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 인간문화재가 된다. 하지만 코미디언들은 40년을 해도 인정을 못 받는다. 그저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는 거다. 오래 활동해도 인기가 떨어지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아쉽다. 웃기는 게 참 어렵다. 그래도 자꾸 하다보면 뭔가 보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다보면 반드시 좋은 작품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저를 지금까지 있게 한 사람은 이경규(본인)다. 저는 이경규한테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 그 인간(?)을 믿고 지금까지 활동했고 많이 도와줬다. 지금도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이경규가 있기에 믿고 계속 달려가겠다."
 
예능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코미디의 대부' 이경규의 해학과 통찰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3월 27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방송인 이경규가 출연하여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전했다.
 
유재석은 "항상 이경규 형님의 존재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큰 의지가 된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경규는 "유재석이 항상 '형님이 있어야 자기가 있다'고 종종 문자를 보낸다"는 훈훈한 사실을 전하는 듯하다가 "그니까 자기 위주다. 형님이 오래오래 계셔야 된다고만 했으면 진정성이 있었을 텐데, 자기를 꼭 붙인다"고 지적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경규는 특별한 이슈가 없음에도 출연한 이유에 대하여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의 계획 등을 시청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예능의 미래는 다큐가 될 것" 등의 어록을 통하여 방송환경과 트렌드의 변화를 예측했던 이경규는 남다른 통찰력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경규는 <유퀴즈>가 자신이 출연했던 <한끼줍쇼>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짝퉁'이라고 주장했다. 결이 다르다며 반발하는 유재석과 조세호에게 이경규는 한술 더 떠 "<유퀴즈>는 하늘이 점지해준 프로다. 코로나 때문에 실내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벌써 망했을 것"이라고 칭찬을 가장한 악담을 날리며 웃음을 자아냈다.
 
예능인 이경규의 자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이경규는 예능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직접 영화사를 만들고 <이소룡들> <리틀비버> 등의 해외 작품들을 수입하기도 했다. 현재는 약 2년 뒤에 개봉할 예정으로 신작을 준비중이라는 이경규는 "이번에 만드는 영화는 제 모든 게 걸려 있다. 영화가 잘되면 다음번에는 영화 감독을 할 것이다. 하지만 잘 안 되면 영화사를 엎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며 배수의 진을 선언했다.
 
어려서부터 이경규는 집 근처에 있던 극장을 다니며 액션스타 이소룡의 작품들에 유독 매료되었다는 한다. 이경규는 학창시절 용의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자룡'이라는 닉네임까지 스스로 지어서 가방에 적어놓고 다녔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경규는 흔히 호통과 독설의 원조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예리한 방송감각과 판단력, 완급조절이 뒷받침되었기에 다른 예능인들에 비하여 비호감이나 설화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코미디언 후배들이나 같이 방송에 출연한 출연자들에게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날린 일화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출연했던 <붕어빵>에서도 아이들이 종종 방송에 집중하지 못하면 "다음주가 개편"이라는 짧고 굵은 한 마디로 금세 분위기를 정리했다고.
 
이경규는 자신만의 독설 캐릭터를 만드는 레시피에 대하여 "아무나 나처럼 할 수 없다. 일단 뻔뻔스러워야 한다. 그냥 헤까닥(미친 듯이)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안 된다"고 농담 속에서도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때 장시간 무한녹화가 예능의 트렌드였던 시기에도 이경규만의 빠르고 간결한 방송스타일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경규의 스타일이 다시 유행이 될 정도다. 이경규는 "내 시대가 온 것"이라고 정의하며 "너무 길게 녹화하는 것도 좋지 않다. 예전에 신규 프로그램을 첫 방송할 때는 60분짜리 방송을 61분 녹화하고 끝낸 적도 있다. PD도 출연자들도 불안해하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퇴근시켜 보냈다 "는 믿기 힘든 일화를 소개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 역시 이경규의 트레이드마크다. 한때 월드컵 방송 콘텐츠로 큰 성공을 거뒀던 이경규는 이번엔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현지 인터뷰를 시도하겠다는 목표를 위하여 60이 넘은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경규는 농반진반으로 "마지막 도전이다. 만일 영어를 포기하게 되면 이 프로그램에 다시 나와서 이야기하겠다. 그만큼 모든 걸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선언했다.
 
