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세기 소녀> 포스터

영화 <20세기 소녀> 포스터 ⓒ Netfilx


 
지난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 20세기 소녀 >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21세기를 앞둔 1999년, 17세 소녀 '보라'(김유정 분)의 첫사랑 이야기 < 20세기 소녀 >는 보통의 첫사랑 영화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동시에 삐삐 시절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 20세기 소녀 >는 지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에서 상영된 이후,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열띤 호평을 받았다. 이어 21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이틀 만에 대한민국 TOP10 랭킹 1위에 올랐으며 네이버 네티즌 평점 9.04를 받으며 순항 중이다.
 
<클래식>의 계보를 잇는 첫사랑 영화의 탄생

21세기의 보라에게 소포 하나가 배달된다. '19금' 비디오테이프와 전시회 안내장이 든 소포는 어른 보라를 1999년으로 이끌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시청자들도 기꺼이 동행한다. 그 시절, 세상 전부 같았던 첫사랑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훗날 흑역사가 되기도 할 만큼 서툴고 실수투성이지만, 그 시절이기에 가능했을 순수한 추억이다.

< 20세기 소녀 >는 실제 1999년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방우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우연히 다시 펼쳐본 그 시절 일기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데. 학창시절이 모티브이니만큼 아날로그와 아직은 투박했던 초기 디지털문화가 레트로 감성을 제대로 자극한다.

삐삐에 최애 노래를 녹음하며 1010235(열열히 사모)를 남기고, 비디오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며, 전화번호부를 뒤져 사람을 찾는 장면들은 최소 40대 초반 이상 관객들에겐 추억 돋는 볼거리다.

지금껏 사랑받은 첫사랑 영화들의 성공요인을 꼽자면 단연 배우파워.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풋풋한 외모가 뒷받침될 때 관객의 몰입도도 높아진다. 손예진, 이은주, 전지현, 이수지가 국민 첫사랑으로 사랑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 20세기 소녀 >의 보라는 2022년 국민 첫사랑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한 첫사랑 캐릭터. 예쁘면서도 본인이 예쁜지 모르고 마냥 착해서 친구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순수한 그 모습이 극의 몰입도를 더한다.

보라와 연두의 사랑을 받은 '운호'(변우석 분) 역시 영락없는 그 시절 첫사랑의 모습이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보라를 짝사랑했다는 반전은 지켜보는 어른들의 심장마저 쿵, 내려앉게 한다.

일의 시작이자 열쇠 역할을 한 '연두'(노윤서 분),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기사 역할밖에 못한 '현진'(박정우 분) 캐릭터도 생생하게 극의 재미를 더했다. 마치 <클래식>의 이기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름답게 남은 그 시절의 첫사랑

심장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절친 '연두'(노윤서)의 첫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고군분투 하다 어느새 보라 역시 첫사랑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첫사랑 영화는 뻔하지 않기가 어려운 법. <연애소설>(2002), <클래식>(2003), <건축학개론>이 그랬듯 '짝사랑이 서로사랑이 되고 오해가 이별을 부르고 재회하는 듯하다 영원히 이별'하는 공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너무 일찍 만나서다.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사랑의 완성을 '헤어지지 않고 만나는 상태'라고 친다면 결국 서른, 마흔이 되어서도 첫사랑과 함께해야 한다는 건데,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에 성공한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어야 하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첫사랑 영화의 주인공들이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렇다.
보라와 운호의 이별 역시 예견된 것.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인공들처럼 결혼에 골인한 현재, 과거를 회상하며 신랑 찾기에 열을 올린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보라와 운호는 기차역에서의 가슴 아픈 이별 이후 다시 만나지 못한다.

보라의 첫사랑 운호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었을 때 보라만 모를 뿐 관객은 이미 그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한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탄탄한 라인업
 
 영화 <20세기 소녀> 스틸

영화 <20세기 소녀> 스틸 ⓒ Netflix

 
배우 김유정, 변우석과 신예 박정우, 노윤서가 그린 1999년의 청춘은 완벽하게 싱그러웠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이미 연기 경력 20년 베테랑 배우로 성장한 김유정은 물론이고, 보라의 첫사랑 운호 역의 변우석은 전작 <청춘기록>,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운호의 절친이자 연두의 짝사랑 상대로 보라의 관찰 대상이 되는 현진 역의 박정우 역시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와 드라마 <번외수사> 등에 이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신예 노윤서 역시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보라와의 캐미를 뽐내며 연두 역을 충실해 해냈다.

영화의 배경이 청주인 만큼 청주 출신의 성인 배우들의 특별출연도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청주 출신으로 유명한 이범수와 한효주가 각각 고등학교 선생님과 성인 보라 역을 맡아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로 웃음을 자아낸다. 첫사랑 운호의 동생 역의 옹성우, 보라의 소개팅남으로 분한 공명 등 깜짝 등장하는 까메오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클리셰와 결말을 짐작할만한 밑밥들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 첫사랑 아닌가.

액션, 스릴러, 좀비, 범죄 등 자극적인 소재와 복잡한 전개를 요구하는 장르물 홍수 속에서 피로도가 높아졌다면, 풋풋한 학원물이자 성장영화, 아련한 첫사랑 영화인 <20세기 소녀>를 선택하길. 우리들 가슴 속 첫사랑이 보라와 운호처럼 생기진 않았더라도, 순수했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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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가장 큰 걱정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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