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에 여행을 가 본 사람은 한번쯤 빨간 턱받이를 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는 불상을 보았을 것이다. 흔히 이런 불상에는 바람개비가 쥐어져 있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나 장난감이 놓여져 있는데, 그 모습이 예뻐 보이는 탓인지 많은 관광객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이 불상의 명칭은 '미즈코지조(水子地蔵)'로 '미즈코'는 유산, 중절, 사산 등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지조'는 지장보살을 가리킨다. 한자를 보면 '미즈(水)'가 물을 뜻하고 '코(子)'가 아이를 뜻하는 탓에 양수 속에 있는 아이, 즉, 어머니 배속에 있는 아이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이 부분에서 이름을 짓는 그들 특유의 감수성에 감탄하기도 하는데 '미즈코'의 어원에는 사실 보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원래의 '미즈(見ず)'는 보다라는 뜻의 '미루(見る)'와 '하지 않은'이라는 뜻의 '즈(ず)'가 합쳐진 말로 어원대로 해석하면 '미즈코(見ず子)', 즉, '보지 않은 아이'가 된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나간 아이라는 뜻이다. 그럼 왜 하필 지장보살의 모습일까?

 

 

일본은 예로부터 지장보살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콘쟈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 - 일본 최대의 고대설화집) 등에서는 지장보살이 지옥이나 이승에 모습을 나타낼 때, 아이나 동자의 모습을 빌려 나타나는 이야기가 많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민간신앙으로 이어지며 지장보살은 아이들과 점점 친숙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지장보살과 아이에 얽힌 이야기에는 사이노가와라(賽の河原)라는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구슬프다. 부모보다 먼저 이승을 떠나 버린 아이. 그 중에는 어머니의 젖꼭지 한번 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이도 있고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도 있다. 하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그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존재일 뿐. 산즈노가와(三途の川 -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건넌다는 강)의 강변인 사이노가와라(賽の河原)에서 아이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돌탑을 쌓는다. 엄마, 아빠 먼저 가서 죄송해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부디 행복하세요라고.

 

이 돌탑을 다 쌓을 때쯤 항상 악귀가 나타나 탑을 무너뜨리곤 하는데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부모를 위해 탑 쌓기를 반복한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고사리 같은 손은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이 울음을 듣고 나타나는 이가 바로 지장보살. 보살은 울고 있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조용히 등을 두드려 준다. 그리고 악귀가 더 이상 아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보호자가 되어 준다.

 

이런 이야기에 연유하여 어머니들은 지장보살에게 턱받이를 해주고 옷을 입힌다. 지장보살님, 우리 아이의 냄새를 기억해 주세요, 이 냄새로 우리아이를 찾아 보살펴 주세요 라고. 또 아이는 어머니의 냄새를 평생 기억하기에 그 냄새로 지장보살을 찾아 갈 수 있길 기원한다.

 

많게는 절의 입구에 수백, 수천 개씩 서 있는 '미즈코지조(水子地蔵)'. 일본의 경제 성장과 함께 그 수가 굉장하게 늘어나버린 이 슬픈 불상은 더 이상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오늘도 부모를 위해 돌탑을 쌓고 있는 아이들이 하루 빨리 지장보살을 만나길. 강변의 추위를 잊게 해줄, 그리고 어머니의 아련한 냄새가 배어 있는 그 옷을 하루 빨리 건네 받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홈페이지 http://kimchangkyu.tistory.com/  


태그:#미즈코, #일본, #지장보살, #낙태, #불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