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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9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전충청입니다. [편집자말]
사투리. 표준말과 다른, 특정지역에서만 쓰이는 말.

이 표현 속에는 지역간 계층을 나누는, 서울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촌스럽다'는 이유로 사투리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그러다보니 지역의 삶이 담긴 지역고유의 말들은 자연스럽게 후대에 계승되지 못한 채 사라져 간다.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생존해계신 현재가 그나마 살아 있는 지역언어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지 모른다. 사투리라며 함부로 하던 지역언어를 기록하는 작업들이 매우 소중한 까닭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정통학계의 구체적인 손길을 거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일은 대부분 그 지역 출신 누군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좀 거칠지만 학자들의 작업보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말이다.

<예산말사전>이 연작으로 나오는 이유

<예산말사전>(이명재 지음, 이화출판사) 1권
 <예산말사전>(이명재 지음, 이화출판사) 1권
ⓒ 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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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52)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충남 예산지역 말들을 기록하고 정리해 낸 <예산말사전>을 지난해 1권 발간했다. 이어 1년만인 이달말 2권 발간을 앞두고 있다. 250여 쪽에 이르는 책 한권에는 약 4000개 남짓한 예산말이 담겨 있다. <예산말사전>은 5권까지 계획돼 있다. 그런데 사전을 펴내면서 시기를 달리해 연작으로 나오는 경우가 또 있을까?

"당연히 없죠. 저도 처음에는 한 번에 펴낼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이 더 큰 문제더라구요. 예산말을 집대성한 사전을 한꺼번에 발간하려면 1억원에 가까운 돈이 필요할 텐데 이걸 누가 대겠어요? 개갈안나더라도(만족할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의 충청말) 연차로 내보자, 그렇게 해서 사전의 연작 발간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이 생긴 거죠."

2009년 지인들에게 "3년 안에 죽어도 1권은 내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2012년 그 약속을 지켰다. 조사연구와 집필, 예산확보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해냈다. 특히 출간비용을 만들어내는 일은 고달팠다. 대개 이런 사업들은 '중요하지만, 시급하지는' 않은 일로 분류되는 탓에 공적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역문화원에는 사업비가 부족했고, 정부 공모로 진행되는 향토문화사업은 개인에게는 응모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오십 평생 글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했지, 예산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그는 난생 처음 공무원과 정치인들을 만나 설명을 하고 부탁을 했다.

"처음엔 군청 담당 공무원만 만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의회 예산심의에서 통과가 안 되니 도루묵이더라구요. 그렇게 도의원도 만나고 군의원도 만나고 여기 저기 손을 빌린 끝에 20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이 만들어졌어요. 제대로 공부했죠."

1권이 발간되고 지역에서는 "대단한 일을 했다. 귀한 책이 나왔다"면서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는 돈 걱정하지 않고 연구와 집필에만 몰두할 수 있을까? 전망은 그리 밝지 만은 않다. 2권 발간비용은 예산군과 의회의 적극 지원으로 순탄하게 진행됐지만, 그는 벌써부터 3권 발간비용 걱정이 크다.

"1, 2권을 1년안에 연속으로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채집해 수록한 예산말 자원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3권부터는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시간도 더 걸릴 테고. 4000개 단어의 어원을 분석하고 쓰임새를 기록하려면 1년내 밤을 새워야 해요. 그런데 나는 밤을 새우는 것보다 다음 책 발간 비용을 만들 수 있을지 그게 더 걱정이에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맛이 사라졌어요"

2009년 이후 그의 일상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예산말사전>이다. 그는 밤새워 글을 쓰고 오전에 잠을 잔다. 일이 잘 될 때는 오전 10시쯤, 잘 안 되면 오전 5시30분쯤 잠자리에 든다. 그가 부인 최길자씨와 둘이서 운영하는 논술·글쓰기 학원 수업이 있는 오후 시간까지가 수면시간이다. 그는 세끼 식사에 총 30분을 넘기지 않고, 모임에 가서도 30분 이상 앉아있는 법이 없다. 생업과 생존을 위한 시간을 뺀 나머지는 모두 예산말 연구와 원고작업에 쓴다. 5권 완간까지 빠르면 10년을 계획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여러해동안 그의 일상은 이렇게 빡빡하게 돌아갈 듯하다. 그런데 그는 이 시간들이 "재미있다"고 한다.

이명재씨는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종이와 볼펜을 준비한다. 사소한 질문에도 '앞은 이렇고 뒤는 이래서 이런 면이 있고 저런 면이 있다'라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필요에 따라서 글씨를 쓰면서까지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명재씨는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종이와 볼펜을 준비한다. 사소한 질문에도 '앞은 이렇고 뒤는 이래서 이런 면이 있고 저런 면이 있다'라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필요에 따라서 글씨를 쓰면서까지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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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매력있는 일이죠. 누군가 뒤에 따라올지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제가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 길이 되는 거니까요."

먼 옛날로부터 쓰이고 내려오던 말은 있으되, 그것을 글로 기록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특히 그가 집필한 <예산말사전>은 다른지역말 사전과 달리 전문적인 어원분석과 민속학적인 쓰임새를 함께 정리하고 있다.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고새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그의 이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인이자 동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그의 남다른 재능 또한 <예산말사전>을 넉넉하고 색다르게 만들어 준다.

"현재 40~50대 중년들도 예산말을 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은 살아있지만 어투는 사라진 표준화된 예산말이에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맛이 없어진 거죠."

그는 충청도 말은 비유적표현이 많고, 몸짓과 손짓에 따라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쉬운 예로 "됐어"라는 말을 들어 설명한다.

"말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느냐, 손사래를 치느냐, 말끝을 올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모두 혼합돼 '됐어'라는 말은 부정의 뜻이 되기도 하고 긍정의 뜻이 되기도 하죠."

그리고 덧붙인다.

"충청도는 직접 화법이 없고 우회적 표현이 많아요. 다른지역 사람들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면서 답답해하지만, 사실은 여유있는 화법이죠."

그래서 그는 예산의 삶이 담긴 말의 쓰임새들을 맛깔스럽게 살려 새로운 형식의 사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단어의 어원을 살펴 표준말과 소통되는 지점을 알리고 있다. 그는 예산사투리, 혹은 방언이라 하지 않고 꼬박꼬박 '예산말'이라고 부른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예외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집필한 <예산말사전>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 이유가 짐작된다.

'지역말은 표준에서 벗어난 비표준(사투리)이 아니라, 때로는 표준말보다 더 정확하게 어원을 따른, 그 지역의 삶과 역사가 담긴 소중한 자산이다.'


태그:#이명재, #예산말, #예산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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