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와 구단주 및 KBO의 대결구도는 자본주의 산업구조 안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자본과 노동 관계로 바라보아야 한다. 프로야구가 기업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야구선수를 혹은 야구단을 기업홍보의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구단주가 자본가라면 야구선수들은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단체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고 이미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노조도 인정받는 마당에 왜 구단주와 KBO는 선수협마저 부인하고 결사반대를 하는가? 구단측은 선수협의회를 선수노조의 전단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반대할 수밖에...

우선 선수협이건 노조건, 무언가 만들어지면 구단운영에 있어 불편(?)한 점이 많다. 노조가 만들어지면 우선 어떠한 합의 사항을 도출해낼때 노조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논의 테이블에서 노동자를 협상 대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또 개인일 때는 누르기 쉬운 착취의 대상이나, 단체가 되었을 때는 목소리도 커지고 저항의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란 의식 때문이다. 한마디로, 뭉치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랄까?

한국 프로야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한국의 프로야구는 광주항쟁 이후 전두환 정권이 만든, 온 국민의 눈가리개로 출범하였다. 한마디로 '니들은 야구나 보면서 웃어라'의 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생각지도 못한 야구단을 하나씩 떠안게 된 것이고, 처음부터 이런 불순한 배경으로 시작되었으니 기업들 역시 프로야구에 대해 애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20여년의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프로야구는 전국민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시작이야 어쨌든지간에 이제 프로야구판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있다.

노비문서

우리는 몇 년전 선동열 선수의 일본 진출을 보았다. 선동렬 선수는 일본 진출을 원했지만 쉽게 일본에 갈 수 없었다. 왜 갈 수 없었을까? 무엇이 그의 발목을 잡았는가?

야구규약제를 보면 선수들이 특정 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당하면 평생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요지의 드래프트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구단의 보류기간 내에 선수는 어떠한 다른 구단과도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한다. 그런데 더욱 더 답답한 것은 선수가 이렇게 불리한 것에 반해, 구단은 선수의 동의 없이 다른 구단에 선수를 넘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주종관계가 따로 없다.

따라서 선수들이 팀을 이적하는 유일한 경우는 구단측에서 그들을 방출하거나 다른 팀으로 가도록 허용할 때만이다. 일단 구단에 찜을 당하면 선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선수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이것도 거의 구단끼리 선수 맞 바꾸기거나 웃돈 주고 선수 영입하기 정도랄까?) 되면 그는 새로운 팀에 종속된다.

그런데 우스운 사실 하나는 KBO가 현재 특정구단에서 10년 활동한 선수에게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10년이면 은퇴경기 치를 때다. 야구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의 평균은 대략 4년이다. 그러니까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30대가 되면 은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KBO 규정대로 10년을 채우면 뭐하나. 과연 어느 팀에서 노장을 모셔가느냐는 말이다.

선동렬은 위와 같은 규제때문에 원하던 일본 진출을 쉽게 못했던 것이다. 임선동 문제도 같은 이치였다. 고용주를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는가 하면 원하는 직장으로의 이전마저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야구판인 것이다. 이 정도면 선수들이 말하는 '노비문서'란 표현이 적당하지 않는가?

시기상조?

일년 전 모 방송사 토론프로그램에서 구단을 제외한 선수협관계자와 KBO측이 공개토론을 하였다. 이때 KBO를 대표해서 나온 패널이 '선수협의회는 시기상조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과연 시기상조일까? KBO의 패널이 말한 논리는 이러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100년전 미국 수준이니까 앞으로 더 기다렸다가 권리 찾기를 시도하라는 식.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발상인가? 한마디로 억지논리이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것이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으련만.

얼마전 구단측은 선수협을 강행할 시 내년 시즌을 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졸렬하기 그지 없는 발언이었다. 한마디로 직장폐쇄라는 걸 해보겠다는 뜻 같은데, 직장폐쇄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인정할 때 성립되는 개념 아니던가?

구단측과 KBO는 처음부터 이기지 못할 싸움에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적자 운운하지 말아라!

구단측은 적자 때문에 프로야구 하기도 힘든데 선수들마저 이러면 직장폐쇄할 수밖에 없다는 억지 논리로 맞서고 있다.

과연 적자일까?
프로야구 구단을 갖고 있는 기업들 현대나 삼성을 비롯한 8개 기업의 광고비용을 보면 한해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적자가 나는데 야구단은 어떻게 꾸렸으며 그 수많은 액수의 광고비용은 어디서 나온 걸까?

만약 구단이 기업홍보 차원에서 야구단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적자 운운하면서 직장폐쇄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 한마디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 것이다. 야구단 때문에 스포츠신문 기사에 자기업 이름이 등장하는 게 한 해 몇번이며, 스포츠뉴스를 장식하는 게 일년에 몇 날이던가?

프로야구 발전을 위하여

프로야구 선수 협의회 문제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문제로 시작되었지만 필자가 보기엔 한국 체육계 전반에 걸친 문제를 개선, 발전을 도모하는 초석으로 보여진다. 그 만큼 이번 선수협 사태는 한국체육계에 있어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구단과 KBO는 더 이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논리로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본 사건으로 인해 생성될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죽는 시늉만 해오던 구단측은 어떻게 하면 프로야구 인구를 늘릴까 고민하고 적절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전용구장도 없는 프로야구가 오래 갈 리 없다. 투자해 가면서 죽는 소리해도 늦지 않다.
2001-01-04 20:2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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