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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소 입대하는 모습
ⓒ 육군본부 홈페이지
잘 지내지? 통화 목소리 들어보니 감기는 다 나은 것 같더라.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고 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어느덧 네가 입대한 지도 일 년이 다 돼가네. 그동안 참 지루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추억도 만든 것 같아서 나쁘지만은 않은 한 해였어.

네가 입대한 후, 나도 항상 군대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 입대하기 전인 2005년에는 논산훈련소 인분사건이나 경기도 연천 GP총기난사 사건 때문에 마음을 졸였는데.

그 사건들 때문인지 이후에는 몇 번의 병사 자살사건을 빼놓고는 아주 큰 사건은 없었어. 자대배치 받은 후로는 통화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고. 예상했던 것보다는 편한 곳이라고 했지? 그래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힘들어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운전도 잘 못하면서 큰 트럭을 몰게 됐다고 괴로워하던 표정이 생각나네.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 복무 제도 개편에 관한 의지를 밝혔어. 혹한기 훈련을 앞두고 있는 군인들에게 달콤한 이야기로만 들렸을 것 같아. 어차피 개선되더라도 넌 제대한 뒤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마. 그래도 나중에 자식이나 동생들이 군대에 갔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개선된 환경에서 복무하는 게 좋겠지?

@BRI@군대에서 '썩는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제대하고 나서는 '우리 때는 이렇게 편하지 않았다, 지금 시기가 어느 때인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잖아. 사실 2년이라는 시간, 특히 취업이니 뭐니 해서 경쟁력 쌓는 데 골몰해야 할 나이에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 남는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외우려는 게 다 그런 생각 때문 아니겠어? 그래서인지 학제도 함께 변경한다고 해.

얼마 전에는 국방부에서 군대 내에서 병사 상호 간에 개인적인 명령이나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입법예고 하기도 했지. 수직적인 위계질서 빼면 뭐가 남을까 싶지만, 병영문화를 긍정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 게다가 제대 군인을 위한 지원책도 2011년까지 마련한다니. 조금 일찍 개선했으면 좋으련만, 참 만감이 교차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징병검사가 이뤄지고 있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신체 건강한 남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행사지. 이번 징병검사는 1988년생, 그리고 그 이전 출생자래. 88올림픽에 태어난 올림픽 세대 아이들은 좀 더 합리적이고 개선된 환경에서 '썩지 않고' 군 복무를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다. 그럼 나 같은 '고무신'(군에 간 병사를 기다리는 여자친구를 부르는 말)들도 한시름 놓을 텐데.

지난해보다 5천여 명이 증가한 31만4천여 명이 징병검사를 받는대. '쌍춘년'이던 작년 총 혼인 건수가 31만6천 번. '축의금 내기 바빴던 결혼식이 한번 열릴 때 훈련소에서는 까까머리를 한 동생들이 하나씩 입대하는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갑자기 왜 결혼 이야기냐고? 군 복무 기간 단축하는 게 평균 초혼 연령과 인구 노령화와도 관련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 통계청 <2006 한국의 사회지표> 2007.1
ⓒ 이지영
짐작하겠지만 해가 갈수록 늙은 아빠, 엄마들이 늘고 있어. IMF 한파가 불어 닥친 후인 1998년과 비교했을 때 2005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는 2세, 여자는 1.6세 높아졌지.

이게 단지 군 복무 기간이 24개월이라서 생긴 결과는 아니겠지만, 취업하기도 어려운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볼 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것은 사실이야.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취업을 위한 경쟁력을 쌓으려고 결혼은 훗날의 일로 미루는 게 보통이잖아. 게다가 절반에 가까운 45%의 병장들이 평균 취업하는 데 3년이 걸리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제대 후에 '고무신'들과 관계가 어긋나는 이유도 어쩌면 이것 때문이 아닐까? 한 달 통화료가 평균 10만원이 넘는 수신자부담 요금고지서를 보며 휘는 허리만큼, 커져가는 고무신들의 보상심리도 한 몫 하겠지만 말이야.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군 복무 제도를 개편하는 일이 인분 사건이 있었던 논산 훈련소에 비데를 설치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썩는다'는 말은 다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선 돌발변수로 이 문제가 떠오른 것이나 예비역 장성들이 '군복무 단축' 연기를 주장하고 있어 불안하기는 하지만.

"우리도 국방의 의무 다하고 있죠"
국방의 빛나는 조연, '고무신'

▲ 자신만의 고무신을 찾기 위한 장병들의 노력은 계속된다. KBS1 '청춘 신고합니다'의 '싱글을 찾아라' 한 장면.
ⓒKBS 화면 갈무리
"훈련 때마다 제가 더 바빠요. 게다가 발렌타인 데이까지 껴있으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군대에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에 질세라 군인 애인을 둔 '고무신'들은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김소정(22)씨는 "경기도에 부대가 있는데 부산에 내려가 있을 때는 왕복하기가 힘이 든다, 그래도 이번에는 면회라도 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물심양면으로 군에 있는 남자친구를 배려해주지만, 수신자 부담 전화통화료는 고무신의 최대 적이다. 수신자 부담 전화 대신 부대 공중전화 카드를 이용하면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이용한도를 초과하면 다시 수신자 부담 전화를 사용하기 때문.

박아무개양은 "처음에 수신자 부담 요금액이 15만원 정도 나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고무신' 중에 학생이 많은 것을 감안해서 수신자 부담 요금을 내렸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했다.

그밖에 군대 내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는 '고무신'들도 많다.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기 위한 방법이자, 군대가 어떤 곳인지 여성들도 느껴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우먼타임스>에서 육군본부와 함께 주관하는 '대학생 전방 부대 체험 행사'는 신청종료일인 오는 2월 3일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150명이 선착순 마감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오는 2월 13~14일 이틀간 강원도 철원 전방 사단에서 GOP(General Outpost) 경계근무를 체험할 예정이다.

이들 중에는 여군장교 시험을 준비하면서 군을 미리 체험해보고자 참여하는 학생도 많다. 더 이상 국방의 의무는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난다.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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