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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밤을 잊은 농부들'. 수업이 끝나고 단체 셀카를 찍고 있다.
 담양 '밤을 잊은 농부들'. 수업이 끝나고 단체 셀카를 찍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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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7일 모두가 잠든 달 밝은 봄날 밤, 유난히 한 곳이 시끌벅적하다. 남녀의 목소리가 골목으로 들려온다. 자동차도 여러 대 세워져 있다. 실내 불빛은 철저하게 차단돼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출입문을 빼꼼 열고 보니, 실내 불빛이 환하다.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뭔가를 하고 있다. 한쪽에 '담양 밤을 잊은 농부들 온라인 마케팅 스터디'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현장임을 직감한다. 공부 과목은 소셜미디어 마케팅이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비건체험 학습장이다. 학습장은 사찰음식을 하는 정보스님이 운영하고 있다. 정보스님도 '밤을 잊은 농부(밤농)'의 한 사람이다. 스님은 '밤농'을 위한 저녁식사도 준비했다. 깻잎, 보라색양배추, 비트, 콩잎, 삼채, 매실, 도라지, 청양고추 장아찌가 들어간 김밥이었다.
  
사찰음식을 하는 정보스님이 ‘밤농’을 위해 준비한 김밥. 갖가지 야채와 장아찌가 들어갔다.
 사찰음식을 하는 정보스님이 ‘밤농’을 위해 준비한 김밥. 갖가지 야채와 장아찌가 들어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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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농'의 일원으로 참가한 정보스님. 체험학습장을 공부방으로 내어주고 장아찌김밥도 준비했다.
 '밤농'의 일원으로 참가한 정보스님. 체험학습장을 공부방으로 내어주고 장아찌김밥도 준비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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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를 구하고 안에 들어갔다. 학습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담양에 살고 있는 농부들이었다. 고구마를 재배하는 사람, 장아찌를 담그는 사람, 동치미와 들기름을 만드는 사람, 발효식초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차를 덖는 사람, 찐빵과 유과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딸기재배 농부는 '일을 끝내자마자 왔다'며 자리에 앉았다. 참석자들은 60∼70대가 대부분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 없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이, 일상처럼 해야 해요."

'밤농'을 이끌고 있는 김용근 교수의 말이다. '밤을 잊은 농부들' 운영자인 김 교수는 루터대학교, 농촌융복합산업지원센터 등 각급 기관단체에서 온라인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다.

'밤농'은 비영리 민간단체인 1004재능기부단이 운영하고 있다. 단장을 김 교수가 맡고 있다. 벌써 10여 년 됐다. 모임은 담양 외에도 광주, 남원 등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밤농'의 한정식 회원. 두눈 부릅 뜨고 김용근 교수의 얘기를 듣고 있다.
 '밤농'의 한정식 회원. 두눈 부릅 뜨고 김용근 교수의 얘기를 듣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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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글씨가 잘 안 보여요. 눈이 빠지겠어요."
"빠져도 괜찮으니, 집중해서 한번 해 보세요."


한 농부의 애교 섞인 어린양에 대한 김 교수의 일침이다.

공부하는 분위기 자유롭고, 농담도 자주 오간다. 걸려 오는 휴대전화도 받지만, '밤농'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가끔 하품하면서도 두눈을 노트북 화면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김 교수가 휴대전화를 들고 시연을 할 때면 우르르∼ 몰려가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내가 생산한 농특산물을 내손으로 직접 잘 팔아보겠다는 의지가 배어있다.

 
 김용근 교수의 휴대폰 시연을 지켜보는 '밤농' 회원들.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김용근 교수의 휴대폰 시연을 지켜보는 '밤농' 회원들.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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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농'은 매달 세 번 모인다. 한 번은 김 교수가 와서 직접 가르치고, 한 번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 또 한 번은 농부들 자체 모임으로 진행된다. 블로그, 유튜브, 카페, 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점검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글을 작성하고 댓글이나 답글, 세련된 공감 표시법도 알려준다. 서로 알려주고 공유하며 배우기도 한다.

'밤농'은 사흘에 한 번 이상씩 블로그에 글을 써 올리고, 회원 카페에 공유해야 한다. 회원들은 서로 방문해 공감하고 댓글과 답글을 달아주며 협업한다. 소셜미디어 활용과 온라인 마케팅 실력이 날마다 나아지는 걸 실감한다. 서로 일취월장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한다.

"다음 시간에 올 땐, 농장 소개 글 꼭 적어 오세요. 농장의 위치, 체험 종류, 체험장 규모도요. 그걸 토대로 수업을 할 겁니다. 그거 안 쓰면 수업에 나오지 마세요. 어차피 나와서 앉아 있어도, 수업이 될 수 없으니까요. 바빴다는 핑계 통하지 않습니다. 아셨죠?"

김 교수의 다짐에 '밤농'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한다. 2시간 넘는 수업은 단체사진 촬영으로 마무리됐다. 사진을 찍는 얼굴에서 장난기와 즐거움, 뿌듯함이 고루 묻어난다. 
 
주경야독을 위해 모인 '담양밤농' 회원들. 김용근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주경야독을 위해 모인 '담양밤농' 회원들. 김용근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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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밤을잊은농부, #담양밤농, #정보스님, #김용근, #주경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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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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