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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고, 그 뒤 6개월 동안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박상기 기자는 <시사저널> 편집장을 지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 8월 31일 오전 10시 26분]

 

 

심상기 회장님.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심 회장께서 <시사저널>을 인수하기 직전까지 편집장을 맡고 있던 박상기입니다.

 

성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제 이름도 '상기'입니다. 상기라는 이름이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제 아는 사람 가운데, 강상기 시인이 있고, 천상기 선배 언론인이 있고, 박상기 변호사가 있습니다. 게다가 심상기 독립신문 대표이사 회장까지 알고 있으니, 웬 '상기'들이 시인, 기자, 변호사, 언론사 회장 등으로 대한민국 언로(言路)를 말아먹고 있냐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습니다. '상기' 가운데는 무반(武班)도 있겠지만, 제가 아는 상기들은 다 문반(文班) 소속이군요.

 

본론을 말씀드리면,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1월, 심 회장께서 <시사저널>을 인수했고, 저는 그해 연말에 사표를 쓰고 나왔지요(당시는 회장이 아니라 사장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표를 내러 사장실에 들러서 당신과 이런 대화를 나눴지요.

 

"<시사저널> 간판 잘 지키고 있어. 나중에 인수하러 올 테니까"

 

"어디 정해놓은 데라도 있는가요?"

"없습니다."

"그럼, 당장 취직자리 얻기도 쉽지 않을 텐데, 여기서 좀더 일하지 않고…."

"지쳤습니다. 좀 쉬면서 뭘 할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심 회장이 1936년생이고 내가 1951년생이니, 무려 15년이나 연차가 있죠. 그런데 심상기는 <삼국지>의 황충 장군처럼 노익장을 과시해 <시사저널>을 인수하고 새 포부를 펼치는데 비해, 새까만 후배인 박상기는 병든 소처럼 시르죽어서 벌러덩 나자빠지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더불어 '상기'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아깝다고 탄식하지는 않았는지요.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대학도 동문이니까 인연을 따진다면 제법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후배 기자들이 차려준 송별회 자리에서 나는 쉽게 지키기 어려운 언약을 했습니다.

 

"너희들 말이야. <시사저널> 간판 잘 지키고 있어. 내가 나중에 이걸 다시 인수하러 올 테니까."

 

그런데 흰소리 삼아서 한 말이라 귀 담아 듣는 후배도 별로 없더군요. 겨우 강북에 아파트 한 채 가진 게 전 재산인 백면서생 주제에 감히 몇 십억 원 현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속으로 비웃적거리는 후배도 있었을 겁니다. <시사저널>은 엄연히 사업체이니까 이를 인수하려면 그만한 돈이 있어야겠지요. 언론 사업체를 인품이나 교양이 뛰어난 분에게 거저 넘겨주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빠른 시일 내에 모개돈을 벌려면 역시 벤처,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 쪽이라고 판단했지요. 장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시나리오 만들고, 캐릭터 개발하고, 해외자본 유치해서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가 <포켓몬스터> 한 편으로 수천억 원을 벌어들이는 걸 보고, 눈이 번쩍했다고 할까요. 죽을둥 살둥하면서 만들어가고 있어 아마 올 여름이면 작품을 선보일 겁니다. 미국 1000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하는 걸로 미국 회사와 배급계약까지 마쳤으니까요.

 

왜 별 관련도 없는 애니메이션 얘기를 늘어놓느냐구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해 돈벼락을 맞으면, 8년 전에 씨부렁거린 대로 <시사저널>을 인수할까 합니다. 심 회장께서 안 팔겠다면 할 수 없지요. 또 "요즘은 기자들 파업이다, 뭐다 해서 골치가 아픈 판이라 다른 데로 넘기기로 작정했다"면 그것도 할 수 없는 거지요. 지금은 내가 그만한 돈이 없으니까. 외상으로 주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자연스레 떠올린 '삼성-J일보-심상기'라는 연결고리

 

지난주에 나온 <시사저널>의 짝퉁인지 패러디인지 어정쩡한 899호를 보니 부쩍 그런 의심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J일보의 기자들과 퇴직 기자들이 대거 기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 곧 J일보에 넘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파업의 발단이 된 기사삭제의 대상도 삼성그룹이라서 자연스레 '삼성-J일보-심상기'라는 연결고리를 떠올린 것입니다. 아마 J일보에서 인수한다고 해도 "시자저널 기자는 선별 인수하겠다. 전원 고용승계는 없다"는 조건을 달겠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니까 심 회장께서 '택도 없는 소리'라면 제가 잘못 건너짚은 것이겠지요.

 

그럼 '자네는 왜 <시사저널>에 집착하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돈 벌면 다른 할 일이 많고, 언론사업이라면 다른 매체도 있고, 또 신매체를 창간해도 되지 않는가"라고요. 지금의 짝퉁 <시사저널>을 보고 어떤 사람은 자기 청춘을 바쳤던 잡지라서 눈물이 난다고 하고, 어떤 독자는 '짝퉁'으로 속였으니 보상하라고 욕하더군요.

