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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균

이선균 ⓒ 연합뉴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박동훈(이선균)의 대사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배우 이선균씨가 어쩌면 수차례 되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약 투약 혐의 수사가 언론에 공개된 후 결국 혐의 당사자는 숨졌다. 마약 투약 내사 사실이 보도된 지 약 70일 만이다.
 
정말 적법한 절차였나
 
12월 27일 숨진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까지 그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요청하며, 적극 소명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경찰의 피의사실공표 이후 이선균의 마약 투약 혐의의 구체적 물증을 찾지 못했다는 것, 이씨 마약 투약 의혹과 관련 있는 A씨 또한 공갈 협박 혐의로 이씨로부터 고소당했다는 것 등이다. 정식 기소가 됐다거나 법적으로 확실한 판단이 내려진 게 아니었지만 간이검사와 정밀검사 과정, 그리고 이례적으로 이씨가 취재 포토라인까지 서게 되며 여론 재판의 무대가 마련됐다.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강압 수사에 대한 비판이 일자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강압수사가 아니었다"며 사실상 적법한 절차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은의 변호사를 비롯해 법조계에선 면피가 될 수 없다며 강하게 지적하는 모양새다. 27일 이은의 변호사는 SNS를 통해 "강압수사가 아니었단 말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피해자가 있어서 외부에 알려질 성질의 사건이 아닌데도 내사단계부터 언론에 노출됐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법무부 또한 2019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 및 시행하며 피의사실공표 관련 실질적인 제한 근거를 두기도 했다. 이 규정은 지난해 7월 당시 한동훈 법무부장관 주도하에 일부 개정되기도 했다. 사라졌던 사건 담당자 티타임이 부활하고,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가 폐지되는 등 일부 제한이 약화되긴 했지만,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한다는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2022년 7월 22일 시행된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을 살피면 제5조 등을 통해 공소제기 전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혐의사실 및 수사상황, 그 일체 내용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제9조를 통해 예외를 두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해당 보도 내용의 진위를 밝히기 위한 최소한 범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형식적으로는 검찰공무원과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 준수해야할 사항이지만 형사 사건을 다루는 경찰도 당연히 염두에 두어야할 내용이다.  
 
과연 이씨의 수사과정 관련 보도가 위 규정을 지킨 결과였을까. 무죄추정원칙, 죄형법정주의가 무색하게 이선균씨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가수 지드래곤 등도 어느 부위 털을 밀어서 검사했는지까지 언론에 공개됐다. 심지어 지난 24일 3차 소환 조사를 앞두고 이씨 측이 꾸준히 비공개 소환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끝내 묵살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또한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 내 '수사 과정의 촬영 등 금지' 조항을 위반하는 결정이다. 예외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이선균씨 건이 공소시효가 임박했다거나 국가적, 사회적 피해가 큰 중요한 사건으로 보기엔 어렵기에 경찰의 과한 처사로 볼 여지가 크다.
 
TV조선 등 기성 언론, 사이버 렉카와 다를 바 없어    

사망 사실이 확인된 직후 이선균씨의 유족 측은 부검 및 유서 공개를 거부했다. 하지만 TV조선은 같은 날 오후 9시 보도에서 이씨 아내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유서 내용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다수 매체는 유가족의 뜻을 전하는 차원으로 고인의 기사를 갈음하는 분위기거나 유서 내용 보도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지만, TV조선 보도 내용을 그대로 재인용하는 매체 또한 적지 않았다. <데일리안>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 종합지를 비롯 다수 온라인 연예매체들도 TV조선 보도를 인용해 기사를 냈다. JTBC는 26일 오전 이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빨대를 이용해 코로 흡입했다"는 등 구체적 진술 내용을 공개하며 빈축을 샀다.
 
26일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16분 분량의 A씨와의 통화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어떤 공익적 내용도 담기지 않은 사인 간의 횡설수설,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내용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녹취 버전은 여타 사이버 렉카 채널에 무분별하게 퍼졌다. 해당 콘텐츠는 현재까지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200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일각에선 이씨의 극단적 선택 배경에 이러한 연쇄 사건이 큰 영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분석 또한 이어졌다.
 
지난달 KBS 또한 이씨와 A씨의 통화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개인 사생활 관련 내용이 가감 없이 노출되는 등 공익성보단 자극적 내용이 주였기 때문이다. 말대로 환장의 콜라보다. 그 내용만 놓고 보면 언론과 사이버 렉카의 차이를 거의 분별할 수 없을 정도다. 
 
매년 세밑 무렵 단골처럼 등장하는 '다사다난'이라는 단어로 결코 이번 사건을 뭉뚱그릴 수는 없다. 한국영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그의 죽음을 두고 외신에서도 수사 과정에서의 압력, 사이버 불링(CyberBullying)을 언급하고 있다. 다같이 손가락질하다가도 추모와 자성의 목소리로 순간 뜨거워지는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수사당국의 행동은 수십 년 전 공안 정국의 그림자가 아닌지, 무분별한 유튜브 콘텐츠를 이대로 방관할 것인지, 미디어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나 사회적 함의와 상식, 도덕의 수준은 어떤지 총체적으로 점검할 시기다. 
이선균 사이버렉카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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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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