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사실 영웅을 만드는 것은 '우연'이다. 23일 방영된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에서 안내상이 '국민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몇 가지의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다.

 

첫 번째 우연은 빚쟁이들 때문에 늘 변장을 하고 외출을 해야만 하는 안내상을 위해 강승윤이 스파이더맨 의상을 사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 우연은 안내상이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편의점 강도를 제압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강도가 꺼낸 가스총이 안내상의 손으로 날아들는 기막힌 우연이 없었더라면, 이날 '영웅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었다.

 

빚쟁이에 쫓기는 안내상, 잠시 '영웅'이 되었지만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한 안내상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고 마치 진짜 영웅이 된 듯 행동하는 안내상

▲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한 안내상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고 마치 진짜 영웅이 된 듯 행동하는 안내상 ⓒ MBC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영웅의 탄생은 이렇게 몇 가지의 우연이라는 설정을 통해 이뤄졌고, 채무자 안내상은 잠깐이었지만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을 부여잡으며 "이제 아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외치던 모습에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자신감과 당당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김병욱 PD 특유의 냉소주의는 이 영웅을 오래 놓아두지 않았다. 스파이더맨이 사실은 영웅이 아닌 한낱 숨어지내는 채무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까발린 것이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스파이더맨에게 더 이상의 우연은 찾아오지 않았다.

 

빚쟁이들 손에 의해 스파이더맨의 가면이 벗겨졌고, 다음 화면에서 카메라는 경찰차와 함께 스파이더맨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비추었다. 영웅이 몰락한 것이다. 

 

사실,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됐건 극 중 안내상은 법적으로 해결을 봐야만 하는 채무자다. 때문에 이번 회와 같은 에피소드가 필요하기는 했다. 언제까지 숨어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며, 40회를 넘긴 <하이킥>의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서라도 안내상의 빚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짓고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체포되는 안내상 23일 방송된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한 장면

▲ 경찰에게 체포되는 안내상 23일 방송된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한 장면 ⓒ MBC

 

그런데 하필 왜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몰락시켰는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 전 의원이라면 "한 걸음 더 나가보자"며 '음모론'을 제기할 테지만, 굳이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안내상을 싣고 떠나는 경찰차 안에서 울려퍼진 라디오 뉴스의 아나운서 멘트가 그 답을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멘트는 바로 "시내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했지만 스파이더맨은 나타나지 않았다"였다. 영웅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영웅은 없었던 것이다.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대중이 그렇게 믿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중이 믿는 '영웅'이 대중에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아니, 애초부터 영웅은 그럴 능력이 없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마치 채무자 안내상이 스스로를 영웅이라 착각했듯 말이다.

 

불과 몇 년 전, 팍팍한 경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 명의 영웅을 만들었다. (그 과정속에서도 몇 가지의 우연은 존재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경제영웅'은 없었다. 우연이겠지만, 이날 <하이킥>이 방영된 23일은 한미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22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개인블로그(이카루스의 추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11.24 10:27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개인블로그(이카루스의 추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이킥 안내상 스파이더맨 강승윤 이카루스의 TV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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