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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와 박원석 정책위의장이 9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도 예산안에 대해 "이번 예산안은 박 대통령이 약속한 노후-의료-보육-노동 등 4대 복지공약의 폐기 예산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정의당 "내년도 예산안은 복지공약의 폐기 예산안"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와 박원석 정책위의장이 9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도 예산안에 대해 "이번 예산안은 박 대통령이 약속한 노후-의료-보육-노동 등 4대 복지공약의 폐기 예산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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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하루를 쉬면 하루치 일만 쌓여야 하는데, 왜 서너 배 느는 것일까. 명절 연휴 며칠을 쉬었으니, 지난 일주일은 당연히 눈 코 뜰 새 없었다. 월요일(23일)에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장애인 등의 이동 및 출입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도로법 개정안 제출' 기자회견(관련 기사 보기)을 했고, 목요일에는 '사회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협동조합 지원을 중심으로'를 개최했다.

정부가 발표한 2014년도 예산안 내용을 검토했고,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비교·분석했으며 2012회계연도 결산 심사 준비를 했다. 국정감사 회의를 했고, 정부 부처에 몇 가지 자료 요청을 했으며, 오지 않은 자료를 점검·독촉하고, 이전에 받은 자료와 보고서를 읽었다. 이 모든 것보다 더 많은 비중으로, 다음 주에 있을 두 건의 긴급 토론회를 준비했다.

국회에서 토론회가 자주 열리는 이유

모든 토론회는 '하자'고 결정하는 순간 국회 내에 사용가능한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첫 번째 과제다. 국회의원회관, 도서관, 헌정기념관, 입법조사처에 강당, 대회의실, 소회의실, 세미나실, 간담회실 등이 있으나 다양한 토론회가 늘 개최되기에 공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장소가 비어있는 날짜에 맞춰 토론회 날짜가 정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처럼 긴급토론회가 결정되면 시간이 촉박해 장소를 알아보는 동시에 발제자 섭외도 해야 한다. 장소, 시간, 발제자까지 결정하고 나면 토론자 섭외, 인사말, 축사 등 그 모든 사람들에게 협조 요청 공문 발송, 포스터, 현수막 제작·게시, 보도자료 작성·배포, 관련단체 참석 요청, 취재요청, 발제문 받아 토론자에게 전달하기, 토론문 받아 자료집을 만드는 등 해야 할 실무가 쫙 펼쳐진다. 지난주에는 토론회 세 건을 동시에 준비했다. 혼자 한 건 아니지만, 담당자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고 보니 헉헉 숨차다.

이번 주에는  '무상보육 긴급진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갈등 해법 모색'과 '기초연금 공약파기 긴급진단' 토론회가 화요일, 수요일에 나란히 열린다. '긴급진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야말로 긴급하게 준비됐다. 상황이 그랬다. 정부는 선거 공약을 못 지키겠다고 선언했고, 해당 부처 수장은 "양심에 따라" 장관직 사퇴 의사를 거듭 밝혔으며, 대통령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나는 성격상 어지간하면 사과를 받아주는데, 이건 나한테 사과한 건지 아닌지 몰라서 받을 수가 없다.)

공약이 절대 진리는 아니니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태산이 무너질 일은 없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존재인지라 예지능력이 탁월하지 않다. 오차 줄이기를 고민하는 게 미래에 대한 최고의 대책이다. 그러니 공약 수정은 집권 이후 상황 변화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그 사유가 납득 가능하면 인정받을 수도 있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노총 등 21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9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파기를 규탄하며 차별없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 "기초연금 공약 파기는 대국민 사기극"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노총 등 21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9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파기를 규탄하며 차별없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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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대운하 건설"을 교묘하게 변형한 "4대강 정비 사업" 같은 건 지키지 말았어야할 공약이다. 상당수의 국민이 약속 불이행을 납득했을 것이다. 문제는 '공약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가 내세운 공약을 보고 그 정당의 이념을 짐작하고, 후보가 당선 이후 이끌 정부를 상상하며 비교 선택한다. 10가지 공약 중에 10가지 모두를 지지할 수도, 단 한 가지가 마음에 들어 지지할 수도 있다. 유권자가 자신의 선호를 결정하는 과정은 복합적이나 투표는 단선적이다. 어쨌든 다수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면 그는 승리자이며, 그가 내세운 공약은 '승리한 대안'이다.

그러므로 수권자는 자신을 선택한 시민에게 한 약속에 대해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히 그 책임은 공약 이행을 뜻한다. 최선을 다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공약 이행이 어려우면 그 사유를 잘 설명해야 한다. 공약을 지지해 달라던 때보다 훨씬 친절히 설명하고, 더 간곡히 설득해야 한다. 그 대상자는 자신을 지지했던 시민만이 아니라, 또 다른 다수 시민을 대의하는 야당 국회의원도 포함되어야 한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일은 수고로움도 적고, 책임을 면하는 가장 쉬운 길이다. 대통령은 그 길을 택했다. 그러면서 대안 논의의 장을 차단했다. 지금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국회 안에 정책 논의의 장을 열겠다는 의미이다. 토론 좀 해보자. 왜 안 되는지, 정말 안 되는지 말이다.

