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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조선일보>의 한 지면을 통해 “도대체 적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를 외쳤다(<대통령의 '칼의 노래'>, 조선일보 2003년 10월 25일자).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이러한 외침이 왠지 낯설지 않다.

그는 지난 2001년 3월, <동아일보>에 “‘의약분업의 전사들’ 어디 갔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그의 글에 대한 반론에서 그 전사들은 결코 침묵한 적이 없으며, 그는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그 무엇을 벗어버리라고 요구했었다(의약분업의 전사들이 어디 있냐고?, <오마이뉴스>, 2001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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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전사들이 어디에 있냐고?"

그런 그가 며칠 전 “도대체 적은 어디에 있는가? ”를 다시 외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다 분명한 말로 그에게 답하기로 했다.

우리 눈앞에는 너무나 분명한 그 ‘적’이 있다. 바로 그 ‘적’은 부패한 정치인, 수구언론, 부정축재자, 그리고 이에 기생하는 소위 학자들이다.

그리고 지금 시간에도 우리 노동자들을 차가운 고공 크레인 위로 몰아붙이고, 마침내 고 김주익씨의 어린 세 자녀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가버린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완고히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고, 우리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 속에서, 텔레비전 뉴스에서, 인터넷 화면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터에서 너무나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적’들과 그 적을 맞아 싸우고 있는 ‘전사들’을 눈앞에 두고 자꾸 “그들이 어디 있느냐”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 ‘시각장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의 계급적 편향이 그의 뛰어난 감성과 명철함을 눈멀게 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은 모두 늘 두렵고 비장하다.

김훈이 그의 책에서 임진왜란의 상황을 어떻게 그리고 있던, 또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어떻게 쓰고 있던, 전쟁 속에서 전사들은 늘 죽음의 공포와 그 만큼의 비장함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성웅' 이순신 장군이든, 조국을 지키겠다는 전의에 불타는 병사이든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것은 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남겨놓고 피눈물로 유서를 써야 하는 노동전사나, 징그럽도록 집요하고 거대한 수구세력을 맞아 일전을 치러 내야 하는 개혁의 전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들은 송호근 교수의 말대로 “자주 아프고 자주 회의한다”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전진한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존재했던 '난중일기의 이순신'은 심사가 굳은 대장부였다. 무장(武將)의 문장에는 연민의 흔적이 없다”는 말로 이 전사들의 아픔과 회의, 그리고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려는” 전사들의 그 비장함을 넌지시 비웃는다.

우리는 안다. 그의 비웃음은 한 대통령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칼은 늘 우리 ‘전사’를 겨누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는 또한 잘 안다. 그의 이 비웃음은 결국 이 사회의 ‘적’의 목을 겨눈 전사들의 날카로운 칼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는 지난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비리가 있었음을 마치 기정사실화하고, 또 민주당의 국민경선과 관련한 혼란을 비난하면서, 당시 상황을 열강들이 서로 집어 삼키려 으르렁대고 있는 조선 말기의 풍경을 다룬 헐버트(H Hulbert)의 '대한제국멸망사'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난파선의 사기꾼’이라 비난한 바 있다(<조선일보>, 2002년 10월 15일자).

송호근 교수가 인용했던 그 시대, 이웃나라인 중국도 당시의 우리나라처럼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내분으로 어지러웠다. 바로 그 때, 중국의 대문호 뤼신은 중국의 자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전사들을 헐뜯기에 바쁜, 소위 자칭 지식인들과 수구언론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통을 쳤다.

“…전사가 죽었을 때, 파리들이 맨 먼저 발견하는 것은 그의 결점과 상처이다… 그러나 그 결점이 있더라도 전사는 전사이며, 아무리 완전하더라도 파리는 어디까지나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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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정책을 전공했고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부교수입니다.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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