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6 17:46최종 업데이트 23.07.0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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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화 장인이 작업을 마치고 대장간 내부의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다. 2023년 1월 19일 인천 <인일철공소>. ⓒ 정진오

 
대장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를 만드는 곳이었다면, 그 대장간은 아주 오래된 우리말의 곳간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쇠로 된 농기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대장간에서는 그것들을 제작했다. 대장간은 아주 오랜 세월 농민들이 쓰던 도구 이야기를 쌓아 놓은 곳간이다. 갯벌에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도구 또한 마찬가지다. 대장간에서 만들어내는 도구들이 다 그렇다.

농사짓는 일 대부분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제 대장간에서 만드는 연장을 많이 쓰지 않게 되었다. 필요가 없어진 농기구의 이름조차 이제는 낯설다. 그러나 여전히 대장간에서는 호미, 낫, 괭이 같은 기본 농기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장간이 있으므로 해서 그 이름만큼은 아직 살아있는 거다. 말은 사람들끼리 주고받을 때 의미가 있다. 산에 난 좁은 길이 그렇듯이 말도 쓰지 않으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도구의 이름, 대장간에서 만들어내는 온갖 연장들의 우리말 이름은 대장간이 갖는 또 다른 가치이다.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라고 할 때의 '대장'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전들은 대개가 '대장'을 대장장이의 준말, 또는 대장일의 준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대장일'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일이고, '대장장이'는 대장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대장은 그 둘 다를 일컫는 말이다.

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쇠가 있어야 하고, 그 쇠를 달굴 불이 있어야 하고, 쇠와 불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연장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사람이 대장이다. 군부대나 어떤 조직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대장(大將)이 아니다. 우리가 쇠를 다루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겨났을 이 대장이라는 두 글자만큼은 아직 한자로 대체해서 쓰지를 않고 있다. 이 또한 흥미롭다.

'대장' 다음에 붙는 '-장이'의 사전적 풀이는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간판장이, 대장장이, 땜장이, 미장이, 양복장이, 옹기장이 등으로 쓴다. 한마디로 전문 지식과 기능을 가진 '기술자'라는 얘기다.

기술자를 일컫는 말 '~장이', '편수', '바치'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 놓여 있는 모루. 요즘 대부분의 우리나라 대장간에서 쓰는 이런 형태의 모루는 양모루이다. 모루 위에 망치를 올려놓았다. 2022년 11월 1일. ⓒ 정진오

 

메에도 종류가 달랐다. 앞메가 있고, 견메가 있었다. 겉모양이 다르기도 했고, 자루를 박아 넣는 구멍의 위치도 달랐다. 2023년 2월 7일, 송종화 장인이 자신이 예전에 쓰던 메를 들고 그 모양을 설명하고 있다. ⓒ 정진오


우리말에는 기술자를 지칭하는 말이 다양하다. '~장이' 이외에도 '편수', '바치' 같은 말을 찾아볼 수 있다. 기술 분야에 따라, 그 기술의 수준에 따라 붙이는 말도 달랐다. 나무를 다루는 기술자인 목수에게는 '편수'라는 말을 썼다. 기둥처럼 집의 뼈대를 만드는 목수는 정현편수, 서까래를 얹는 일을 하는 목수는 서까래편수라 했다. 

목수들의 우두머리는 '도편수(都--)'라고 했다. '도꼭지(都--)'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어떤 방면에 으뜸이 되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는 목수 중에서도 도꼭지로 인정받았다'라고 하면 '그는 도편수였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도꼭지가 범위가 넓은 거였다.

도편수와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솜씨가 서툰 목수는 '도끼목수'라고 했다. 여러 연장을 다루지 못하고 도끼만 쓸 줄 아는 수준이라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대장일의 등급으로는 풀무꾼이나 메질꾼 정도 되겠다.

갖은 연장을 쓰지 않고 도끼 같은 큰 연장으로만 대충 건목쳐서 지은 집을 도끼집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건목은 마른나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만들 때 제대로 다듬지 않고 거칠게 대강 만드는 일이나 그렇게 만든 물건을 말한다. 도끼목수, 도끼집이라니, 나무를 찍어낼 때 꼭 필요한 연장인 도끼 입장에서는 좀 서운할 수도 있겠다.

'--바치'도 기술자를 의미한다. 가죽 신을 만드는 기술자를 갖바치라고 했다. 옥을 다루는 기술자는 옥바치, 동산의 꽃이나 나무 따위를 가꿀 줄 아는 원예사는 동산바치라고 불렀다. 점쟁이를 점바치, 광대를 놀음바치라고 하기도 했다.

