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빠~ 나 맛살 하나만 주면 안 돼?"

모락모락 갓 지은 밥 내음에 햄, 계란, 어묵, 맛살 등을 기름에 살짝 구운 냄새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까지.

신랑은 다른 요리는 몰라도 김밥만큼은 꼭 자신이 만들곤 했는데, 이날도 주말 여행을 앞두고 김밥을 싸는 중이었다. 주방에서 갖가지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오자 나와 함께 놀고 있던 아들은 어느새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이럴 때만 나오는 애교를 한껏 장착한 채 청했지만, 아빠는 단호했다.

"안 돼~ 김밥 딱 열 줄 만들 만큼만 있단 말이야~. 김밥 만들어야 해~."

기대에 가득 차 있던 7살 아들은 금세 어깨가 축 처진 채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온건파가 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강경파 신랑에게 맞섰다.

"에이~. 김밥은 쌀 때 재료 쏙쏙 빼먹는 그 맛이지~~~! 만들면서 먹는 게 또 더 맛있잖아요~."

엄마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맛살 하나를 얻은 아들은 금세 배시시 웃으며 행복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맛있다~~~!!"

하지만 맛살은 입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는지, 이번에는 노오란 단무지에 또 눈독을 들였다. 어쩔 수 없이 맛살을 내줬던 신랑은 이번만큼은 김밥 재료를 사수하기 위해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다시금 한껏 시무룩한 표정이 된 아들은, 갑자기 코를 막았다. 왜 그러나 의아했더니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길 어떻게 지나가지? 냄새가 좋아서?"

김밥 재료가 가득 놓인 식탁을 지나치며 아들은 진심으로 코를 막은 채 종종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와 신랑은 그대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빠가 아들에게 또 한 번 백기를 들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신랑과 나 그리고 아들. 우리 세 가족에게 김밥은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양껏 가져다주는 음식이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김밥은 조금 특별한 음식이긴 했다.

연애 시절, 신랑이 싸온 '3단 도시락 김밥'

결혼 전 연애를 하며 서로에게 푹 빠져 있던 시절, 그 때도 신랑은 둘이 여행을 갈 때면 가끔씩 김밥을 싸오곤 했다. 무려 3단이나 되는 파란 색깔의 커다란 도시락통에 말이다.

봉화로 기차 여행을 떠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신랑은 나 몰래 서프라이즈 김밥을 싸왔고, 이걸 본 나는 신랑의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신랑은 정확히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내내 꾸벅 꾸벅 졸았다. 아마도 이 모습을 만약 어머님께서 보셨다면 그러셨겠지?

'이 짜슥은 실~컷 키워놨더니 잠도 안 자고 지 여자친구 줄 김밥을 싸? 지 엄마한테나 그렇게 좀 해보지!' (사실은 내가 미래의 내 아들에게 하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헤드뱅잉 하던 신랑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 우리 둘은 차창 밖으로 쓱쓱 지나쳐가는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김밥을 먹었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돗자리를 깔고 김밥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먹어도 김밥은 맛있었다. 
 
신랑이 손수 싼 김밥
 신랑이 손수 싼 김밥
ⓒ 배은설

관련사진보기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신랑이 나를 그만큼 사랑해서 손수 김밥을 싸주는 줄 았았다. 그런데 결혼한 뒤 언젠가 무심코 하는 이야기가, 김밥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라나 뭐라나.

엄마의 작고 귀여운 김밥

신랑도 그렇지만 나 역시도 김밥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아마도 어린 시절 엄마가 싸준 김밥이 맛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는 사실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몇몇 요리만큼은 지금도 사무치게 그리울 만큼 맛있게 만드셨다. 오므라이스, 고등어조림이 그랬다. 또 김밥이 그랬다.

엄마의 김밥은 일단 크기가 작고 오밀조밀 귀여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어린 자식들이 맛있다고 급하게 마구 먹다가 체하기 쉬운 음식이 김밥이라서 그렇게 만드셨던 게 아닐까 싶다.

훗날 커서 직접 김밥을 만들어보고서야 알았는데,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 김밥을 작게 만든다는 건, 재료들도 그만큼 작게 손질해야 하는 거라 손이 더 많이 가는 거였다. 그만큼 정성이 더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김밥이 맛있지 않을 리 없었다.

특히나 김밥은 보통 운동회날이거나 어딘가로 놀러갈 때 먹는 음식인 덕분에 설렘을 동반하는 음식이다. 한 입에 쏙쏙 들어가는 그때 그 시절의 엄마 김밥은, 이제는 다시는 먹을 수 없어서 더 그리운 음식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 들어버린 내가 엄마의 작은 김밥을 떠올리듯, 나의 아들은 언젠가 아빠 김밥을 떠올리겠지. 내 인생에 김밥 같은 음식을 한 두 개쯤 마음 속에 담고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점점 더 따뜻해지는 요즘, 어딜 가도 좋을 5월이다. 그럼 또 봄소풍을 떠나야지. 색색깔 곱고 맛도 좋은 그것을 들고서.

태그:#5월, #소풍, #김밥, #인생음식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