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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매향리 국제사격장을 반환하며 환경정화를 하지 않았다며 환경정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는 매향리 주민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7월 14일 환경부와 국방부·외교부는 합동 브리핑에서 9차 SPI(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 결과 15개 미군 기지를 반환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후 미군이 정화할 것이라고 하던 오염된 미군기지가 한국 국민의 부담으로 넘겨질 것을 우려한 비난이 빗발쳤다.

한국 정부가 국민들을 속이면서 협상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환경문제를 도외시하는 미국의 입장과 정책에 있다.

[책임피하기 전략①] 유리한 건 부풀리고 불리한 건 덮어라

그동안 주한미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군은 원상 복구 의무가 없다(SOFA 4조)"면서 환경오염 정화 책임을 부인해 왔다. 이 조항은 미군기지내 시설물 철거 의무에 대한 것일 뿐 환경오염에 대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 국내 법률가들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해석이었다.

그럼에도 미군은 SOFA를 인용하면서 "환경 정화가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미국은 협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지난 2003년 SOFA 합동위원회에서 양국이 서명한 이 부속서A는 "반환 미군기지에서 발견된 오염은 미군이 치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 정화 기준과 방법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 부속서 A가 체결된 이후 국방부와 환경부, 외교부 등 정부부처는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은 미군이 치유할 것"이라며 획기적인 외교협상의 성과인 것처럼 홍보해 왔다.

하지만 국내 환경 기준치를 초과한 심각한 오염이 발견된 지금에는 이 부속서 A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당시에 합의하지 못한 정화 기준을 협의하는 데 나섰다.

과거 주한미군은 스스로를 '환경 파수꾼(리언 라포트 전 주한미군 사령관, 2006. 3 언론 인터뷰)'이라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환경 보존에 힘쓰는지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19개 미군기지가 반환된 지금은 '환경 파수꾼' 미군은 찾아볼 수 없다.

[책임피하기 전략②] 심각한 오염 없다는 내 말만 믿으라

▲ 한국에 반환된 미군기지 캠프 콜번(경기도 하남시 소재) 뒷산에는 미군들이 사용하다 버린 각종 폐기물들이 나뒹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은 미군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기지 내 심각한 오염은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정화 기준은 이른바 'KISE(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 기준치를 초과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발견된 미군기지에 대해 KISE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보고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판단 근거도 없이, 아무런 오염이 없다는 자신들의 말만 믿으라는 것이다.

근거 없이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미군도 잘못이고 이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미국의 주장을 수용한 한국 정보, 둘 다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책임피하기 전략③] 정보공개는 내 맘대로

지난 4월 7일 주한미군은 '토지반환을 위한 실행계획서'에 관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미군이 기지를 반환할 때 PCB 제거, 지하 유류저장탱크 제거 등 8개 항목과 바이오 슬러핑을 통한 지하수 기름 제거를 하겠다는 최종 입장을 밝힌 것이다.

사건사고도 아닌 한국 내 미군의 정책에 대한 보도 자체를 꺼리는 그간의 미군 행보를 봤을 때 이 보도자료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미군이 한국 국민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고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에 대한 협상 상대방인 한국 정부에 강합 압박을 가하기 위한 언론 플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과 한국 언론과 시민단체들을 통해 미군기지의 환경문제에 대한 자료가 공개될 때마다 부속서 A를 근거로 "양측 위원장이 승인하지 않았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부속서 A는 조사결과에 대한 언론이나 대중 공개는 환경분과위원회 양측 위원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4년 국내의 한 일간지가 군산 미 공군기지의 환경오염조사 결과를 공개했을 때 당시 주한미군은 환경부 관계자에게 "환경부가 미군의 등에 칼을 꽂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정부에는 정보 차단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할 말 다하는 미군의 행동 때문에 '정보 식민지'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책임피하기 전략④] 자국과 외국의 환경 기준은 다르다

▲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미군기지는 환경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진은 파나마에 남겨진 불발탄들. 1999년 미군기지를 반환받은 파나마에는 남겨진 10만여 개의 불발탄으로 사상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각하게 오염된 미군기지를 그냥 되돌려 받았다는 여론의 비판은 일차적으로 한국 정부에게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잘못은 군사시설 확장이 아닌 환경정화에는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미군의 정책에 있다.

채영근 인하대 교수는 2005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해외 주둔 미국에 적용되는 오염지역 치유에 관한 미 국방부 정책(미 국방부 지침 4715.8)을 분석하면서 "폐쇄되는 기지의 잔존가치를 넘는 치유에 대해서는 접수국이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미군의 입장"며 "KISE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미군 지휘관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 미군의 정책은 접수국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미군의 환경오염 치유책임 회피에 대해서 미국 내에서도 강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 실제 미국 내 군기지에는 환경보다 더 강력한 환경법이 적용되고 있으며, 그와 비교했을 때 아주 느슨한 한국법도 적용받지 않으려는 미국의 이중 잣대는 문제가 있다는 것.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예외적으로 SOFA에 '독일법을 준수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하지만 독일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미군기지는 환경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비판에 따라 지난 4월 한국의 시민사회인사 100인은 미국 의회에 보내는 서한을 통해 "미국은 여러 국가와 맺은 외교 관계를 고려해서 해외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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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시대, 지역과 페미니즘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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