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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계음으로 정치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니 협조해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었다.

잠시 뒤, 설문이 예시됐다. 그 내용은 참으로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김대중 전대통령 밑에서 갖가지 직책을 맡으며 일해온 장 모씨를 아는가"라는 질문을 필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계승하여 그가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을 맡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질문,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내가 어이없게 느낀 것은 단지 그가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출마하는지,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이 되야하는지에 대한 질문 때문이 아니었다. 첫째는 설문과 예시문에 나오는 모든 수식어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에 나오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의 경쟁 후보를 설명할 때, 서구 현역 의원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계승한 민주당을 탈당한 인물'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그 전화 설문조사는 국민의 정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의향을 지닌 한 인물의 당선 가능성 여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고,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 인물에 대한 광고와 경쟁 인물 깎아내리기, 더 심하게 말하면 사전 선거 운동처럼 느껴진 것이다. 여론조사를 공정한 잣대가 아닌 광고로 전락시켰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 후, 돌아가는 정치판의 상황이 하도 화가 나서 애써 외면하려했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설문조사를 받고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힘없는 민초인 나는 한 표의 권리 밖에 없지만, 쓴소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런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보면, 왜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했는가, 요근래 통합신당이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도, 호남 민심도, 민주당에 대한 우호도, 정몽준 후보의 돌출 행동에 대한 반발도 모두 포함될 수 있지만,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그의 소신이 지역주의 극복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이끌어서 대한민국 정치판을 새롭게 만들어줄 가능성이 그나마 큰 인물이라는 점, 경쟁자인 한나라당 후보의 보수적인 네가티브 전략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국민의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개월간 민주당은 과연 지역주의의 극복과 정치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 저마다 공신이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방어와 자리잡기를 위한 대통령 흔들기를 하지 않았는지, 사실상 민주당이 집권한 후 전라도 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민주당에서 왜 김대중 대통령을 들고 나와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한국 정치판의 재현으로 밖에 비추어 질 수 없었다.

두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이라는 부분이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자리잡는 과정에서 힘겨움은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흔들고(실제 지난 정권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가 멈출 것이라고 기대한 국민이 몇이나 될까), 민주당내에서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상당히 혼란스러울 만큼의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던 것이고, 어느 세력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리더로서의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세번째는 언론의 보도내용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이다. 이미 정계에서 물러난 김대중 대통령을 왜 들고나오냐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다시 등장한다고 우리사회가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물론 김 전 대통령은 참으로 현명한 분이기에 잘 참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기사꺼리를 만들기 위해 그런 짓을 자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은 호남지역민 전체의 생각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60대의 내 어머니나, 장인 어른은 민주당을 탈당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서가 과연 대한민국 정치판의 개혁을 위해 끝까지 가야할 정서일까에 대해 의문이다. 또한, 그런 정서안의 불꽃을 자극하는 설문조사나 여론몰이는 더욱 문제로 보여진다.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갈등의 극복을 포함한 정치개혁이다. 과거의 인물에 기대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판으로 변화하길 간절히 촉구한다. 아울러 지금의 가장 큰 화두는 내년 총선에서 누가 승리하는가가 아니라, 극도록 악화된 경제사장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한민국 사회를 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가는가임을 정치권은 각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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