 

저는 성격이 느긋하고 호방한 편이라서 웬만한 잡사에는 잘 끼어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게 아닙니다. 진즉 떠나간 선배로서 파업하는 후배들에게 소주라도 한잔 사주고 싶어서 찾아갔다가 '짝퉁'인지 뭔지를 보니까, <시사저널> 인수라는 내 꿈이 박살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뭡니까, 심 회장! 심 회장, 이게 <시사저널>입니까!

 

후배 기자들과 헤어져 마포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려니, 옆에 짝퉁 제작진 누구라도 있으면 골통을 바숴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내 나이 오십대 중반이지만, 아직 주먹은 쓸 만합니다.

 

 

그러다가 술 취한 머리 속에 갑자기 서울지검 정문입구의 포토라인에 섰던 날, 내 생애 가장 치욕적인 1996년 11월26일 아침 10시가 떠올랐습니다. 수십 대의 카메라 후레쉬를 받으면서 서있던 십여초 동안 이를 사려 물었습니다. 이 치욕은 반드시 갚는다고! 현직 대통령,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3명이 연명으로 해당 기자와 편집장이던 나, 그리고 김훈 국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한 희대의 사건이었지요.

 

우리 언론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언론을 고소고발한 첫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소 단계에서 김훈 국장은 빠지고, 나와 해당 기자가 일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청와대, 북한에 밀가루 5천 톤 제공'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는데, 결국 청와대에서 소를 취하했습니다. 정권 말기에 더 이상 겁주기도 힘들었겠지요. 청와대의 주장대로 그 기사가 허위였는지, 아닌지 법정공방으로 가려내고 싶었으나 <시사저널> 회사 사정상 쌍방간에 합의 취하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 졸였던 33개월에 대한 가슴 아림이 늘 저를 못 견디게 합니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녹록합니까. 게다가 국가 최고통치권자의 역린을 건드린 사건이니까 오죽 항복을 받고 싶었겠습니까. 사건이 터진 뒤부터 일년 동안 내 뒤에는 항상 노련한 미행자가 붙고, 집은 감시망에 둘러싸이고, 법정에는 안기부원들이 진을 치고, 어디서나 내 치부를 캐내려는 촉수들이 잡혔으니까요.

 

한번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미행 형사를 붙잡아 작신 두들겨 패기도 했지요. 당시 여고생이던 내 딸은 이렇게 부당하게 관재수로 시달리는 아빠를 보고, 사법정의를 생각했던지 법대에 진학해서 지난해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딸의 진로까지 결정해준 고소인들과 수사기관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아무튼 그 사건으로 진을 빼고 나자마자 심 회장이 잘 아시다시피 시사저널사가 부도가 났지 않았습니까. 방만한 경영진이 계열회사의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시사저널은 흑자부도를 맞게 되었지요. 사주는 해외로 도피하고, 채권단에게 목줄이 잡혀서 월급도 없이 2년간 행려 언론인의 꼭지딴 노릇을 했지요. 김훈 국장은 부도나기 전에 벌써 그만 두었고,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무급인생'을 청산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 갔습니다.

 

월급을 못주는 판에 신입기자를 뽑겠습니까, 경력기자를 보충하겠습니까. 어떤 기자는 생활고 때문에 새벽에 자기 아내와 함께 신문배달을 하고 출근했더군요. 그 기자의 핼쓱한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난파선의 선장이랄까, 편집국의 수장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으니 내박치지도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었지요. 나 혼자 살자고 그 판에서 도망치기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나서 심 회장께서 <시사저널>을 인수하기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내 33개월의 편집장 노릇은 옴 붙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기자들, 데스크들도 애를 썼지요. 당연히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놈의 편집장이란 타이틀 때문에 썩은 속은 얼마이며, 억누른 분노는 얼마이겠습니까.

 

회사가 부도나고 오너가 도피하여 개판이 되니까 전 직원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부서별로 걸핏하면 서로 으르렁대고, 참 목불인견이더군요. 그나마 <시사저널> 편집국이 중심을 잡아서 한 호도 결호를 내지 않고 기적 같이 2년을 버티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절대로 제 공치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왜 제가 <시사저널>을 못 잊는가, 왜 돈을 벌어서 <시사저널>을 인수하려고 하는가를 말하느라 지난 참상을 밝힐 뿐입니다. <시사저널> 창간 시점에 가장 먼저 들어간 취재파트 경력기자 1호가 저였습니다. 제가 <시사저널>을 인수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애정 때문만이 아닙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너무나 가슴 졸였던 33개월에 대한 가슴 아림이 늘 저를 못 견디게 합니다.

 

저는 1984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소설을 잘 쓸 자신이 있고 의욕도 있습니다. 그런데, 소설 써 가지고는 입에 풀칠은 하겠지만, <시사저널> 인수는 어림 반 푼도 없어 팔자에 없는 돈벌이 사업에 나서 지난 세월 악전고투를 해온 것입니다.

 

심 회장, 제게 조금 더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때까지 <시사저널>을 올곧게 지켜주십시오. 짝퉁 <시사저널>은 '나쁜 시사저널'입니다. 충분한 돈을 만들었다고 생각될 때 회장님을 찾아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상기 기자는 시사저널 편집장을 지낸 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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