대장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쇠' 역시 아주 귀한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금(金)이라고도 쓰고 철(鐵)이라고도 하는데, 이 둘의 쓰임은 달랐던 듯하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어원 연구서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금과 철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金)의 뜻을 쇠(衰)라고 말하는데, 쇠는 누른 것(黃)과 검은 것(黑)이 같지 않다. 황금(黃金)은 금(金)이라 말하고, 철(鐵)은 쇠(衰)라고 말한다"고 다산은 이야기했다. 우리가 '금(金)' 자를 일컬어 '쇠 금'이라고 하는데, 쇠붙이의 개념으로 쓸 때는 금이 아니라 철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쇠로부터 퍼져나간 우리말이 무척 많다. 대장간에서 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우쇠와 무쇠 같은 쇠붙이가 우선 필요하다. 옛날에는 쇠를 생철(生鐵), 수철(水鐵), 숙철(熟鐵) 등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생철이나 수철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무쇠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무쇠를 불에 달구어 단단하게 하면 시우쇠가 된다. 숙철(熟鐵)이 시우쇠이다. 시우쇠는 참쇠라고도 하며, 정철(正鐵)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거느린 대장장이들과 함께 개발한 조총을 '정철총통(正鐵銃筒)'이라고 했다.

정약용 "금(金)과 철(鐵)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
 

19세기 말 한국에 와 있던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의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 실린 소 편자 박는 장면 사진. 편자 박는 장인 왼쪽에 놓인 공구 통에는 편자와 대갈, 대갈마치 같은 게 들어있었을 테다. ⓒ 자료사진

 
   

일본 다네가시마에서 대장장이 500년 전통을 잇고 있는 우메키 쇼지(梅木昌二) 씨의 대장간 '매목본종자협제작소(梅木本種子鋏製作所)'에 있는 모루. 뿔이 있는 양모루가 아니고 사각형인 점이 이채롭다. 우리나라 전통 모루도 사격형과 원통형이 있었다고 한다. 2023년 5월 25일. ⓒ 정진오

   
다산 정약용이 금(金)과 철(鐵)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했던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을 위해 여러 가지 선물을 전달했는데, 그중에 휴대용 불 붙이는 도구인 부시가 있었다.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의 <난중일기> 중 '1594년 11월 28일 일기 뒤 메모' 분석자료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장군에게 줄 선물 목록을 작성하면서 이 부시를 '화금(火金)'이라고 적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화금을 70개나 준비했다. 이순신 장군은 당연히 명나라 장수가 받고 나서 흡족하도록 명품을 건네주려 했을 터인데 그걸 70개나 만들어야 했으니 장군 밑에 있던 대장장이들이 꽤 고생했겠다 싶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인데, 다산의 지적대로라면 옳게 쓴 용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밖에도 부시를 가리켜 화철(火鐵), 화도(火刀), 수금(燧金), 부수(鳧壽)라고 쓰기도 했다.

아무튼,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인 부시란 말이 참 묘하다. 부시의 어원을 따지자면 불과 쇠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이다. 불과 쇠가 있어야만 일이 되는 대장간과 그 뜻에서 너무나 닮았다. 부시는 겉모양부터 일반 쇳조각과는 달랐다. 있는 집에서는 대장장이를 시켜 온갖 모양을 내서 부시를 제작하게 했다. 휴대용인 만큼 예술미를 갖추어 들고 다니면서 과시하고 싶었던 거다.

부시는 요즘으로 치면 성냥이나 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 성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지만 라이터는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흡연인구가 줄고, 연초 담배가 전자담배로 바뀌면서 라이터 시대도 막을 내리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캠핑족들이 크게 늘면서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불을 쉽게 붙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라이터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 부시에서 성냥으로, 성냥에서 라이터로. 불 붙이는 도구도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요즘에 성냥을 보기가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대장간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대장간의 다른 이름이 '승냥깐'이다. 충청남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고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 쇠를 불리는 일을 '성냥하다'라고도 하는데, 이 '성냥일'이 곧 대장일이다. 옛말에 '성냥노리'라는 게 있다. 대장장이가 1년 동안 깔아놓은 외상값을 받으러 섣달그믐께 농가를 돌아다니는 일을 일컫는다.

성냥이라는 말은 '석유황(石硫黃)'에서 왔다. 성냥개비의 머리 부분을 성냥골이라고 하는데, 이 성냥골의 원료를 석유황이라고 한다. 석유황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성뉴황'이다. 성뉴황이 성냥의 어원이 되었다.

