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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지방의회에 대한 소소한 생각(아래 '이지소')>은 8년간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임기제 전문위원으로 겪은 필자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이지소'에는 필자의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에이원북스, 2022)」를 수정·보완하여 기초의회의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 지방의회를 좋게 바꾸고 싶다면 우선 지방의회를 오래 자세히 지켜봐야 하기 때문입니다.[기자말]
"의원님, 그건 저희 소관 업무가 아닙니다..."

"보건소장님, 현장의 목소리를 상급기관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공무원의 의무 아닌가요? 법령의 범위에서 자체적으로 요양병원 위생점검을 실시하시고, 만일 제도개선이 필요하면 보건복지부나 서울시에 적극 건의해 주세요."


구의회의 행정사무감사 마지막 날, A 의원의 짧지만 단호한 음성이 상임위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조금 전까지 "저희 소관 업무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던 의약과장은 헛기침을 했다. A 의원은 이미 관내 요양병원을 방문하고 온 직후였다. 요양병원의 위생과 청결상태를 불평하는 제보가 많아 행정사무감사 기간을 이용해 일부러 다녀온 것이다. 비좁은 병실에 빼곡하게 놓인 침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환자가 평안하게 치료받는 느낌보다 마치 짐짝처럼 취급받는 모습으로 보였다고 했다. 당시 A 의원이 공개적으로 밝힌 요양병원 방문 소감이다.

물론, 지역 보건소가 요양병원에 대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관계 규정상 보건복지부, 서울시, 자치구 보건소가 하는 역할은 다르다. 보건소 홈페이지에 공개된 의약과의 업무 중에 병의원관리, 의료민원 처리가 포함되어 있지만 한정된 인력으로 수십 곳의 관내 요양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점검하는 것은 사실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의원은 민원인 당사자인 주민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행정을 당부한 셈이다.

보건소 의약과의 자료를 보면, 요양병원 입원실의 시설기준은 새로 짓거나 증축할 경우 1병실 당 최대 여섯 병상에 다인실의 경우 1인당 6.3제곱미터이다. 지난 수년간 요양병원 점검이 1년에 한 번만, 그것도 자율점검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의료실태조사(2011∼2016)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이 이 기간에 평균 1.9% 증가한 반면 300병상 이상 요양병원은 31%나 늘었다고 한다. 2008년에서 2013년까지 5년간 요양병원 증가율은 78%나 달했고, 2013년 1208개였던 요양병원은 2018년 7월말 기준 1483개로 23%나 증가했다.

당시 A 의원이 제시한 언론보도 내용을 보면서 필자도 놀랐다. 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의 모교수가 2014년 1년간 서울ㆍ인천 지역 13개 요양병원의 환자 1858명을 조사한 결과, 노인의 배뇨문제가 요양병원에서 크게 등한시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입원 환자 중 배뇨장애와 요실금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각각 48%, 50%에 달했고, 배뇨장애와 요실금을 동시에 앓고 있는 환자는 64%(1190명)나 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배뇨장애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약물을 처방받은 환자는 겨우 20%에 불과했고, 단 7%의 환자만 배뇨 관련 처치와 전문 진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13개 요양병원에 비뇨의학과 전문의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환자의 절반 이상은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었고, 요도 내 도뇨관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20%에 그쳤다. 전체 조사 대상 환자 가운데 배뇨와 관련된 비뇨의학과 합병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20%, 이 가운데 12%는 요로감염까지 있었지만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동네 이곳저곳에 있는 모범음식점은 어떻게 지정되고 관리될까? 부정‧불량식품이나 공중위생업소(숙박, 목욕, 이·미용업, 세탁업 등) 관리감독은 어디서 할까? 영유아 및 임산부 건강관리와 예방접종, 산모 신생아 도우미 지원, 출산 및 육아교실, 산후조리원 관리 등은 어디에 물어봐야 할까? 큰맘 먹고 금연을 하고 싶은데 도움을 받을 곳이 있을까? 갑자기 자살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동네 병원, 안경점이나 안마업소가 비상식적으로 영업하면 어디에 신고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변해 줄 수 있는 곳이 보건소이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동네 공공시설인데 법에서 정한 보건소의 기능과 업무를 봐도 주민들에게 유용한 사항이 의외로 많다. 국내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보건소의 책임은 훨씬 막중해졌고 보건소마다 감염병 대응‧관리 팀이 신설되었다.

보건소는 시설의 규모에 따라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로 나눌 수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보건소의 경우 가좌보건지소, 홍은분소한방건강증진센터, 천연분소, 보건소별관 '우리들' 등을 운영한다. 보건소와 지소의 설치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의해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다. 1년에 한 번 있는 행정사무감사가 아니더라도 의원이 발의한 조례로 보건소의 자체 사업이 신설되거나 변경되기도 한다. 흔히 보건소 업무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비 또는 시비 매칭사업 외에 자체 사업을 하기도 하는데, 의원 발의로 "한방난임치료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하거나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일부 개정한 사례가 그것이다.

"한방난임치료 지원에 관한 조례안"은 저출산 및 난임문제의 심각성에서 출발했다. 2015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에 불과하고 지난 15년간 1.3명을 넘어서지 못한 채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난임'은 자녀의 출산을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출산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난임 문제 해결은 저출산 문제의 중요한 해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7월 초 기준, 전국에서 한방난임치료 지원 조례를 시행 중인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시 강서구‧은평구를 비롯해 총 12곳이다.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일부 개정한 취지는 별도의 지정절차 없이 어린이공원을 음주청정 지역으로 지정된 것으로 간주하여 음주로 인한 어린이의 피해를 줄이고 건전한 음주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 제1항 제2호 나목에 따르면 '어린이공원'이란 어린이의 보건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공원이다.

이러한 상위법령의 취지, 각종 연구결과 등을 감안할 때, 이 개정 조례안은 건전한 음주문화를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2018년 3월 초 기준으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시를 비롯해 서울시 자치구 중 총 16곳이며, 전국적으로는 총 56곳이다. 어린이공원을 음주청정지역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한 서울시 자치구 조례는 없다.

이밖에 보건소와 관련된 구의원의 의정활동 사례는 많다. 앞에서 예로 든 A 의원처럼 지방의원은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대신해 구체적인 개선사항을 제안하기도 한다. 지방의원의 의정활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자 지방의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자치발전연구원의 월간 <자치발전>에도 게재됨.


태그:#지방의회, #지방의회의원, #전문위원, #지방자치, #기초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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