4년마다 월드컵을 다녀왔던 이경규는 지난 카타르월드컵은 유튜브를 통하여 방문했다. 이경규는 "이번엔 <유퀴즈>와 함께 가고 싶다. 한 번만 도와줘라"고 유재석의 손을 붙잡으며 능청스레 호소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유재석 "코미디와 예능의 길 개척한 교과서같은 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이경규는 40년이 넘는 방송경력 동안 콩트, 토크쇼, 버라이어티, 스포츠, 낚시, 요리 등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가 없고, 지상파에서 케이블, 종편, 온라인을 넘나들며 플랫폼도 가리지 않았던 '예능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1990년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일밤> '이경규가 간다', '양심냉장고' 등에서는 재미와 교훈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공익예능의 열풍을 이끌었다. 2010년대 출연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원조 '눕방(누워서 방송하기)', 2020년대에는 직접 제작에 참여한 '갓경규' 등을 통하여 유튜브 진출까지 시도하며 미래지향적인 리얼 예능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유재석은 이경규를 보고 배웠다며 "코미디와 예능의 길을 개척해주신 교과서같은 분"이라고 정의했다. 이경규는 "제가 먼저 걸어가 후배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저의 꿈"이라는 철학을 남겼다.
 
한편으로 이경규는 최근 시도하고 있는 유튜브 활동에 대하여 "영혼을 갈아넣어야 한다"고 표현하며 "캐릭터 잡기가 쉽지 않다. 사람을 보면 인간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섭외가 먼저 생각난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할 때마다 가장 고민되는 것으로는 '조회수'를 꼽으며 "진정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조회수만 나오면 된다. 그만큼 너무 어렵다"고 고백했다.
 
이경규는 최근 달라진 방송환경에 대하여 SNS와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전 국민이 셀럽이 됐다. 모두가 방송을 만들고 진행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가 우리같은 방송인들에게는 위기가 왔다고 생각했다"며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했다.
 
44년 경력 동안 한 번도 별다른 구설수 없이 롱런한 비결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해서 산다. 술은 가급적인 집 근처에서만 먹는다. 과하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사고가 나니까, 비우기 연습도 한다"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공백기나 휴식기간 없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히 쉴 줄을 모른다. 그냥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거의 다 촬영차 간 것이다. 인생 자체가 방송 프로그램으로 살아온 것이다. 저같은 코미디언들은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라고 직업병을 털어놨다.
 
한편으로 이경규는 인간문화재처럼 전문가의 경력을 인정해주는 다른 분야에 비하여 방송인이나 코미디언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인기가 없어지면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경규는 "웃기는 게 그만큼 어렵다. 웃기려다 실패하면 얼마나 창피한데"라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믿음을 갖고 도전하다보면 또 좋은 작품도 하게 되지 않을까"라며 뼛속까지 방송쟁이다운 본능을 드러냈다.
 
이경규는 "살아오면서 이 시대가 제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공중전화시대부터 살았는데 지금은 디지털을 넘어 인공지능까지 등장했다"며 바뀐 시대를 적응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럼에도 60대 이경규는 여전히 현역으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이경규는"박수칠 때 떠나라고 이야기하는 건 정신나간 놈이다. 박수칠 때 왜 떠나나,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활동할 것"이라는 촌철살인의 어록으로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에 이경규는 "영원히 안 떠나겠다는 것은 아니고, 끝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하며 "얼마 전에 나훈아 선배님이 콘서트에서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내 입장이 곤란해졌다. '박수를 열심히 안 치면 떠나는 것' 정도로 수정해야겠다"고 덧붙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가장 고마운 사람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에서는 다름 아닌 자신을 꼽으며 마지막까지도 이경규다운 재치를 드러냈다. 이경규는 "지금도 제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가 힘들기도 하지만 이경규가 있기 때문에 계속 달려나가보도록 하겠다. 사랑하고 고맙다"며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유퀴즈 이경규 예능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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