풀무깐, 불무깐, 불매깐, 벼름깐은 '대장간'과 같은 말
  

일본 다네가시마 우메키 쇼지 씨의 대장간에 있는 손풀무. 우리나라 대장간에서 예전에 쓰던 손풀무도 저런 모양이었다. 우메키 쇼지 씨는 전기 송풍기와 저 손풀무를 함께 갖춰 놓고 있었다. 2023년 5월 25일. ⓒ 정진오

 
대장간은 승냥깐 이외에도 풀무깐, 불무깐, 불매깐, 벼름깐 등으로 불린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인 풀무도 아직 여러 곳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불을 일으켜 쇠를 불리기 위해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질 소리도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울산광역시의 '쇠부리 불매소리', '성냥간 불매소리'가 대표적이다.

우리말로 이루어진 풀 이름 중에도 대장장이와 관련된 게 있다. 쑥부쟁이 풀이다. 국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쑥부쟁이'라는 이름은 '쑥'과 '부쟁이'의 합성어다. 잎과 줄기가 쑥처럼 생겼는데, 그 줄기가 부지깽이처럼 긴 막대기 모양으로 자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부쟁이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쓰는 부지깽이의 방언이다. 옛날에는 불을 다루는 게 필수인 대장장이를 불쟁이라고도 불렀다.

쑥부쟁이 풀에는 대장장이의 딸과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아주 옛날 한 마을에 쑥을 캐던 대장장이의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몸을 다친 사냥꾼을 치료해 주어 낫게 했다. 쑥의 효능이 컸을 터인데, 그 사냥꾼은 떠나면서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둘의 인연이 안 되었던지 만나지를 못하고 딸이 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냥꾼이 돌아왔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죽은 딸의 무덤에서 다음 해에 보랏빛 들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쑥을 뜯던 불쟁이 딸'이 환생했다고 여겨 쑥부쟁이로 불렀다는 얘기다.

우리의 풀 이름을 보면 쑥부쟁이와 비슷한 풀이 여럿 더 있다. 개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부지깽이나물, 쑥부지깽이들이다. 아마도 잎을 떼어내고 부지깽이로 쓰기에 적당해서 그렇게 불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장간에서 만들어내는 오래된 전통의 온갖 연장들도 우리말을 다루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도구이다. 호미, 낫, 조새 같은 연장들은 대장간이 몇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요즘에도 여전히 오랜 그 이름을 달고 대장장이의 손을 거쳐 나온다.

낫, 조새, 호미 같은 연장들이 그 이름을 가진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터인데 워낙 오랜 세월 그렇게 불려서인지 정확한 어원을 알기가 쉽지 않다. 연장은 그 하나의 부위마다 또 다른 우리말을 갖고 있다. 

기역 자처럼 굽은 날을 가진 낫은 크게 날과 자루로 구분할 수 있다. 더 좁히면, 자루에 들어박히는 부분을 슴베라고 한다. 호미나 칼 역시 마찬가지다. 슴베에서 기역 자로 휘어진 날의 두꺼운 어깨 부분을 낫공치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낫에서도 날, 자루, 슴베, 낫공치로 구분해서 이름을 지었다.

오래 전부터 '편자'와 '대갈' 구분해 사용 
 

한 가게의 입구 위에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뜻으로 걸어 놓은 황금색 편자 장식. 액자에 넣은 모습. ⓒ 정진오


잘 팔리는 개업 선물 중에 편자가 있다. 편자는 말발굽에 U자 모양으로 대어 붙이는 쇳조각이다. 이 편자는 대장간에서 만들던 물건이다. 말뿐만 아니라 소 발굽에도 편자를 달았다. 편자의 쓰임새를 실제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경마장에나 가야겠지만, 옛날 말 타고 다니던 시절이나 소를 이용해 물건을 실어나르던 때에는 편자가 생활필수품이었다.

위세 있는 양반네들이 말을 타고 여러 날 길을 떠날 때 준비물 중에는 편자가 꼭 있었다. 경마를 잡는 노비와 양반 자신이 먹을 양식이며, 말 양식, 그리고 편자가 필수 준비물이었다. 도중에 아는 집에서 양식과 함께 편자를 지원받기도 했다. 

전라도 함평현감을 지낸 윤이후(1636~1699)의 <지암일기>를 보면, '(장성현감이) 말먹이 콩 7말과 편자 3부, 자리 2립을 주고 갔다'(1693년 9월 25일)거나 '(태인현감이) 쌀 4말과 콩 3말, 편자 3부를 보냈다'(1693년 11월 9일)는 얘기가 나온다. 편자를 세는 단위는 부(部)였고, 앉거나 누울 때 까는 자리를 세는 단위는 입(立)이었다.

