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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3월 21일 동아일보 수요프리즘에 실린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의약분업 전사들' 어디에 갔나>에 대한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의 반론 글입니다...편집자)

송호근 교수가 동아일보 '의약분업 전사들 어디 갔나'라는 글을 쓰고 있었을 시간, 한 시민단체의 강당에서는 일련의 개혁적 작업들을 통해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건전한 질서와 보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바로 그 '전사들',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국농민회, 건강연대, 참여연대, 경실련, 서울 YMCA 등 15개 시민, 노동, 농민단체들은 <부당한 보험료 인상반대와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노동, 농민, 시민단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이들은 결코 침묵해 본 적이 없다.

송교수는 그 '전사들'을 바로 눈앞에 두고 '어디 갔나?'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눈은 지금 무언가에 가려져 있는 듯하다.

이번 건강보험재정파탄은 정부의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과, 내부 조정기전의 취약성에 명백히 기인한다. 송교수 역시 다소 모호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위기를 보험급여(아마 수가를 잘못 쓴 듯), 늘어난 환자, 오리지널 약의 시장지배로 들고 있는데, 이는 모두 정책결정자와 의료공급자의 문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탓을 시민, 노동자 농민들에게 묻고 있다. 이는 논리적 모순일 뿐만 아니라 시민, 노동자, 농민들에 대한 중대한 위해이자 모독이다.

또한 송교수의 글은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부족한 듯 보인다. 특히 몇 가지 중요한 단어나 개념에서도 혼돈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발언의 상당 부문이 사실이 아닌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사실과 다른 것은 시민, 사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수가의 인상에 따른 재정파탄을 강력히 경고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15차에 걸친 건강보험공단 재정위원회의 동안 시민, 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원가계산방식의 오류를 지적하고, 재정안정화대책의 수립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더욱이 수가의 동결을 결의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철저히 이를 무시하여 작년 7월1일 이후 3차례에 걸쳐 근거가 불분명한 수가인상을 감행했으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송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이들 시민, 노동, 농민단체들이 일관되게 지적해 오고 있는 것은 특정집단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낭비와 오용을 부추기는 '구조'의 문제였다. 이번 의료사태와 무관하게 이들 시민, 노동, 농민단체의 요구는 언제나 변함 없이 구조적 모순의 극복에 있어왔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건강보험재정 문제가 여러 이해집단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특히 국민들과 의약계 종사자들은 이러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에 이용당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일부 정치인들과 보수언론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은 '의약분업'도 '재정파탄'도 아니다. 그것은 특정 정권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이며, '재정파탄'은 단지 그 정치적 이용수단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연일 일간지 머릿기사를 '건강보험재정파탄 = 정책실패'로 장식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여전히 의료기관의 오남용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의약사를 곳간의 곡식을 축내는 장본인으로 그려내고 있는 3월16일자 모일간지의 만평그림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한 예이다.

에머슨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식은 그가 관계맺고 있는 것들에 의해 결정된다. 특정 이해집단의 정서에 근거하여 사실의 확인 없이 그 말을 그대로 옮기고(송교수는 지난 해 8월30일자 동아일보 수요칼럼에서도 대체조제와 관련하여 사실이 아닌 내용에 대하여 특정집단의 의견을 여과 없이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항의를 받은 바 있다), 더욱이 상당부문 사실이 아닌 것에 기초한 글은 애초에 과학적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많은 경우 대단히 위험하다. 이것이 송교수의 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이다.

송교수 말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여러 이해집단간의 갈등의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니라 차갑고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철저히 국민의 이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의 기전을 만들고, 정교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서로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의 이해와 전문가의 전문성이 모두 존중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제 송교수는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그 가리개를 벗길 바란다. 그러면 바로 눈 앞에 결연히 서 있는 분노한 시민, 노동자와 농민들, 바로 그 '전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3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송호근 교수의 글 <'의약분업 전사들' 어디갔나>의 전문이다.

덧붙이는 글 | 어제 의과대 특강을 마치고 나오면서 내 마음은 착잡했다.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미래의 의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의보재정의 고갈과 의료체계의 총체적 파탄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가, 의약분업의 조기실행을 주장했던 그대들은? 의사의 직업적 정체성을 막무가내로 죽이고 도덕적 명분으로 날카롭게 간 정의의 칼을 마구 휘둘러댔던 그대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안심시켰던 그대들, 의약계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모든 죄를 전문가집단에 전가했던 시민단체들, 그대들은 지금 의보재정이 거덜나 한국 의료계가 총체적 파탄에 직면한 이 때 왜 침묵하고 있는가?

환자증가―고가약 예측 실패

의재(醫災) 약재(藥災) 재정고갈의 3재가 결국 국민건강을 결딴낼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의약분업의 정당성을 훼손한다고 으름장을 놓던 그 패기만만하던 관료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그래도 의보재정 위기 앞에서 의사와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만 탓할 텐가? 의사와 약사들의 부정과 비리를 감독하면 의보재정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강변할 텐가? 마치 이교도들을 징벌하러 떠나는 십자군처럼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으며 진군했던 ‘분업동맹’은 지금 왜 침묵하는가?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대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사안이 너무 시급하기에 지혜를 모으자. 의보재정 위기의 원인은 의약분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가 남발한 보험급여 인상, 늘어난 환자, 복제약의 퇴장과 오리지널 약의 시장 지배 등 세 가지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재정 위기의 삼총사다. 의사에게 지급되는 보험급여의 폭증만으로 이 정도의 재정위기가 오지는 않는다.

더 큰 원인은 환자의 증가와 고가약의 시장지배에 있다. 문제의 근원은 이 두 가지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정책입안자, 의료지식인, 시민단체들은 물론 의사들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국민건강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정책을 기획하면서 의료기관 이용횟수의 폭증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기왕이면 안전하고 효과가 탁월한 약을 일사불란하게 처방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치 못한 실수의 대가를 국민 모두가 치르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의사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매몰돼 재정 정상화라는 의약분업의 최대 목적을 잊었던 것,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실수였다. 90년대에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연금개혁과 의료개혁으로 골머리를 앓은 이유가 바로 재정위기의 조기 해결에 있었다는 평범한 상식을 유독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자신들의 구호에 도취돼 망각한 대가다.

나는 사실 그들에게 매년 4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책임지라고 외치고 싶지만 마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국민 모두의 책임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연대보증을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제에서 우선 단기적인 처방은 금물이다. 다급해진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방안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므로 제발 조용히 있어 주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찬찬히 따져보기 바란다. 의약분업은 한국 의료 현실의 모든 모순을 짐지고 있는 작은 징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주기 바란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다.

<성급한 응급처방은 금물>

정치권은 서둘러 이 사태를 진화하려고 허둥대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넉넉잡고 2년 동안 정부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금융구조조정에 150조원을 투입하고, 영재학교 신설에 10조원을 투입할 의향이 있는 정부가 국민건강을 수호하는 데 매년 3조원을 투입하기를 꺼린다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차등수가제, 의사와 약사들에 대한 감시 강화, 병원 문턱 높이기 등의 임기응변으로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더욱이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해서도 안 된다. 작년 한 해 동안 2∼3배의 의료비 부담을 국민에게 지우고도 다시 의료비 인상을 기획한다면 정부는 이제 국민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의료현장을 지키는 전문가들에게 방법을 구해 보라. 그들이 재정위기를 스스로 막겠다고 의로운 전사로 나설 때, 다시 말해 그들의 자율적, 도덕적 양심에 호소할 때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 ‘서툰 개혁이 남긴 상처’가 너무나 깊다는 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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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정책을 전공했고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부교수입니다.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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