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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도 육고기와 생선을 정기적으로 먹을수 있었던 것은 5일마다 장이 열리는 고향의 시장에서 노점 좌판에서 생선을 팔던 외할머니와 국밥식당을 하던 이모 덕분이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은 새벽부터 장작불을 피운 가마솥에서는 고기가 삶아지고 붉은 선지피에 버무려진 채소를 돼지내장에 넣는 깔대기를 잡고 있는 일이 내 몫이었고, 뜨거운 순대국밥 한 그릇이면 일당으로 족했다.


시장이 파할때 쯤에는 외할머니에게 달려가면 10원 짜리 서너개를 주면서 떨이를 하고도 남은 생선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아궁이의 잔불위에서 굽기도 하고 석유를 쓰는 곤로위에 양은냄비를 얹고 칼칼한 찌개를 끓여내기도 했다.

 

어릴때의 맛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 입맛을 지배하게 되었고, '음식은 입으로 먹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먹는것이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결혼과 함께 밥상을 차린지 15년이 되었다. 결혼전에도 부엌은 수시로 드나들었고, 친구들과 야외로 놀러가면 지금도 음식준비는 거의 내가 도맡다시피 하게된 것은 어릴때의 맛에 대한 기억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와 수입농축산물이 들어오고 가공식품의 시대가 열렸다. 산업발전에 따른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음식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하는것은 '빨리빨리'시대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 음식문화가 되었다. 여기에다 학벌사회가 다져지면서 학생들의 집밥은 실종 되었고, 그 자리는 화학식품첨가물로 뇌를 중독시키는 자연에는 없는 맛으로 무장한 즉석식품들이 입맛을 점령해버렸다. 세살버릇 여든살 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어릴때의 식습관이 평생동안 먹는 음식을 결정한다고 봤을때 지금처럼 주방이 아닌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음식들로 밥상이 차려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경제발전으로 인한 소득의 증가가 외식문화의 발달로 이어졌고, 이는 집밥을 더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음식을 사먹는것이 보편적인 시대가 되었다.

 

'눈뜨면 밥도 못먹고 학교에 가서 저녁에야 돌아오고 졸업후 취업을 하고도 마찬가지 생활인데 언제 음식을 해 보겠어.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요리학원이라도 다닐까?'

 

음식에 자신없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내와 같은 경우일것이다. 그나마 집에서 해주는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면 행복한 편에 속하지만, 자취를 하거나 요즘처럼 1인가족시대에 내손으로 재료를 다듬어서 음식을 한다는 것은 왠만한 결심없이는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음식만들기에 자신이 없다면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

 

내 실력(?)이면 요리책은 필요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오블(오마이뉴스 블로거)을 통해서 알게된 블로거가 요리책을 냈다고 했다. 요리와는 전혀 무관한줄 알았던 그의 음식이 궁금했다. 필명'녹두'로 통했고 이름이 '허선양'임을 책을 통해서 알았으니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님은 분명하다. '싱글을 위한 서바이벌 요리' 제목이 암시하듯이 노총각의 요리는 뭐가 다를까?

 

20년 넘은 객지생활을 하면서 음식때문에 몸이 고생했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는 저자의 음식에는 어릴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해주셨던 맛의 기억을 따뜻한 글과 함께 담아낸 사연이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음식에 대한 생각은 단순하고 쉽게 맛을 내야 한다는것인데, 책에 소개된 음식들은 보통의 가정에서 흔히 먹는것들로 특별난 요리와 특별히 맛을 내는 비법도 없는 평범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그리고 음식에 얽힌 재미있으면서 가슴 뭉클한 사연은 내 어릴적 추억과도 많이 겹친다.

 

밥상을 차리는 동안에 아내가 먼저 책을 보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나도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수 있겠다?) 으로 책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따라하기 쉬워보여서 나도 해 볼 수 있겠는데..,'

 

싱글을 위한 싱글을 벗어나려는 이들과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싶은 이들에게도 자연친화적인 녹두 총각의 음식을 권해드린다.


싱글을 위한 서바이벌 요리

허선양 지음, 하서출판사(2011)


태그:#녹두, #서바이벌, #요리, #싱글,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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