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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어느 가을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학급에 1교시 수업을 하러 들어갔다. 조금 일찍 교실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은 그날따라 교과서 펴기를 싫어했다. 그때 평소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을 지닌 학생 한 명이 '뱃속의 아기 이름은 정했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당시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나는 아이들이 수업을 지연하기 위해 하는 질문이라는 걸 뻔히 눈치챘지만, 수업을 잠시라도 미루고 싶은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어 아직 고민 중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급히 남편의 성을 물어보았다. 이씨라고 대답을 해줬더니 그때부터 아이들은 '이씨' 성을 지닌 위인과 연예인의 이름을 마치 스피드 퀴즈를 하듯 외쳤다. 나는 빠른 상황 정리를 위해 내가 짓고 싶은 아이 이름의 기준을 대충 알려주고는 예쁜 이름이 생각나면 추천해 줘도 좋다며 수업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태어날 아기 이름을 고민한 제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될 아이의 삶을 응원하며 찍은 사진
▲ 아이가 입학한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될 아이의 삶을 응원하며 찍은 사진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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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또 그 반 수업이 있었고 끝나고 나오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지막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선생님~ OO이라는 이름 어떠세요?" 하고 말했다. 얼굴을 보니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차분한 성격의 여학생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아이 이름을 듣자마자 당황했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부터 건넸다. 나를 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주는 그 학생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이름을 성을 붙여가며 서너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그러자 내 입에 착 달라붙는 그 느낌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이전에 고민을 해 본 이름이었다. 썩 마음이 가지 않다가 제자의 입을 통해 들으니 전혀 다르게 들렸다. 어쩐지 우리 딸 이름으로 딱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상의를 했고 그렇게 그 여학생이 제안해 준 이름으로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이 정해졌다.

그 첫째 딸이 지난 3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때때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들다는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좋고 방과 후 교실 프로그램이 재밌어서 학교가 좋다고 말한다. 그런 딸에게 매일 아침 "OO아 학교 잘 다녀와~"라고 이름을 붙여 인사를 건네고 나면 딸의 이름을 지어준 그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내가 받은 감동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이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것일까? 어쩌면 엉뚱한 한 아이의 질문으로 시작된 그 이야기는 가볍디 가벼운 에피소드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내가 했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고민해 주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학교 생활에 있어 많은 이들은 공부에 중점을 둔다. 중학교 교사이자 엄마인 나도 우리 딸이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제 머리에 쏘옥 넣어왔으면 좋겠다.

누구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그리고 학부모님이라면 학교에서의 공부는 매우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다. 또 학교에서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학교 역시 작은 사회이기에 아이가 교우 관계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면 애가 타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을 떠올리면 학교 생활에서 중요한 또 다른 면을 살펴보게 된다. 그 학생은 교탁 앞에서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지만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는 아이였다. 수업 시작 종이 칠 무렵 짧게 나눈 '아이 이름 지어주기' 에피소드를 그 아이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선생님인 나의 이야기를 언제나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교사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이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을 때는 조용히 샤프를 움직이며 필기를 했다. 교사로서 그저 고맙고 대견한 학생이다.

뒤늦게 깨달은 제자의 경청과 배려
 
네 이름처럼 반짝이는 삶을 살아가길 엄마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 입학을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찍은 사진 네 이름처럼 반짝이는 삶을 살아가길 엄마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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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 지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는 평소 나를 좋아하여 아이의 이름을 꼭 추천해 주고 싶었단다. 방과 후에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했고 후보를 떠올려 학교를 왔단다. 며칠간 나를 만날 날을 기다리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내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하고 싶었던 말을 할 법도 한데 아이는 수업을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현명함까지 지녔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맥락 없이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수업 시간에 뜬금없는 이야기를 내뱉는 경우가 많다. 또 반대로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머물다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반 친구들을 배려하고 전체 수업의 분위기를 고려했다. 수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다른 친구들의 집중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볼 줄 아는 아이였다.

내 인생에 '경청'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면 이 에피소드를 잊을 수가 없다. 나조차도 가볍게 했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마음을 학생으로부터 배웠다. 내 이야기를 듣고 진심을 담아 도움을 주려 했던 그 제자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어떤 하루를 보낼지 또 수업 시간에는 어떤 모습일지 매일매일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1 더하기 1은 2라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하고 급식을 먹을 때는 식사 시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장으로 나갈 때는 질서를 지키는 모습도 학교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 말고도 또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스레 들어주는 '경청', 그리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고민을 함께 마음을 다해 고민해 줄 수 있는 '공감', 또 주변 상황을 고려해가며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려'가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아이에게 이런 가치가 담긴 말과 행동을 자주 보게 된다면 교사이자 엄마로서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제자로부터 이름만 선물로 받은 게 아니었다. 내 아이의 삶에서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엄마로서 가져야 할 바른 태도도 함께 선물 받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브런치와 블로그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육아, #이름, #교사, #학생,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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