토론 거부하는 행정부... 정말 화가 난다

그런데 토론회에서 행정부를 섭외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성격이 그리 모난 축은 아닌데,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전화기를 서너 번(어쩌면 대여섯 번) 꽝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담당 공무원과 토론회 참석 여부에 대해 실랑이를 하다 "의원실에서 일방적으로 잡은 토론회에 나가야할 의무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이 문제 때문에 바쁘다. 토론회에 나가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토론회 주제에 동의할 수 없어서 장관님 축사를 보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전화가 왔을 때는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불참의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지방출장' 또는 '빠질 수 없는 회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핵심 부처 공무원은 토론회 불참 사유로 지방출장을 들었다. 이때도 전화기를 요란하게 내려놓았지만, 실은 분노보다 실망감이 컸다. 행정부는 입법부와 어떠한 정책 논의도 하지 않으려는 건가? 필요 없다는 건가?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최선의 대안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추궁하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우선 전문가들의 대안, 관련 단체와 당사자의 의견, 우리가 생각하는 해법에 대한 관료들의 견해 등을 들어보는 자리다. 그렇게 의견을 나누면서 다른 대안이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토론을 통해 이해를 높이고, 차이를 좁혀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게 토론회 개최의 취지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진 전 장관은 기초연금 축소 등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진 전 장관은 기초연금 축소 등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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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의 주제가 대안 모색보다 상호 간 자기주장을 앞세워 논의가 공전될 가능성이 커도, 관료가 행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피할 이유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약 이행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도, 공약 불이행의 사유를 설명하는 것도 행정부 관료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국회의 몫이 남았다. 지방재정 문제도, 기초연금도 최종적으로는 법과 예산을 통해 다뤄진다. 합의된 의사일정은 9월 30일부터 시작됐다. 10월 1일에는 정부를 상대로 한 긴급 현안질의가, 10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20일간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11월 12일부터 11월 15일까지는 대정부질의가 있다. 또 예산과 법안 심의가 있을 것이다. (결국 행정부도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럴껄, 왜 그리 애를 먹였나.)

이번만큼은 다수의 힘을 앞세워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상보옥 재정분담 문제로 촉발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 갈등 해법이나 기초연금과 같은 의제는 온 사회가 함께 합의해야 할 사안이다. 이해 당사자가 전 국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복지나 재정은 한 번 나빠지면 가속도가 붙어 나중에 되돌리기가 무척 힘들다.

현재 무상보육으로 인한 재정 갈등 해법으로 국고보조율을 20%로 상향하자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보건복지위를 통과하고,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사이 기획재정부는 '보조금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고보조율을 10%만 인상하려 하고 있다.

이래서는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정부와 국회 간 새로운 갈등이 생긴다.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행정부의 의견을 관철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박근혜 대통령도 "보육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했다. 올해 1월의 일이다. 아니었다고 발뺌하기는 서로 멋쩍은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

기초노령연금도 발표된 정부안을 적용하면 현행 기초노령연금법보다 손해 보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시간은 걸리지만 2028년에는 현재 급여를 받는 대상자 범위 내에서 모두가 20만 원 이상(현재 급여액의 2배)을 받게 된다. 그런데 발표된 안에 의하면 국민연금을 오래 가입한 사람은 최저 10만 원만 받게 된다. 14년 뒤 65세가 되는 분들 중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분들은 깜짝 놀라야 한다. 제일 먼저 감액되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국민연금 납부예외의 길을 택하면 안 된다. 다시 논의하도록 힘을 행사해야 한다. 일단 10월 2일  '기초연금 공약파기 긴급진단' 토론회에 참석하면 좋겠다. 이건 광고성 권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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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특별히 따로 언급하고자 한다. 선거 전에는 "돈을 드리겠다"고 하더니 선거 이후에는 "미안하다"고 한다. 노인을 돈을 보고 투표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제 "왜 공약을 안 지키느냐"고 물으면 돈만 아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게끔 만들었다. 나는 이게 너무 화가 난다.

노인은 평생 노동시장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가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연금제도다. 국가가 시혜적으로 돈 몇 푼 쥐어주는 제도가 아니다. 또한,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 당연하다. 도덕률을 적용하고 싶다면 자신에게만 하라.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노인을 대하는 당신들의 태도는 잊기 어렵다. 선거와 선거 사이에서 살아가는 지금, 시민은 조용히 있는 것 같지만, 다음 선거를 이미 준비하고 있다. 정치하는 우리 모두, 명심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선민씨는 정의당 박원석 국회의원 보좌진입니다.



태그:#기초연금, #박근혜,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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