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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영화 감독만큼 서스펜스를 잘 활용한 감독은 드물었다. 히치콕은 영화의 결과를 미리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관객들의 긴장감을 최고로 고조시킨 다음 그 과정을 찬찬히 카메라가 훑는 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왔다.

예를 들면 한 식탁이 있다고 치면 거기에 네 명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앉아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관객에게만 식탁 밑에 10초의 여유가 있는 폭탄을 보여준다. 10초동안 그 곳의 사람들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큐에서 서스펜스를 찾을 거라고는 기대한 적이 없었다. 서스펜스는 허구에서만 생기는 일인 줄 알았으니깐. 사실만을 고집하는 다큐영화에서 서스펜스를 찾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삶이 짙게 묻어 있어 깊이가 더해진 서스펜스를 말이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소가 죽었다는 말에서부터 시작한다. 결론을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부터가 서스펜스의 시작이다. 마흔살 먹은 소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소다. 한국 소의 평균 수명은 15년 정도다. 이 소는 장수에 장수를 거듭한 것이다. 두 배의 나이를 살아낼 만큼의 원동력이 소의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래서 소의 한걸음 한걸음을 무시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를 실은 소는 한 걸음을 내딛기도 힘겨워 보인다. 소가 위태롭게 걸을 때마다 관객들의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소가 이미 죽을 것이라고 알고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마흔살의 소는 젋은 소에게 소죽도 빼앗기고 할아버지를 위해서 논에서 일을 하면 반나절을 쉬어야 하지만 한번도 꾀를 피우지 않는다. 마흔살의 소는 매번 걷고 또 걷는다.

소의 위태로움과 함께 큰 축을 차지한 또 다른 긴장감의 주인공은 최노인(최원균)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아파"를 달고 사는 이 노인은 얇은 두 다리를 이끌고 끝까지 농사를 지내는 농사꾼이다. 영화에서 최노인은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며 몸져 눕기를 서너번 반복한다. 소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최노인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일을 줄이지 않으면 뇌출혈이 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도 최노인을 막지 못한다. 최노인이 농약을 뿌리지 않고 벼농사를 하는 이유는 오직 소에게 싱싱한 꼴을 먹이기 위해서다. 그의 얇은 종아리가 논바닥을 헤매는 모습을 보면 그의 소에 대한 사랑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최노인과 최노인의 소. 둘의 위태로운 삶의 경주는 영화 내내 한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들고 서로를 향한 각별한 애정은 이러한 긴장감에 녹아들어 진짜배기 삶을 연출해낸다. 그리고 이 안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들어 있다.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고 직접 낫으로 베는 벼농사, 소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삼아 수레를 타고 다니는 노부부, 새벽같이 일어나서 소죽을 끓여 먹이는 부지런함, 하루도 쉬지 않아 병을 키우기도 하는 농사꾼의 정신, 등등 영화는 한국적인 향수를 불러 들이며 영화를 보는 내내 애잔한 가슴앓이를 경험하게 한다.

이 또한 하나의 소소한 서스펜스가 되어 큰 줄기를 이루는 최노인과 최노인 소의 서스펜스와 맛물려 영화를 특색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이삼순 할머니의 유머가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호흡조절이 가능해진다. 긴장감이 증폭됐다가 풀어지고 증폭됐다가 풀어지는 서스펜스를 즐길 줄 아는 맛이 생겨나는 것이다.

워낭소리의 상영시간은 78분, 고작 1시간 20여 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촘촘한 서스펜스를 경험하고, 마지막 소의 죽음을 경험하고, 4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다 보면 이 시간도 벅차게 느껴진다. 아마 영화상영시간이 더 길었다면 최노인과 소의 삶을 바라보다가 질식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이렇게 오래도록 서스펜스를 경험하면 피곤하고 지칠법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경험하고 나면 가슴속에 남는 워낭소리의 울림 때문에 피곤함을 느낄 수가 없다. 좋은 동반자를 간접적으로 만나서 달콤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힘겨운 농촌의 노부부와 그들의 소를 만나서 쓰라리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의 결론은 '무조건 좋다'이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다큐에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건 정말 멋진 경험이다. 소가 어떻게 40년을 살아남았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의 덤이다. 전혀 다른 삶의 서스펜스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워낭소리를 들으러 가면된다. 그 청명하고 순수한 소리를.... 

워낭소리 마흔 살의 소 이충렬 감독 다큐멘터리영화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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