말의 고삐를 잡고 가는 노비는 아마도 편자를 갈 줄 아는 경험자 중에서 골라야 했을 테다. 편자는 도중에 만들 수가 없으니 미리 준비해야 하는 물건이었으나, 길을 가다 편자를 바꿔야 하는 순간에는 즉시 현장에서 조치가 가능한 노비가 있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양반들의 행차 준비물에는 편자 박는 못과 망치 같은 도구들이 더 있었을 게 분명하다.

편자 박는 못의 이름도 대갈, 다갈, 다갈이 등 여럿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대갈(大葛), 대갈(代葛), 다갈(多葛), 다갈(多曷), 다갈이(多曷耳) 등 여러 가지로 적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머리를 '대가리'라고 부를까. 비슷한 말로는 '대갈통'도 있고 '대갈머리'도 있다. '대갈'이라는 오랜 순우리말이 있었는데 그걸 한자로 적으면서 여러 말로 분화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던 때, 그러니까 원균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일본군에 대패하는 바람에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던 때, 장군의 일기에도 편자 박는 '다갈'이 등장한다. 1597년 7월 24일 자에는 '(방응원이) 군량 2곡과 말먹이 콩 2곡, 다갈(多葛) 7부를 가져 왔다'는 내용이 있다. 

박종평이나 노승석 등 몇몇 번역가들은 이 다갈을 편자 박는 데 쓰는 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노산 이은상은 이 부분을 '말편자 7벌을 가져왔다'로 번역해, '다갈'을 '말편자'로 보았다. 이 부분은 좀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직 남아 있는 대장장이 중에는 소의 편자와 편자 박는 못을 만든 경험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들은 편자 박는 못을 대갈이라고 부른다. 대장장이들은 오래 전부터 편자와 대갈을 확실하게 구분해 왔다는 얘기다.

'편자를 보면 행운이 온다'는 영어 속담
 

대장간 메질꾼의 위치도. ⓒ 고정미

 

요즘 대장간에서는 메질꾼을 쓰는 곳이 거의 없다. 대장장이 한 명이나 둘이서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메를 대신해서 기계해머가 쇠를 두드린다.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 있는 메 2개가 눈길을 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 부분의 겉모양이 둘이 서로 다르다. 또 자루의 길이도 왼쪽 것은 길고, 오른쪽 것은 짧다. 2023년 2월 7일. ⓒ 정진오

 
편자가 행운의 상징인 점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아마도 말이 앞발을 긁어서 흙을 끌어모으는 시늉에서 돈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연상한 건 아닌지, 편자를 네 잎 클로버처럼 여기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편자를 보면 행운이 온다(If you find a horseshoe, you'll have a good luck)'는 영어 속담도 있다고 한다.

우리말에도 편자가 들어간 표현이 더 있다. '망건 쓰자 파장(罷場)'이란 말처럼 망건의 이마 쪽 가운데 아랫부위를 '망건편자'라고 한다. '편자고래'란 말도 있다. 우리 전통가옥의 특징 중에 온돌이 있다.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방에 열을 가하기 위한 우리만의 방식이다. 

아궁이의 열기와 연기가 돌아나가도록 만든 방바닥 아래에 만든 고랑이 방고래다. 그 방고래를 U자형으로 만든 걸 '편자고래'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편자'의 쓰임은 참으로 다양하다. 말이나 소의 발바닥을 보호하기도 하고, 양반들의 이마를 지탱해주기도 하며, 사람들이 뜨끈하게 허리를 지질 수 있도록 하는 방고래를 이루기도 하니 말이다.

대장간에서 쓰는 도구 중에도 챙겨봐야 할 우리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메'다. '메'는 무엇을 치거나 박을 때 쓰는, 나무나 쇠로 만든 방망이를 말한다. 영어로는 해머(hammer)가 메에 가까운 말이면서도 망치와는 구별해야 한다. 망치는 또 마치와도 차이가 있다. 대장간에서는 메질이 따로 있고, 망치질이 따로 있다. 마치질 역시 다른 일이다. 

요즘 대장간에서는 메질은 기계가 대신하는 바람에 '메'와 '메질꾼'은 구경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고, 망치와 마치의 차이를 분간하기도 어렵다. 크기로 보자면, 메가 가장 크고, 망치가 그다음이고, 마치가 가장 작다. 그냥 큰 망치나 작은 망치처럼 부르지 않고, 우리는 왜 이렇게 세분해서 이름을 붙였을까.

대장간의 핵심 장비 중에 불린 쇠를 올려놓고 망치를 내리쳐 모양을 잡는 모루가 있다. 그 '모루'란 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라는 말의 내력도 여간 궁금한 게 아니다. 대장간은 우리말의 작은 알갱이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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