷까지 벗길지 모를 그 파괴력이 두려워 아예 덮어두고 말 것인가? 아니면 또 삼성 X파일 녹취록 사건(국정원 도청 테이프 사건) 때처럼 독수독과론을 내세워 수거는 하되 저 깊은 곳에 묻어둘 것인가? 아니면, 백 검사 등 일부를 징계하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할 것인가?

검찰의 실력과 의지가 시험대에 섰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백병규의 미이더워치, #조간신문 리뷰, #제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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